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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인문사회

『지식인을 위한 변명』 - 여전히 유효한 사르트르의 지식인론

by 내오랜꿈 2007.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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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유효한 사르트르의 지식인론 
서평 - 변광배 교수(한국외대 불어과) 

대학신문 2007년 11월 03일 (토)


▲ 삽화 : 박혜빈 기자 


지식인을 위한 변명 
장 폴 사르트르 지음┃박정태 옮김┃이학사┃165쪽┃8천원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Plaidoyer pour les intellectuels)』이 새로 번역ㆍ출간됐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데리다, 푸코, 들뢰즈 등의 이름에 거의 짓눌리다시피 한 상황에서, 20세기의 대표적 지식인이었던 사르트르의 저서 한 권이 드물게 출간됐기 때문이다. 이 책의 출간은 또한 시의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의 발달, 교육환경의 개선, 매체의 발달 등으로 인해 지식인 환경에 커다란 변화가 이뤄진 오늘날에도 과연 40여 년 전에 정립된 사르트르의 지식인론이 유효한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원래 사르트르가 1966년 9월에 일본에서 세 번에 걸쳐 했던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강연 제목은 각각 「지식인의 위치」, 「지식인의 기능」, 「작가는 지식인인가」였고, 이 세 강연에 후일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지식인의 위치는 애매하다. 지식인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괴물’로서의 특징은 바로 이 위치로부터 도출된다. 물론 지배계급이 지식인에게 거는 기대는 비교적 명료하다. 한 사회의 지배를 목표로 하는 지배계급은 지배 수단의 연구를 위해 전문가들을 양성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전문가들은 지배계급의 ‘필요악’이 될 수도 있다. 그 내력은 이렇다. 지배계급은 전문가들이 될 자들을 선발하고 교육시키는 일을 담당하게 된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의 선발과 교육 과정은 전적으로 지배계급의 통제 하에 이뤄진다(가령 최근 국내에서 일고 있는 로스쿨 정원 조정 문제를 생각해보자). 지배계급에 의해 부과되는 교육 과정을 거쳐 그들은 점차 각 분야의 ‘지식 전문가들’로 변모하게 된다. 지배계급은 그들에게 지배를 위한 효율적인 수단을 개발하고, 또 그들이 오로지 통치 수단으로만 존재해 줄 것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 지식 전문가 중 일부는 지배계급의 기대를 등지고 자신들의 사회적 모순을 깨달으면서 점차 위험한 인물, 곧 지식인으로 변해간다. 그러니까 지식인은 지식 전문가들로부터 탄생하는 것이다. 지배계급에 의해 선발돼 이 계급의 보존과 강화를 위한 ‘집 지키는 개’가 되는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일부 지식 전문가들은, 점차 자신들이 발견하는 진리와 법칙이 갖는 ‘보편성’이 지배계급의 ‘특수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가령 의사는 자신의 의학 지식이 전 인류를 위한 것이지 지배계급의 구성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지식 전문가들이 진정한 지식인이 되지 못하고 ‘사이비 지식인’이 되어 지배계급의 주구(走狗) 노릇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 지식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연구 영역에서 발견한 보편적 법칙과 진리를 사회와 모든 인간들에게 확대하려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진정한 지식인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지식인은 이와 같은 태도 속에서 그 자신의 모순이 한 사회 전체가 당면한 객관적 모순의 한 특수한 계기임을 깨닫게 되고, 자기 자신과 타인을 위해 이러한 모순과 투쟁하는 모든 인간들, 가령 피지배계급에 속하는 자들과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피지배계급은 자기 계급 출신의 지식인 ―사르트르는 이 지식인을 ‘유기적 지식인(intellectuel organique)’이라고 부른다― 을 아직까지 확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지배계급이 주축이 된 억압과 폭력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인식’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 있다. 즉 피지배계급은 이른바 자기 계급에 대한 ‘계급의식’과 ‘객관적 정신’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피지배계급과 진정한 지식인과의 연대 가능성이 자리하고, 이에 따라서 지식인의 임무가 설정된다. 피지배계급은 지식인을 당연히 불신한다. 왜냐하면 지식인은 지배계급의 앞잡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지식인은 항상 자기가 속한 사회적 위치에 대해 반성적 성찰을 하면서 피지배계급과 연대하고, 나아가서는 지배계급에 맞서 공동으로 투쟁해야 한다. 또한 피지배계급에서 자생적으로 유기적 지식인이 배출되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식인은 피지배계급이 자기 계급에 대해 ‘객관적 정신’을 확보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식인은 자신의 보편주의가 어떤 한 계급의 특수주의에 종속되는 것을 극구 거부해야 하고, 또한 자신의 보편주의가 미래에 실현될 보편주의가 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의 편에 서서 투쟁해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지식인은 ‘인간의 해방, 인간의 보편화’라고 하는 ‘근본적인 목표의 수호자’가 돼야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사르트르는 제3강연 「작가는 지식인인가」`에서 바로 이와 같은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갈등이라는 시각을 중심으로 지식인으로서의 작가의 위치를 규정하고 있다. 작가는 보통의 지식 전문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한다. 지식 전문가들이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한 소통(communication)을 중요시하면서 언어를 사용하는 반면, 작가는 소통 불가능한 것(l’incommunicable)의 소통을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 ‘전체’를 전달해야 한다는 ‘보편적 욕구’와 이 욕구를 오직 자신의 ‘체험’이라는 ‘특수적 차원’으로밖에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결국 사르트르가 보기에 작가는, 글쓰기라는 행위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보편주의와 특수주의라는 갈등에 노출돼 있다는 면에서, 뼛속까지 지식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여러 차례 번역되면 더 나은 번역본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나중에 번역하는 사람은 기존 번역본을 참고할 수 있으며, 또한 그 동안 이뤄진 연구 성과 역시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2007년판 『지식인을 위한 변명』 역시 상당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기존 번역본에서 가끔 눈에 띄었던 오역을 바로 잡으려고 한 점, 새로운 번역어를 채택하려고 한 점, 원문의 편집을 그대로 따르려고 한 점, 그리고 자연스러운 번역 문체를 바탕으로 가독성을 한껏 높이려고 한 점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더해 2007년판에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우선 이 2007년판은 저작권을 얻어 정식으로 번역된 최초의 판본이라는 점이다. 그 다음으로 이 책이 강연회의 소산이라는 점을 감안해 강연회의 현장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고자 ‘강연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많은 주(註)가 첨부돼 있다는 점이다. 이 주는, 독자들이 얼마 안 되는 분량이지만 결코 녹록치 않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분명 이 점이 2007년판의 최대 강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장점과 특징에도 불구하고 2007년판에서 한두 가지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첫째, 이 저서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인 ‘l’universel singulier’에 대한 것이다. 역자는 이 용어에 대해 ‘특이한 보편자’라는 역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개별적 보편자’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당하지 않을까 한다. 둘째, 주(註)와 관계된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주를 달아준 것은 분명 이 2007년판의 최대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들에 대해서는 정작 주가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개별적 보편자’도 그렇거니와 ‘내화된 외성의 순간과 내성의 재외화의 순간’ 등이 그것이다.

2007년판의 ‘옮긴이의 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계화의 물결이 아무리 도도하다 할지라도, 또한 산업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할지라도, 지금 지구상에는 지배ㆍ피지배계급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지배계급의 피지배계급에 대한 억압은 이 저서가 씌어졌던 1966년보다 더 음흉하면서도 더 폭력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의 모순 위에 지식인의 존재론적 지위를 마련하고 있는 사르트르의 지식인론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이며, 또한 그런 만큼 이 책의 새로운 번역 출간의 의의는 더욱 크다고 하겠다.




필자 변광배 교수 
한국외대ㆍ불어과
프랑스 몽펠리에3대학에서 「사르트르의 극작품과 소설에 나타난 폭력의 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인문학 연구모임 ‘시지프’를 이끌고 있다. 주요 저서로 『사르트르와 20세기』, 『장 폴 사르트르 -시선과 타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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