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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인문사회

소설로 담은 ‘색즉시공 공즉시색’ - 보르헤스, <알렙><픽션들>

by 내오랜꿈 2007.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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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담은 ‘색즉시공 공즉시색’
[고전다시읽기] 보르헤스<알렙><픽션들>

이진경/서울산업대 교수·사회학 
출처 : <한겨레> 2007년 03월 15일 

 

[한겨레] 고전 다시읽기 / 보르헤스<알렙><픽션들> 

할 말이 별로 없어서 글을 쓰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쓰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자니 글이 어려워지고, 일부분만 쓰자니 쓰다가 만 것 같고. 그러나 읽을 게 많은 사람은 긴 걸 읽기 어렵듯이, 쓸 게 많은 사람 또한 길게 쓰기 힘들다. 짧게 짧게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론 모두 다는 아니겠지만, 할 말이 많아지면 말이나 글이 적어지게 된다. 할 말이 무한히 많다면 한마디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가령 말없이, 혹은 한마디말로 무한한 전체를 말하는 선(禪)이 그렇다. 보르헤스의 소설도 그런 것 같다. 그의 소설들은 다 짧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도 읽는다. 그러나 그 소설 안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하나하나 캐내면 백과사전이 될 정도로 많은 것이. 

소설 짧지만 수많은 것 담겨 

하지만 이 많은 것이 모르는 사람에겐 아마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대신 “소설이 뭐 이래?”라며 던지게 될 지도 모든다. 그럴 줄 알았던 걸까? 그는 그게 비밀을 감추거나 전수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은밀하게 숨기거나 전수되는 비밀은 아주 저급한 것에 속한다.”(<불사조교파>), 최고의 비밀은 가리지 않아도 보지 못하는 것이고 감추지 않아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도 장자라면 쉽게 동의하며 “천하에 천하를 감춘다”고 바꿔 말했을 것이다. 

그는 이 지고한 비밀을 찾으려 한다. 때로 그것은 진실 내지 진리를 향하기도 하고(<엠마 순스>, <신학자들>), 시간이란 개념을 향하기도 하며(<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 <비밀의 기적>), 때로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죽지 않는 사람>), 때로는 수학적 무한을(<바벨의 도서관>, <모래의 책>, <알렙>), 혹은 돈이나 전쟁에 미친 사람의 마음을 향하기도 한다(<자이르>, <독일 레퀴엠>). 이를 통해 그는 “깨달음 자체인 사람”을 찾으려는 게다(<알모따심으로의 접근>). 눈이 멀도록 도서관을 뒤져 찾아낸 그 비밀들을 그는 모두 말해주고 싶어한다. <알렙>이나 <픽션들>뿐만 아니라 다른 소설집들 역시 그 비밀을 알려주는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그러나 진실 아닌 허구(픽션!)처럼 들릴지도 모르고, 사실 아닌 환상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자신의 소설집 제목을 ‘픽션들’이라고 해서, 그것이 픽션임을 의심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없는 작가를 마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실재하는 작품들과 나란히 없는 작가의 없는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주석을 달기도 하며, 있는 작가의 없는 작품을 슬쩍 ‘인용’하기도 하여 정말 어떤 게 진짜 있는 거고, 어떤 게 허구인지 알 수 없게 뒤섞어 놓는다. 그걸 알아보는 사람의 웃음소리와 함께. 그래서 보르헤스의 진지한 어투, 객관적인 문장은 진지한 만큼 우습고 객관적인 만큼 유머러스하다. 가령 <바벨의 도서관>은 근대 수학의 유명한 명제들을 끌어들여 근대 수학의 존재 개념 내지 진리 개념, 그 바탕에 있는 세계관을 수학적 형식의 스타일로 패로디함으로써 존재와 진리, 지식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되던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알려주는 비밀에는 철학자보다 깊은 사색이 담겨 있다. 예컨대 그는 위선과 증오에 봉사하는 진실과, 진실에 봉사하는 약간의 거짓을 통해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대해 묻고 있다. 혹은 “그것을 본 사람이라면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화폐(‘자이르’)처럼 실재보다 강한 힘을 갖는 허구를 통해 사실과 환상의 경계에 대해 묻는다. 환상의 힘, 그것은 마치 ‘자이르’가 그렇듯이, 환상에 사로잡힌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환상에 사로잡힌 이에게만 그것은 실재인 것이다.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이 밤낮으로 자이르를 생각하고 있다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일까? 지구, 아니면 자이르?” 세계가 그처럼 환영 같다면, 그것은 순진하게 ‘없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워진다.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 세계란 그런 것이다. 

직선적인 시간 개념 내던져 

또 그는 직선적인 시간과 전혀 다른 종류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가령 어떤 살인사건이 있을 때, 그것은 그 이전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에 따라 그 성격이 전혀 달라진다. 그중 “어떤 것은 상징적, 어떤 것은 초자연적, 어떤 것은 탐정소설적, 어떤 것은 심리적, 어떤 것은 공산주의적, 어떤 것은 반공산주의적 등등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허버트 쾌인…>) 시간이란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처럼 어떤 사건들, 어떤 요소들이 만나면서 다르게 분기하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그는 시간이 모든 반복에 차이를 새겨넣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에서 그는 세르반테스의 소설과 단어 하나, 쉼표 하나 다르지 않은 동일한 문장이 20세기 프랑스에서 씌어졌을 때 내용이나 문체에서 모두 전혀 다른 것이 된다는 것을 능청스런 말투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시간은 그 안에 새로이 차이가 끼어들 수 있는 수많은 공백을 포함하고 있다. <비밀의 기적>에서 체포되어 총살당하기 직전의 작가는 총알이 날아오는 사이에 자신의 작품을 완성할 시간을 얻어 작품을 완성하고 그 직후 날아온 총알에 죽는다. 총알이 나는 사이, 1년의 시간이 끼어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총을 쏜 사람에게는 지각되지 않는 시간이다. 빠르게 날아가는 우주선 안에서 자신이 느끼는 시간과 그것을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안다면, 이런 상상을 그저 황당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심지어 그는 1946년의 열망에 의해 1904년의 죽음을 고쳐 죽는 사람을 통해 현재를 통해 과거를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가 질문한다(<또 다른 죽음>). 이러한 시간의 사유를 통해 시간이란 동일한 속도로 한 방향으로 흐르는 죽음의 신이 아니라, 모든 방향으로의 차이와 변화에 열린 생성의 지대임을 보여준다. 

또 그는 <죽지 않는 사람>을 빌어 불사에 대해 말한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이 불사의 존재임을 확인한 수, “불락에서 <천일야화>를 필사하기도 하고, 사마르칸드의 감옥에서 장기도 두고, 보헤미아에서 점성학을 연구하기도” 하며 수많은 삶을 산다. 불사의 존재란 이처럼 끊임없이 다른 종류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따라서 불사의 존재란 끊임없이 죽는 존재고, 그 모든 죽음을 거부하지 않고 자신의 삶 안에 담을 수 있는 존재다. 죽음을 거부하고 기존의 동일한 삶을 지속하려는 집착을 던진다면, 사실은 우리 모두가 불사의 존재임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우주 전체를 응축한 하나의 존재 

이렇게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자 했고, 세상의 모든 삶의 살고자 했던 그는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알려줄 말을 찾는다. 세상의 모든 말들을 응축한 하나의 말, 신의 말을 찾아나선다. 가령 집합론에서 말하는 실수의 ‘농도’(쉽게 말하면 ‘갯수’)인 알렙이 그것이다. 모든 실수를 포함하는 하나의 수. 그것을 통해 우주 전체를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존재자를 본다. 먼지 하나에 시방삼세의 우주 전체가 담겨 있음을 보았던 의상대사처럼. 그리고 모든 존재자가 그렇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인간의 언어들에서조차 우주 전체를 암시하지 않는 발화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즉 ‘호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를 낳은 호랑이, 그가 삼켜버린 사슴들과 거북이들, 사슴들이 뜯어먹은 목초, 목초의 어머니인 대지, 대지를 낳은 하늘을 말하는 것이다.”(<신의 글>) 

그가 말해준 것을 그저 ‘패스티쉬’나 진실의 허구성에 대한 것으로 밖에는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 덕분에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말해준 것을 제대로 알아들은 사람들도 있었다. 푸코나 들뢰즈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알아들은 것이 보르헤스의 비밀의 전부가 아닌 한, 다시 그의 말에 귀기울이고, 그가 알려준 비밀을 다시 말하는 사람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 


서평자 추천 도서 

<픽션들> <알렙> <셰익스피어의 기억>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민음사 펴냄.
보르헤스의 소설집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펴냄.
문학에 대한 보르헤스의 강연 

<보르헤스의 문학전기> 김홍근 지음, 솔 펴냄.
전기 형식을 빈 보르헤스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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