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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품으로서의 생애
레이 몽크,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문화과학사(2000)
작가의 삶은 작품의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어야 한다. 따라서 훌륭한 평전의 주인공은 의미 있는 작품을 쓴 사람이기보다는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다. 이 점에서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비트겐슈타인의 생애와 철학을 연결시키려는 저자의 소박한(?) 야심과는 상관없이 훌륭한 평전의 조건을 갖추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이 아니라 그의 삶인 '철학하기'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유럽의 최고 갑부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전반기 삶을 지배했던 것은 부정직한 여러 허식들과의 대결이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된 거짓말에 대한 결벽증적인 자기 검열, 화려한 장식이 없는 기능 중심의 가구들, 센티미터 수준까지 정확히 계산해서 지어주었던 누이의 집, 그리고 아버지가 물려준 막대한 유산에 대한 거부(스스로 번 것이 아닌 어떤 돈도 받지 않기 위해 그는 온갖 치밀함을 동원한다!). 학위 논문으로 동과되기 위해서는 논문의 여러 형식적 요건들(주석을 다는 것 따위)을 갖추어야 한다는 무어의 편지에 그토록 분노했던 것도 그것들이 논문의 훌륭함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허식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만의 유혹과 부정직의 허식을 떨어내려는 투쟁이 철학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침묵의 요구로 나타난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의 스승이었던 러셀은 잉크 세 방울 떨어뜨리며 세계에 최소한 세 개의 사물이 있어야 함을 인정하라고 애원했지만, 그는 세계 전체에 대한 어떤 주장도 무의미하다고 거절했다. 그가 인정한 것은 단지 '종이 위에 세 방울의 얼룩 무늬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부터인가 철학이 "움직이는 방향을 계속 바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사실 철학의 문제이기 이전에 삶의 문제였다. 처음에 그는 명제를 세계에 대한 그림으로 생각하는 방식으로 논리학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 따르면, 세계가 어떤 질서를 가지고 있고 언어가 그것을 표상한다면, 명제의 참/거짓은 언어와 그 대상인 실재의 일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이전 모델을 완전히 뒤엎기라도 하듯이, "언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언급하지 않고 그것에 대응하는 실체를 찾는 시도는 헛되다"고 말한다. 단어의 의미는 삶과 무관한 영역에 자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삶의 형식 자체로부터 얻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의 새로운 철학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표현되는 그의 새로운 삶이다. 특히 러시아의 노동자로 살고 싶어했다는 이야기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유럽의 낡은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이 혁명 후 러시아에서 시작되고 있음에 흥분했다. 불행히도 러시아는 그 '저명 인사'를 노동자보다는 대학 교수로 모시고 싶어했고, 비트겐슈타인은 그것을 거부함으로써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나는 이 책에서 그의 철학적 전환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삶의 전환을 목격했다. "빈손으로 떠나느니 이 요새에서 피흘리며 죽겠다"는 절규도, 대화에서 친구들의 논리적 헛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전투적인 태도도 사라졌다. 대신 그는 삶의 행복을 위해 철학을 사용할 줄 아는 삶의 기술을 얻었다. 친구들은 유럽 최고 갑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빈털털이가 된 그를 즐겨 불렀고, 그는 기꺼이 그들에게 자신의 철학적 재능으로 얻은 보물들을 나누어주면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는 『논고』나 『탐구』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자신의 또 다른 위대한 작품을 이렇게 마감했다.
"친구들에게 전해주시오. 나는 멋진 삶을 살았다고."
고병권, 「위대한 작품으로서의 생애」, 『BOOK+ING 책과 만나다』, 그린비(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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