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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생태환경

‘인터스텔라’ 속 시간지연, 지구에서도 매일 일어난다

by 내오랜꿈 2014.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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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속 시간지연, 지구에서도 매일 일어난다


출처 : 인터넷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665617.html)  2014.11.22

파토 원종우 <태양계 연대기> 저자



영화 ‘인터스텔라’와 블랙홀


▶ ‘영화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우주 자체다.’ 이런 평가가 어색하지 않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가 지난 6일 개봉된 뒤 관람객 500만명을 넘어서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 블랙홀, 웜홀 등 어려운 물리학적 개념을 영화적 상상력 안에 성공적으로 입주시켰습니다. 우리가 <인터스텔라>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신의 시간만 10경분의 4 빨리 간다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에스에프(SF) 영화 <인터스텔라>가 큰 화제다. 복잡한 작품의 내용과 국내에서의 흥행 열풍 양면에서 그렇다. 이미 관람객 500만명을 넘어서 <명량> 이전에 국내 최고 흥행작인 <아바타>보다도 표 팔리는 속도가 빠르다고 하니 그야말로 대박이다. 그 덕에 물리학과 천문학의 주제인 블랙홀과 웜홀이 일상적인 관심사가 되고, 난해하기 그지없는 일반상대성이론과 5차원 개념이 술자리에서 안줏거리로 오르내린다. 국내에서 유독 흥행이 잘된다고 하니 그 점도 흥미롭다. 그런 만큼 이 영화에 대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논할 거리가 많지만, 이 코너의 이름은 ‘별’이니 우리는 별의 관점에서 주로 이야기해보자.


왕복여행 가능한 킵 손의 웜홀 모델


사실 이 영화는 별이 주인공인 별 영화다. 웜홀, 블랙홀, 행성 등 여러 종류의 천체와 그 천체들과 주인공의 상호작용이 줄거리의 대부분을 끌고 가기 때문이다. 제목 중의 ‘스텔라’도 별이라는 뜻이다. 이 제목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인터내셔널’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말을 떠올리면 된다. 그저 나라 대신 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딱딱한 직역이나 모호한 의역을 하지 않더라도 넓고 큰 우주의 스케일과 그 속을 여행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별들은 어떤 역할을 할까. 일단 멸망의 길로 치달아가는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탈출구로서 웜홀이 등장한다. 웜홀은 그 자체로 별은 아니고 아직 실재 여부가 확인되지도 않았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블랙홀과 마찬가지로 별이 죽어서 만들어지는 천체일 것이다. 웜홀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은 사과의 벌레 구멍에서 유래했다. 요즘은 흔치 않지만 예전에는 사과의 한쪽과 다른 한쪽을 연결하는, 애벌레가 만든 구멍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구멍은 사과 표면의 서로 떨어진 두 지점을 껍질의 곡면을 따라가는 것보다 빠르게 연결해 주는 지름길인데, 우주에도 중력 붕괴로 인한 블랙홀의 변종으로 이런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웜홀의 존재와 그를 통한 우주여행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제시한 이가 바로 영화에서 자문을 넘어 프로듀서로까지 이름을 올린 물리학자 킵 손이다. 그가 1988년에 발표한 논문의 이름에는 영화의 제목과도 깊이 연관되는 ‘인터스텔라 트래블’, 즉 항성간 여행이 등장한다.


원래 웜홀의 개념은 입구인 블랙홀과 출구인 화이트홀로 나뉘어 있었다. 화이트홀은 블랙홀과 반대로 빛을 포함한 모든 것을 토해내는 흰 구멍인데, 그 존재 근거는 블랙홀에 물체들이 빨려 들어가도 질량의 총량이 변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 질량을 어디론가 밖으로 방출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순수하게 수학적인 가정이었는데 그나마 블랙홀이 강력한 제트 형태로 가스를 분출할 수 있다는 점이 제기되고, 2008년에는 이 제트가 멀리 떨어진 은하를 타격하는 장면까지 관측되자 용도폐기 되었다. 그래서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구분하지 않는 킵 손의 웜홀 모델이 각광을 받게 된다.


하지만 실용적인 측면에서 이쪽이 낫다. 왜냐하면 이전의 웜홀 구조로는 모든 ‘인터스텔라’ 여행은 편도여행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옛 이론에 따르면 블랙홀로는 아무것도 나올 수 없고 화이트홀로는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한쪽은 언제나 입구, 다른 쪽은 언제나 출구다. 이래서는 기껏 큰맘 먹고 블랙홀에 뛰어든다 한들 자칫 우주의 아무것도 없는 지역에서 튀어나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에 빠지기 십상이다. 따라서 웜홀을 발견한다 한들 감히 여행을 감행하려 들기도 어렵고, 이 영화 같은 에스에프 스토리에 사용하기도 마땅찮은 것이다.


이렇게 킵 손의 웜홀 개념 덕에 이 영화에서는 웜홀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여행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인듀어런스호가 도착한 우주의 먼 곳에는-다른 은하계라는 설정이니 실은 인터스텔라가 아니라 ‘인터갤럭틱’이겠다-우연인지 필연인지 또 하나의 죽은 별인 블랙홀이 놓여 있고, 웜홀 외에는 장거리 우주여행을 할 기술도 방법도 없는 주인공네로서는 이 근처에서 어떻게든 인류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찾아야 할 입장이 된다.


문제는 블랙홀 주변에서는 강한 중력으로 기묘하고도 위험천만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동료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산더미만한 파도는 일반적인 파도가 아니라 블랙홀의 중력에 의한 거대한 조석간만의 결과로 보는 게 옳겠다. 행성이 블랙홀에 꽤 가깝게 있다 보니 행성이 자전하면서 블랙홀 쪽의 면과 반대쪽에 받는 중력의 크기에 서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서해의 뻘에서 게라도 한 마리 잡아봤거나 제부도의 속칭 ‘모세의 기적’을 접한 사람이라면 지구의 위성인 달의 중력이 만들어내는 조석간만의 힘을 잘 알 것이다. 이때 달 대신 가까운 거리에 무지막지한 블랙홀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큰 파도도 별로 이상할 게 없다.


블랙홀의 또다른 영향은 극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간지연 효과다. 주인공 쿠퍼와 아멜라는 문제의 행성 표면에서 단 몇 시간을 보냈을 뿐이지만 우주 공간의 인듀어런스호에서 기다리던 도일-그리고 지구와 우주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수십년이 지나고 만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예견했듯이 이런 일은 블랙홀같이 중력이 아주 강한 곳 주변에서 실제로 벌어지는데, 실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도 늘 일어나고 있다. 모든 물체에는 질량이 있고, 질량이 있는 곳엔 중력이 있고, 크건 작건 중력은 반드시 시공간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에서는 그 효과가 너무 적어서 알아채기 어렵고 믿기도 힘들지만 정밀한 실험을 통해 그 존재는 여러 번 증명되었다. 가장 극적인 예는 미국표준기술연구소의 연구 결과다. 2010년 제임스 칭원 초 박사팀은 ‘37억년에 1초’ 미만의 오차를 가진 초정밀 광시계를 이용해 지표에서 두 뼘이 채 안 되는 높이에서도 중력의 차이에 의한 시간지연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 결과는 사이언스지에 게재됐다. 연구에 따르면 33㎝ 높이에 놓은 시계가 지면의 시계에 비해 10경분의 4 정도 빨리 간다. 이것은 인간이 모두 정확히 79년을 산다고 가정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33㎝ 높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900억분의 1초 일찍 죽는다는 뜻인데, 물론 실생활에서의 영향은 전무하지만 물리학적으로는 큰 의미를 가진다.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중력

기존 블랙홀-화이트홀 모델은

한번 빠지면 나오지 못했다

킵 손의 새로운 웜홀 모델

시공간 돌파한 왕복여행 가능

시간은 사실 상대적인 것

해발 33㎝에선 10경분의 4 빠르다

영화 ‘인터스텔라’ 열풍은

절대적 시공간 벗어나려는

인간의 무의식적 열망 아닐까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주인공 일행이 도착한 별에는 블랙홀 주변의 강한 중력 때문에 거대한 조석간만이 있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은 빨리 죽는다


그런데 이 시간지연 효과가 블랙홀 주변이나 광속에 가깝게 움직이는 물체들의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피안의 것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 효과가 우리 생활 속에서 매일같이 쓰이는 분야도 있는데, 바로 우리가 늘 활용하는 내비게이션의 위성위치추적장치(GPS)가 그것이다. 지피에스 좌표 신호를 보내는 위성들은 대개 지구의 중궤도, 약 2만㎞ 상공에 떠 있다. 따라서 지구의 중력이 지표보다 훨씬 덜 미치기 때문에 지구의 우리 관점에서 보면 위성의 내부 시간이 조금씩 빨리 간다. 그 시간 차이가 아주 작긴 하지만, 원리상으로는 지상의 우리를 파도 행성에서의 쿠퍼와 아멜라, 그리고 지피에스 위성을 인듀어런스호와 그 속에서 기다리던 도일에 대입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지피에스 위성은 시속 1만3800㎞의 고속으로 지구를 공전하기 때문에 중력 효과와는 별개로 내부 시간이 늦어진다는 점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크거나 속도가 빠르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시간이 늦게 간다. 그런데 지피에스 위성은 약한 중력 상태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전자(약한 중력)는 시간을 빠르게 하고 후자(빠른 속도)는 느리게 한다. 따라서 지구상에서 지피에스 좌표를 정확히 알려면 컴퓨터를 통해 이 빨라짐과 느려짐의 오차를 계산해서 보정해줘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위치는 매번 엉뚱하게 나타나고 내비게이션은 아무 쓸모도 없을 것이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터스텔라 속 기묘한 세상은 실은 우리 삶에 이토록 가까이 있다.


이렇듯 별을 통해 별을 찾아가 별들이 만들어내는 위험하고도 신비한 조화를 겪으며 인간이 살 수 있는 별(행성)을 찾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 인터스텔라다. 물론 인간이 살아서 웜홀이나 블랙홀에 들어갈 수 있을지, 또 블랙홀 내부에 정녕 시간을 넘나드는 5차원 큐브가 존재할지의 여부는 그야말로 상상의 영역이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한 상상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바로 이 비밀스럽고도 신비한 우주의 속성이자 매력일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점을 잘 활용하고 또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도 이 뜻밖의 엄청난 흥행 돌풍은 무슨 연유일까? 개봉 전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난 후 과학자, 에스에프 전문가들과 함께 조심스레 점친 흥행 스코어는 300만을 넘지 못했다. 그 예상이 보기 좋게 깨진 것은 아마도 우주와 천체,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신비로운 과학 원리들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답답하기 그지없는 작금의 현실에서 벗어나 좀더 크고 아름다운 무엇인가로 향하고 싶은 사람들의 무의식적 열망이 반영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에서 달이 상징하듯, 예전부터 하늘과 별은 현실 너머 이상의 다른 이름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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