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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가 가르쳐 주지 않는 물리학
[나이 먹지 않으려면 우주여행을 가라]
출처:머니투데이(http://news.mt.co.kr/mtview.php?no=2014111818197171344&type=1) 2014-11-19
이종필(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Bk21플러스 휴먼웨어 정보기술사업단 연구교수)
출처:워너브라더스, '인터스텔라' 스틸컷 |
“우주여행 갔다 오면 정말로 나이를 덜 먹나요?”영화 를 본 지인들이 한결같이 묻는 질문이다. 정말로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게 이론적으로나 실험적으로 완전히 다 검증되고 확인된 과학적 사실이냐고 되묻는다. 과학자들이 정말로 그렇다고 대답하면 이미 실험적인 검증이 끝났다는 얘기다.
그렇게 놀라서 묻는 분들도 아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무너뜨렸다는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뭐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쳤을 이 말이 실제 우주여행이 현실이 되었을 때는 ‘인터스텔라’가 잘 보여주듯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상대성 이론은 서로 상대적인 운동을 하는 두 좌표계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론이다. 지구에 정지해 있는 딸 머피(제시카 채스테인)가 날아가는 우주선 안의 아빠 쿠퍼(매튜 맥커너히)의 상황이 궁금할 때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때 우주선이 지구에 대해 속도의 변화 없이 일정한 속도로만 날아가면 특수상대성 이론의 지배를 받고, 우주선의 속도가 변해서 가속운동을 하게 되면 일반상대성 이론을 동원해야 한다.
상대속도에 따라 시간과 공간도 달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머피가 관측한 쿠퍼의 시간과 공간은 지구에 남아 있는 머피 자신의 시간이나 공간과 같지 않다. 이는 우리의 상식이나 경험에 어긋난다. 시간은 언제 어디서나 그냥 똑같이 흘러갈 뿐이고 공간이라는 것도 누구에게나 붙박이장마냥 고정불변으로 존재하는 거 아닌가? 수천 년 동안 우리는 그렇게 알고 살아왔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이유는 인류의 그 오랜 인식이 우주와 맞지 않다는 것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저명한 물리학자인 미 스탠퍼드 대학의 레너드 서스킨드는 이를 두고 ‘생각의 회로’를 바꿔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시간과 공간 대신 아인슈타인이 지목한 우주의 근본적인 물리량은 바로 광속, 즉 빛의 속력이었다. 광속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똑같은 값을 가지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 옆에서 달리고 있는 자동차를 보면 속도가 느려 보인다. 그렇다면 가로등의 불빛은 어떨까?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가로등의 불빛은 정지한 사람이 보든, 움직이는 차 안의 사람이 보든 항상 초속 30만km의 똑같은 값을 가진다. 이것이 광속불변이다.
시간과 공간은 어쩌면 인간에게만 편리한 개념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이 우주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닌 이상 인간에게 편리한 개념이 우주의 근본 원리와 뭔가 관계가 있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래서 인간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하지만 우주의 근본 원리와 맞닿아 있는 광속을 중심으로 자연을 이해하는 것은 직관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쉬운 일이 아니다.
광속은 빛의 속력이니까 어쨌든 공간 속의 이동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만약에 우리가 이 우주를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광속불변을 중심으로 기술한다면, 시간과 공간은 언제 어디서든지 광속을 불변으로 유지하게끔 서로 뒤얽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은 아인슈타인 이래로 서로 무관한 별개의 양이 아니라 광속불변을 중심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시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광속불변만 유지된다면 시공간쯤이야 어떻게 뒤틀려도 상관이 없다. 상대성이론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렇다.
그 결과 지구에 남아 있는 머피가 우주선을 타고 가는 쿠퍼를 봤을 때 쿠퍼의 시공간은 머피의 시공간과 같지 않다. 머피가 관측한 쿠퍼의 시간은 느려진다. 이것은 우주선의 속도 때문에 시간간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편 우주선이 속도가 변하는 운동, 즉 가속운동을 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가속운동을 하면 관성력이라는 없던 힘이 생긴다. 차가 급정거하면 몸이 앞으로 쏠리고, 정지해 있던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갑자기 몸이 무거워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엘리베이터가 가만히 있고 지구의 질량이 갑자기 커졌다면 어떻게 될까? 아인슈타인은 여기서도 놀라운 통찰력을 발휘해서 우리 몸을 당기는 것이 관성력인지 중력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것을 등가원리라고 부른다.
쿠퍼가 타고 가는 우주선은 원운동을 한다. 원운동은 속도의 방향이 변하는 가속운동으로서 항상 바깥쪽으로 원심력이라고 부르는 관성력이 작용한다. 등가원리에 따르면 우주선이 원운동을 하기 때문에 바깥으로 힘을 받는지 아니면 거대한 중력이 작용해서 힘을 받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면 우주선의 원운동을 적절히 조절해서 원심력의 크기를 지구 위에서의 중력과 같게 만든다면 우주선에서의 생활은 훨씬 더 안락할 것이다.
중력은 시공간의 뒤틀림
등가원리는 중력에 대해 보다 심오한 결론을 도출한다. 운동하는 좌표계의 시공간은 일반적으로 크게 휘고 뒤틀린다. 가속운동이 더할수록 더 심하게 뒤틀릴 것이다. 그런데 등가원리에 따르면 가속운동은 중력과 동등하다. 이 둘을 연결시키면 중력은 시공간의 뒤틀림에 다름 아니라는 놀라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일반상대성 이론이며,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 하나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그렇다면 중력이 아주 센 지역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크게 뒤틀릴 테니까, 그런 지역을 지나가는 우주선의 시간은 지구에서의 시간과 다를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력이 세면 시간이 느려진다. 그래서 쿠퍼 일행이 블랙홀처럼 중력이 강력한 천체 주변을 지날 때 지구에서보다 훨씬 느리게 시간을 보낸다.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 강력해 빛조차도 그 주변을 벗어날 수 없는 천체를 말한다.
속도에 의한 시간지연(특수상대론)과 중력에 의한 시간지연(일반상대론)은 모두 실험적으로 검증되어 상대성이론의 예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미국의 표준기술연구소는 37억 년에 1초의 오차가 생기는 초정밀시계를 이용해서 시속 36km로 달릴 때 시간이 1경 분의 6배 느려짐을 관측했다. 이는 특수상대성 이론의 예측과 거의 일치하는 숫자다. 또한 이 시계는 워낙 정밀해서 불과 30cm의 높이차에서 중력이 달라져 시간이 지연되는 정도(10경 분의 4배)를 측정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일반상대론의 예측과 같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일상적으로 상대론적 효과에 의한 시간지연을 경험하고 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이나 내비게이션에 장착된 위치정보 시스템은 GPS 위성에서 신호를 받아 작동한다. GPS 위성은 고도 2만km 상공에서 시속 1만 4000km의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빠른 속도에 의한 시간지연이 하루에 약 백만 분의 7초, 높은 고도에 의한 시간선행(중력이 약하므로 시간이 빨리 간다.)이 하루에 약 백만 분의 45초 정도 된다. 이 보정을 하지 않으면 지상에서 수 km의 오차가 생긴다. 그러니까 상대성이론을 잘 모르면 GPS를 운영할 수 없다. 우주에서 뭔가를 하려면, 상대성이론을 꼭 알아야 한다.
뒤틀린 시공간을 가장 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천체는 블랙홀이다. 블랙홀은 중력이 극단적으로 강력해서 주변의 빛조차도 그 천체를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빛조차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계선을 사건의 지평선이라 부르며, 이것이 블랙홀의 크기가 된다. 지구를 블랙홀로 만들려면 대략 9mm로 압축하면 된다.
일단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면 빛도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블랙홀은 말 그대로 검다. 하지만 실제 블랙홀은 주변의 가스 등을 흡수하기 때문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블랙홀 영상도 그런 모습이다. 만약에 블랙홀이 회전하고 있으면 그 적도 주변으로 가스층이 얇게 몰려서 마치 토성의 띠 같은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이때 블랙홀의 질량이 워낙 커서 주변의 시공간이 심하게 뒤틀리면 블랙홀에 가려진 블랙홀 뒷면의 모습을 블랙홀의 앞에서도 볼 수가 있다. 이것을 중력렌즈 효과라고 한다.
중력렌즈가 작동하면 블랙홀 뒷면에 있는 가스 고리층이 휘어진 공간을 따라 시야에 들어온다. 마치 가스 고리를 블랙홀 위에서 본 것과 같은 모습이 정면에 겹쳐져 나타나는데, 그 결과 영화에서 본 것처럼 블랙홀 주변으로 둥근 고리가 감싸고 있는 가운데에 적도를 가로지르는 가스 고리의 납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블랙홀 주변을 감싸 도는 가스층은 보통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에 별다른 보호 장치가 없는 쿠퍼의 우주선이 어떻게 무사히 지나갔는지는 나도 의문이다.블랙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블랙홀의 가장 놀라운 성질을 하나 꼽으라면 아마 ‘호킹 복사’ 현상이 아닐까 싶다. 1970년대 초반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이 입자를 방출한다는 결론을 내놓는다. 이는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일어나는 양자역학적인 효과를 고려한 결과다. 양자역학은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자연의 원리로서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과학의 두 기둥을 이룬다. 양자역학으로 말미암아 고전적인 뉴턴역학의 결정론적 세계관이 막을 내리고 확률론적 세계관이 등장하게 되었다.
블랙홀이 입자를 방출하면 방출된 입자의 에너지만큼 블랙홀은 질량을 잃어버린다. 이 과정이 계속되면 블랙홀은 햇볕에 물방울이 말라버리듯이 증발해 버린다. 호킹은 블랙홀 속에 저장된 모든 물리적 정보가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 따르면 모든 물리적 정보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항상 보존된다. 이것을 블랙홀의 정보모순이라고 부른다. 호킹과 로저 펜로즈 등 상대성이론 신봉자들은 블랙홀에서 정보가 사라진다고 주장했고 서스킨드 등 주로 끈 이론을 연구하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정보가 손실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끈 이론이 발전하면서 블랙홀에서 정보가 손실되지 않는다는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끈 이론은 세상 만물의 근본이 1차원적인 구조물인 끈이라는 전제 위에 세워진 이론으로서, 끈에 대한 양자역학적 이론이다.
끈 이론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끈 이론 자체가 중력을 설명하는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무밴드처럼 생긴 고리모양의 끈은 중력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끈을 많이 끌어 모으면 이론상 블랙홀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끈 이론은 기본적으로 양자이론이므로 끈으로 블랙홀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정보가 손실될 리가 없다.
특히 1997년 후안 말다세나가 5차원 중력이론과 그 표면을 이루는 4차원에서의 양자이론이 동등하다는 충격적인 홀로그래피 이론을 주장하면서 블랙홀도 큰 전기를 맞게 된다. 블랙홀의 모든 것이 양자역학으로 설명된다면, 정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2004년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에서 정보가 손실된다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재밌게도 ‘인터스텔라’의 과학자문을 맡은 킵 손은 1997년 호킹의 편에 서서 정보보존을 주장했던 존 프레스킬과 내기를 했다. 호킹이 2004년 이른바 ‘항복선언’을 했을 때도 킵 손은 요지부동이었다.
인터스텔라를 보면 블랙홀 속으로 떨어진 쿠퍼와 로봇 타스가 그 속에서 획득한 정보를 바깥 세상에 전달하는 장면이 나온다. 킵 손도 정보가 블랙홀을 빠져 나간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시공간의 다른 차원을 통해 과거로 전달된다는 것일까? 영화만으로는 명확한 입장을 알아내기 어려웠다.
한편,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추락하는 쿠퍼와 타스는 블랙홀 속의 강력한 중력 때문에 낙하하는 방향으로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먼저 맛보게 될 것이다. 지표면에서야 지구 중력이 그다지 크지 않으니까 30cm 정도의 높이차에서 큰 중력의 차이를 느낄 수 없지만, 태양 질량의 수백억 배 내지 그 이상의 강력한 블랙홀 속이라면 약간의 위치 차이만으로도 엄청난 중력 차이가 생긴다.
이 정도 고통을 이길 수 있다면 블랙홀 속으로의 여행도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등가원리에 따르면 블랙홀 속으로 추락하는 동안에는 추락 가속도에 상응해서 반대방향으로 관성력이 작용하고, 이것이 블랙홀의 중력을 정확하게 상쇄하므로 쿠퍼와 타스는 그저 한가로이 자유낙하에 의한 무중력 상태를 즐기게 된다.
인터스텔라는 덧차원, 웜홀, 시간여행 등 여기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흥미로운 과학소재들이 많은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엉성한 스토리와 납득하기 힘든 갈등구조, 스토리와 융합되지 못하고 겉도는 듯한 과학적 내용들 때문에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우주와 과학과 인류를 이야기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국내 주요 대학에서 일반상대성 이론을 제대로 가르치는 대학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싶어 울적해지기도 한다. 쿠퍼를 우주로 보낸 나사(NASA)가 생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소련의 스푸트닉 충격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대학에서의 수학과 물리학 교육을 전면적으로 강화했던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2020년까지 달 탐사선을 보내겠다는 우리 정부가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머니투데이 테크앤비욘드 편집부 ][나이 먹지 않으려면 우주여행을 가라]인터스텔라를 보면 블랙홀 속으로 떨어진 쿠퍼와 로봇 타르가 그 속에서 획득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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