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호 교수는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조명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려고 한다. 그는 논리적으로 일목요연한 표기법에서는 논리상항, 논리 법칙, 대상, 참과 거짓, 함수, 철학적 용어 등이 모두 제거될 수 있기 때문에 모두 ‘사이비 표현’이고 그리하여 『논리-철학 논고』(『논고』)에서 논리나 철학의 본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진술들은 ‘진정으로 무의미한 진술들’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강 교수는 단호한 해석을 따르고 있다.
반면에 그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보면 『논고』의 명제들이 무의미한가 하는 물음은 잘못 제기된 것이고, 맥락 또는 언어놀이에 따라 달리 대답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전통적 해석을 수용한다. 그렇게 해서 양자의 진정한 종합이 성취되었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논고』 마지막 부분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의미’ 개념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서 ‘뜻이 있는(sinnvoll)’, ‘뜻을 결여하는(sinnlos)’, ‘무의미한(unsinnig)’을 구분하였다. 뜻이 있는 명제는 자연과학의 명제이고, 뜻을 결여하는 명제는 동어반복과 모순이며, 무의미한 명제에는 예컨대 윤리학과 미학의 명제가 있다. 따라서 마지막 부분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의미’와 관련하여 『논고』라는 텍스트를 정확하게 해석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의미(Bedeutung), 뜻(Sinn), 기호, 상징, 함수, 조작(연산), 명제, 요소명제, 사실, 사태, 그림이론, 진리함수이론 등에 대한 치밀하고 분명한 논의가 제기되고, 그 다음에 ‘뜻이 없는’과 ‘무의미한’에 대한 논의가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강 교수는 정작 필요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고 다른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요컨대 그는 ‘무의미한’을 두 가지 방식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나는 ‘논리적으로 일목요연한 표기법에서 제거 가능한’것이 무의미한 것이라는 암묵적인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논고』에서 필연적으로 참인 것으로 의도된 것’이 무의미한 것이라는 명시적인 (하지만 괴상한) 제안이다.
논평자가 보기에 강 교수의 이러한 두 가지 파악방식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떤 충분한 근거도 없고 오히려 중대한 오류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예컨대 논리적으로 일목요연한 표기법에서 ‘참’과 ‘거짓’이 제거될 수 있다는 주장은 명백한 오류이고, ‘논리의 적용’을 언급할 때에는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을 왜곡하고 있다. 또한 강 교수는 자신의 해석이 전통적 해석과 단호한 해석 양자를 진정으로 종합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전통적 해석을 다룰 때면 명백하게 논점을 일탈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논평자는 강 교수의 주장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 논평자가 보기에는 이 논문에서 새롭게 주장된 것들은 대부분 근거가 취약하거나 ‘중대한 오류들’을 범하는 것이며, 오류를 범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대부분 한국분석철학계에서 이미 논의가 된 것으로서 새로울 것이 거의 없다.
『논고』의 ‘무의미’를 ‘논리적으로 일목요연한 표기법에서의 제거가능성’으로서 규정하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것이고, ‘무의미’를 ‘필연적으로 참인 것’으로 파악하자는 제안은 억측에 불과하다. 『논고』의 ‘중대한 오류’가 ‘논고의 명제들이 결국은 무의미(unsinning)하다’는 언명이라는 지적은 『논고』라는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토대로 ‘무의미’의 개념이 규정되지 않는 한, 피상적이고 지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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