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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인문사회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by 내오랜꿈 2007.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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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차이철학의 허무주의를 극복하라

니체로 시작된 차이 사유 
현대철학이 
되레 차이를 불변의 것으로 인식 
차이를 적극 생산하는 게 올바른 길 
자본논리엔 ‘소수 정치학으로 맞서야


처:인터넷한겨레(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34654.html) 2007/09/07 
글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일단 진은영의 재주는 글을 쉽게 쓴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범위가 좁은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칸트 해설서 만큼(<'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쉽게 쓰여진 칸트 해설서는 아직 보지 못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해서 그의 전작 만큼이나 쉽다고 자신하지는 못하겠다. 더더욱 니체를 용수의 <중론>을 끌어들여 니체의 영원회귀를 용수의 空과 비교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리 만만할 것 같지는 않다. 김성철 교수의 <중론> 해설서를 읽었는데, '뜬구름'이 내 주변을 감싸고 있었던 경험이 있기에..-.-..


‘니체,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펴낸 진은영씨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관문이다. 그를 통과해야 현대철학의 지평이 제대로 열린다. 진은영(37)씨는 니체 철학 전공자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그린비 펴냄·1만5900원)은 그가 모교인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을 갈무리해 펴낸 책이다. 니체 철학의 함의를 풍성하게 담은 그의 책을 사이에 놓고 한겨레신문사 자료실에서 그와 만났다. 

“현대 철학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차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는 것입니다. 이 성과는 특히 하이데거·바타유·푸코·데리다·들뢰즈 같은 일군의 탈근대 철학자들이 이루어낸 것입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들을 모두 니체의 후계자로 지목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니체 철학을 베이스캠프로 사용해 현대철학이라는 산을 등정했다는 것이죠.” 

» ‘니체,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펴낸 진은영씨


그는 현대철학의 출발점에 니체 철학이 있는 이상, 니체를 공부할 이유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탈근대 철학에 도입된 차이 개념을 사유하고 차이의 철학을 발전시키는 작업은 니체의 철학에 대한 이해를 통해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철학이 ‘차이’ 개념에 주목하는 것은 근대 철학의 폐해를 극복할 길이 거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근대 철학이란 요약하자면, 동일성의 철학이다. 하나의 보편적 기준을 상정하고 모든 이질적인 것들을 거기에 폭력적으로 복속시키거나 복속되지 않으면 배제하고 추방해버리는 철학이 동일성의 철학이다. 이 철학의 폭력성을 극복하자는 것이 탈근대 철학이고, 그때 탈근대 철학이 구사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이 ‘차이를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니체는 말하자면, 차이의 철학으로 가는 직행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는 개념이 니힐리즘(허무주의), 힘에의 의지(권력의지), 영원회귀,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차이의 철학’이다. 이 가운데 니힐리즘은 니체가 평생을 두고 싸운 사유의 주제였다. “니체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목표는 ‘니힐리즘의 자기극복’이었습니다.” 왜 니힐리즘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니체는 자기 시대가 니힐리즘에 철저하게 감염돼 있다고 보았다. 니체가 니힐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탄식하는 단순한 허무의식이 아니라, 현실의 세계 자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현실 너머의 ‘진짜 세계’, ‘초월적 본질’을 찾는 모든 본질주의적 사고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현상계 너머의 영원한 이데아(본체계)를 찾는 플라톤주의와 그것의 쌍둥이인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이 현세 부정의 관념으로서 전통적 니힐리즘이다. 신이 죽어버림으로써 이 전통의 니힐리즘은 끝났지만 그것을 대체해 새로운 신이 등장했다고 니체는 말한다. 현실 세계를 관통하는 어떤 법칙을 찾아내 거기에 매달리거나 자본·화폐·국가 같은 것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것이 니체가 인식한 현대의 니힐리즘이다. 니체는 이 니힐리즘을 극복해야 할 질병이라고 규정했다. 

“그 질병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니체가 발견한 개념이 ‘힘에의 의지’입니다.” ‘힘에의 의지’를 니체의 말로 풀면 이렇다. “이 세계는 곧 시작도 끝도 없는 거대한 힘이며, 힘들과 힘의 파동의 놀이로서 하나이자 동시에 다수이고, 자기 안에서 휘몰아치며 밀려드는 힘들의 바다이며, 영원히 변화하며 영원히 되돌아오고, 어떤 포만이나 권태나 피로도 모르는 생성이다. 영원한 자기창조와 영원한 자기파괴의 세계가 ‘힘에의 의지’다.” 

이 힘들의 흐름은 영원히 되돌아와 영원히 되풀이되는데, 그것을 가리켜 니체는 ‘영원회귀’라고 말한다. 그때의 영원회귀는 똑같은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복된다는 뜻이 아니다. 영원회귀는 차이의 반복이다. 다시 말해, 차이를 만들어내는 반복이다. 그리하여 삶은 끝없는 변화와 생성 속에서 반복하되 항상 차이나는 반복이 된다. 삶과 세계는 차이의 바다, 차이의 축제가 된다. “그런 식으로 니체는 차이를 새롭게 사유했고 적극적으로 끌어안았습니다.” 

근대의 동일성 철학을 돌파하는 차이의 철학은 바로 여기에서 성립했다. “그러나 이 차이의 철학은 차이라는 개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유행하는 탈근대적 차이철학에도 동일성 철학의 폐해가 끼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차이를 불변의 어떤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차이를 ‘승인’하는 형태의 철학에서 그런 경향이 발견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걸로 끝내버리는 것인데, 그래서는 차이와 차이의 진정한 만남도 없고 그 만남을 통한 또다른 차이의 생성도 없다. 이런 ‘차이 승인’의 철학을 그는 ‘탈근대적 니힐리즘’이라고 부른다. 이 현대적 니힐리즘을 극복하려면 차이·다름을 단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사유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차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차이를 즐기는 것,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 생산 활동’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것이 그가 말하는 진정한 차이의 철학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 생산 철학’도 오늘날 자본주의적 지배 전략으로 전용되고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끝없이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면서 ‘차이’와 ‘다름’의 판매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지금 자본주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차이의 철학은 거기에 합당한 정치학과 윤리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책은 차이의 철학이 자본의 논리에 빠져들지 않고 자본의 포획욕망에 저항해 그 욕망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소수 정치학’을 내세운다. 지배의지로 뭉친 다수성의 논리와 맞서 싸워 다름의 풍요로움을 지켜내고 또 그 풍요로움을 창조하는 소수성의 정치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차이의 철학’은 니힐리즘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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