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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는 것들/Music

베시 스미스의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블루스로 토해낸 흑인여성의 운명

by 내오랜꿈 2007.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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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로 토해낸 흑인여성의 운명

스포츠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NHL 웨스턴컨퍼런스 중부지구에 소속된 아이스하키팀 "ST. LOUIS  BLUES" 일 것이다. 팀명인 블루스(Blues)는 팀 창단시 구단주가 오늘 소개되는 곡인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서 따왔다고 하니 꽤나 음악을 사랑한 사람이었나 보다. 

블루스란 음악장르는 그 역사를 알지 못하면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힘든 음악장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블루스의 정의는 '미국의 노예제도에서 비롯된, 서아프리카의 해안 지역으로부터 백인들에게 포획되어 유입된 흑인들이 자신들의 처지와 애환을 노래한 노동요(Work Song)를 시초로 하고 있는, 12마디의 화음조성 구조를 가진 음악'(신현준, 『록 음악의 아홉가지 갈래들』, 문학과 지성사)이라고 한다. 하지만 블루스는 하나의 음악 장르 명칭에만 머물지는 않는데, 이른바 '블루지'한 상태란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지향점이자 인생관, 삶의 태도를 일컫는 의미로까지 확대되어 쓰이고 있다. 

흔히들 재즈는 뉴올리언즈에서부터, 블루스는 미시시피에서부터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뉴올리언즈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흑인들의 드럼 사용이 선동용 기구라는 미명 아래 금지되었기 때문에 흑인 밀집지역 중 하나였던 미시시피에서는 주로 보컬과 현악기 위주였기에 벤조나 급조한 형태의 악기, 가령 워시보드, 하모니카 또는 휘파람 등이 사용되어 블루스가 발전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뉴올리언즈의 경우 어느 정도 드럼이나 관악기의 사용이 가능했기에 후에 퍼레이드 음악의 유행과 함께 재즈가 발전된 것이라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블루스라고 하면 흔히들 '리듬앤블루스' 계열의 감미로운 곡으로만 오해되어 이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블루스는 그리 만만한 음악장르가 아니다. 블루스는 과연 어떤 음악인가. 앞에서 인용한 『록 음악의 아홉가지 갈래들』에 따르면 블루스의 원형은 19세기 중엽 미국 흑인들 사이에서 생겨난 대중가곡 및 그 형식을 출발점으로 한다. 곧 노예시대 흑인들의 노동가나 영가 등 주로 집단적으로 불리던 소박한 민요의 형식이 블루스의 모태가 된 것. 이 집단적 노동요가 개인이 부르는 노래로 바뀌면서 블루스가 탄생하게 된다. 

음악평론가 성기완은 블루스의 기원을 집단 노예생활을 하던 흑인들이 노예해방 이후 명목상의 해방을 누리지만 노예해방 첫 세대는 그때까지 노예상태로 살던 흑인들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데, 블루스의 ‘블루’, 즉 우울하고 슬픈 측면은 바로 그런 흑인들의 삶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정의한다. 따라서 블루스 음악 깊숙한 곳에는 흑인들의 고난의 역사와 비참한 생활이 묻어 있는 것이고, 인간적인 슬픔, 고뇌, 절망감 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블루스의 음악적 특징과 형식은 20세기에 들어와 재즈의 음악적 바탕이 되었고 대중음악 전반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로큰롤, 재즈, 리듬앤블루스, 힙합 등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사운드들의 뿌리는 블루스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블루스 음악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추적해 나가는 영화가 시리즈로 제작되어 소개되기도 했었다. 

미국의 EBS쯤 되는 PBS가 재즈 시리즈를 만들고 난 이후 재즈의 기층에 있는, 어쩌면 미국 팝의 모든 장르의 기층에 있는 토대인 ‘블루스’의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면서 그 제작 총지휘를 마틴 스코시즈에게 맡긴다. 스코시즈는 다시 이 기획을 자신을 포함한 7명의 감독에게 나누어 각자 스타일대로 블루스에 접근하는 영화를 만들게 한다. 이렇게 해서 블루스 음악의 발자취를 뒤좇아보는 시리즈가 탄생한다. 

이름만 들어도 그 무게가 느껴지는 7명의 감독이 만든 블루스 시리즈물은 <고향에 가고 싶다>(마틴 스코시즈), <소울 오브 맨>(빔 벤더스), <피아노 블루스>(클린트 이스트우드), <레드, 화이트 & 블루스>(마이크 피기스), <아버지와 아들>(마크 레빈), <악마의 불꽃에 휩싸여>(찰스 버넷), <멤피스로 가는 길>(리처드 피어스) 등이다. 우리나라에는 빔 벤더스의 <소울 오브 맨> 1편만 극장 개봉되었다(다른 시리즈물은 <서울아트시네마>나 <시네마테크부산> 등에서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다).

지난 2004년에 DVD 박스세트로 발매되었으나 절판되었는데, 이번에 재발매된다. 당시에는 1편당 10,000원이 넘는 가격이었는데, 이번엔 7편 박스세트를 32,8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마니아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아래는 [The Blues] 시리즈 7편의 영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영화평론가 심영섭의 <소울 오브 맨>에 대한 간략한 평이다. 빔 벤더스의 전작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과 비교하면서 다루고 있기에 옮겨 놓는다(<씨네21>에 네티즌 리뷰로 실린 글이다). 

2007 10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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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노래 ② 베시 스미스의 〈세인트루이스 블루스〉(1925년)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0 07


»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방대한 단일 재발매 프로젝 트”라 불렸던 베시 스미스 박스세트 시리즈
 

“아일랜드인은 유럽의 검둥이고, 더블린 사람은 아일랜드의 검둥이니까.” 

더블린의 후락한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영화 〈커미트먼트〉(1991, 앨런 파커 감독)에서 레코드 제작자를 꿈꾸는 주인공은 자신들이 흑인음악을 ‘연주해야만 하는’ 이유를 그렇게 풀이했다. 그 표현을 빌리면 1920년대 블루스 초창기의 유명한 가수들이 죄다 여성이었던 까닭을 설명할 수 있다. ‘흑인여성은 검둥이 중의 검둥이였기 때문’이다. 블루스는 인종차별로 억압받은 미국 흑인역사의 산물이었고, 흑인여성은 거기에 성차별의 중압까지 부과받은 열등한 피조물이었던 것이다. 

1920년대 최고의 가수였고 현재까지도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의 하나로 꼽히는 베시 스미스(1894~1937)는 인생을 통해 블루스를 살았던 인물이다. 1923년 80만장이 팔려나간 싱글 〈다운하티드 블루스〉로 파산 직전의 ‘콜럼비아’ 레코드사를 기사회생시키며 극적으로 데뷔한 스미스는 당대 가장 성공한 흑인 예술가였다. 후대의 영향력도 거대하다. 빌리 홀리데이, 마할리아 잭슨, 아레사 프랭클린, 재니스 조플린- 각각 재즈, 가스펠, 솔, 록을 대표하는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하나같이 그를 영감의 원천으로 꼽았을 정도다. 풍부한 성량과 세밀한 표현력을 동시에 갖춘 스미스의 보컬은 블루스의 미묘한 본질, 즐거운 노래에도 눈물이 담겨 있고 슬픈 노래에도 낙관이 실려 있는 운명적 아이러니를 감동적으로 설득한 궁극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는 베시 스미스 최고의 노래일 뿐만 아니라, “재즈의 〈햄릿〉”이라 불리는, 더블유시 핸디 원작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해석이다. 주지하다시피, 1920년대는 아직 블루스와 재즈가 개별적인 장르로 완전히 분기하지 않은 상태였다. 스미스의 존재가 그 경계를 나눴다. 그래서 프로듀서 존 해먼드는 그의 노래가 “오늘날 블루스의 바로 그것”이라고 평했다. 스미스의 노래는 구전으로만 남은 영가, 블루스, 재즈 사이의 근원적 동질성과 상호 영향관계에 대한 로제타스톤이다. 또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는, ‘블루스의 어머니’ 마 레이니에게 발탁된 스미스가 ‘블루스의 아버지’ 핸디의 곡을 통해 ‘블루스의 여왕’에 등극했음을 보여주는, ‘고전 블루스’ 가계도의 꼭짓점이기도 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로도 유명한 소설 〈컬러 퍼플〉의 작가 앨리스 워커는 여성 블루스 가수, 특히 베시 스미스에게서 창조적 자극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작품에는 스미스를 모델로 한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은 소설과 다르다. 스미스의 말년은 초라하고 비참했다. 자신이 사랑한 남자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그는 거의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이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었다는 자가 장례식 기금을 챙겨 사라지는 바람에 그의 무덤이 묘석도 없이 30년 이상 버려져 있었다는 대목에는 말문조차 막힌다. 

베시 스미스는 흑인이었고 여성이었다. 그것은 그가 끝내 벗어나지 못한 원죄의 굴레였다. 그가 동명의 단편영화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서 노래와 연기로 새겨 넣은 장면은 바로 자신의 인생이었던 것이다.(영화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는 외국의 유명 유시시 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은석/음악평론가



[The Blues] 시리즈 

1. The Blues 1 - Feel Like Going Home

- 감독 : 마틴 스콜세이지 
- 시간 : 1시간 19분
- 내용 : 초기 블루스의 역사를 다루는 전형적인 블루스 다큐멘터리물. 존 & 앨런 로맥스 부자의 '의회 레코딩', 블루스의 형성과 발전(20세기 초기에서 중반까지), 그것과 서아프리카 음악과의 관계 등에 대한 고찰. 후반부는 아프리카 말리로 직접 날아가서 진행. [라스트 왈츠] 등을 찍어봤던 감독답게 음악다큐에 접근하는 법을 잘 이해하고 있다.
- 호스트 : 코리 해리스
- 주대상 : 레드벨리(리드벨리), 머디 워터스, 선 하우스, 타지 마할, 찰리 패튼, 쟈니 샤인즈, 로버트 존슨, 캡 모, 존 리 후커, 살리프 케이타(이하, 아프리카), 하비브 코이테, 알리 파카 투르.(과거의 기록영상 중심. 물론 아프리카 부분은 모두 새 것.)


2. The Blues 2 - The Soul of a Man

- 감독 : 빔 벤더스 
- 시간 : 1시간 39분
- 내용 : 스킵 제임스와 J.B. 르누아, 두 사람에게 집중 포커스를 맞춘 영화. 둘에 대해 블라인드 윌리 존슨이 설명하는 형식의, 다큐멘터리와 연출이 묘하게 섞인 작품.(사실 존슨은 앞의 둘보다 훨씬 빨리 죽었음. 존슨의 목소리 역은 로렌스 피쉬번.) 젊은 시절의 스킵 제임스와 블라인드 윌리 존슨에 관한 영상은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연출이며, 후년의 그들에 관한 영상 등 나머지는 다큐멘터리가 맞음.
- 주대상 : 스킵 제임스, J.B. 르누아, 그리고 블라인드 윌리 존슨
- 찬조출연 : 루 리드, 보니 레이트, 벡, 닉 케이브, 이글 아이 체리, 존 스펜서 익스플로젼, 셰메키아 코플랜드, 로스 로보스, 루신다 윌리암스, 카산드라 윌슨.(이들이 두 사람의 곡을 각자 리메이크하는 스튜디오 영상.)


3. The Blues 3 - The Road to Memphis

- 감독 : 리차드 피어스 
- 시간 : 1시간 28분
- 내용 : 멤피스 블루스에 대해. 2002년 W.C. 핸디 어워즈를 위해 멤피스에 모여든 블루스맨들의 회상을 중심으로 멤피스 블루스와 빌 스트리트의 흑인문화를 조명. 40~50년대 전성기, 락앤롤 등장 이후의 쇠퇴, 60년대 이후의 쇠락과 다른 지역으로의 중심이동 등. TV물과 음악영상을 주로 만들어온 감독답게 다큐적으로 잘 만들어졌음.
- 주대상 : B.B. 킹, 루퍼스 토마스, 아이크 터너, 리틀 밀튼, 로스코 고든, 바비 러쉬, 샘 필립스(프로듀서).(주로 새로 찍은 영상.)


4. The Blues 4 - Warming by the Devil's Fire

- 감독 : 찰스 버넷 
- 시간 : 1시간 28분
- 내용 : 1956년의 어느날, 11세 소년이 남부의 삼촌을 찾아가 미시시피와 뉴 올리언즈의 문화를 체험하며 블루스의 뿌리를 더듬어간다는 구성. 극영화와 기록영상이 뒤섞여있음.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허술. 상대적으로 블루스우먼들을 많이 다룸.
- 기록영상 : 빅 빌 브룬지, 선 하우스, 메이미 스미스, 아이다 콕스, 다이나 워싱턴, 소니 보이 윌리암슨 2세, W.C. 핸디(음성), 리버랜드 게리 데이비스, 미시시피 존 허트, 머디 워터스, T-본 워커, 라이트닝 홉킨스, 베시 스미스, 윌리 딕슨, 브라우니 맥기 & 소니 테리, 존 리 후커.(모두 과거의 짧은 기록영상.)


5. The Blues 5 - Godfathers and Sons

- 감독 : 마크 레빈 
- 시간 : 1시간 35분
- 내용 : 시카고 블루스에 대해. 체스 레코드의 설립자 레너드 체스(폴란드계 유태인)의 아들인 마샬 체스와 전설적인 랩그룹 퍼블릭 에네미의 리더 척 D.가 의기투합하여 블루스와 힙합을 결합한 새 레코딩을 성사시켜가는 과정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마샬 체스와 그 주변인물들이 시카고 블루스, 체스 레코드, 맥스웰 스트리트의 문화에 대해 회상하고 논한다. 최근에 열렸던 '시카고 블루스 페스티벌'도 다룬다. 시종일관 떠들썩하게 들뜬 분위기.
- 호스트 : 마샬 체스, 척 D.
- 주대상 : 코코 테일러, 머디 워터스, 오티스 러쉬, 매직 슬림, 하울링 울프, 소니 보이 윌리암슨 2세, 보 디들리, 브라우니 맥기, 윌리 딕슨, 파인탑 퍼킨스, 아이크 터너, 코몬(래퍼), 샘 레이(드러머), 폴 버터필드, 일렉트릭 머드 밴드(머디 워터스의 68년 앨범 [일렉트릭 머드]의 세션진).(과거와 현재의 기록영상들이 섞여있음.)


6. The Blues 6 - Red, White & Blues

- 감독 : 마이크 피기스 
- 시간 : 1시간 32분
- 내용 : 영국 블루스에 대해. 블루스의 영국 유입, 확산, 미국으로의 역수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인터뷰 위주로 정리. 60년대 영국 블루스의 주역들이 대거 등장하는 인터뷰, 2002년 3월 11~13일 애이비 로드 스튜디오에서의 합동세션 장면, 그리고 과거 기록영상의 세 요소로 구성되어있음. 열심히 공부해야 되는 교재같이 빽빽한 느낌.
- 출연 (1) 연주와 인터뷰 : 제프 벡, 탐 존스, 밴 모리슨, 로니 도네건, 크리스 펠로우, 앨버트 리
- 출연 (2) 인터뷰 : 에릭 클랩튼, 존 메이올, 에릭 버든, 스티브 윈우드, 믹 플리트우드, 피터 그린, B.B. 킹
- 출연 (3) 기록영상 : 빅 빌 브룬지, 시스터 로제타 타페, 머디 워터스, 부커 T. & 더 M.G.s, 알렉시스 코너, 존 레논, 롤링 스톤즈, 크림


7. The Blues 7 - Piano Blues

-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 시간: 1시간 31분
- 내용: 피아노 블루스에 대해. 단, 이 분야가 희소한 까닭에 블루스만이 아니라 부기우기, 재즈, 소울, R&B 뮤지션도 대거 다룸. 이를테면 흑인 피아노 음악에 대해 다루고 있는 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마치 TV 심야 토크쇼같이 차분하고 정적인 연출. 노감독과 노음악인들이 편안하게 이야기하며 연주를 들려주는 분위기다. 다소 심심하지만 일곱 편 중 가장 희소성 높은 기록물.
- 호스트 : 클린트 이스트우드
- 출연 : 레이 찰스, 데이브 브루벡, 닥터 존, 파인탑 퍼킨스, 
- 기록영상 : 레이 찰스, 앨버트 애몬즈, 피트 존슨, 듀크 앨링턴, 빅 조 터너, 찰스 브라운, 아트 테이텀, 오스카 피터슨, 냇 킹 콜, 프로페서 롱헤어, 팻츠 도미노, 오티스 스팬, 카운트 베이시, 셀로니어스 몽크, 앙드레 프레빈 


흑인영혼 부르는 재즈 찬가 - 블루스 : 소울 오브 맨 

<영화평론가 심영섭> 

테리 즈위고프 감독의 `환타스틱 소녀 백서` 란 영화에는 평생 오래된 45회전 LP판만 모으는 음반 마니아인 시모어와 당돌한 소녀 이니드가 나온다. 머리를 온통 녹색과 보라색으로 염색하고 여자친구를 찾는 남자들의 광고에 전화를 걸어 잔뜩 들뜨게 한 뒤 바람을 맞추는 일이 삶의 전부인 소녀. 피곤함에 지쳐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자신의 세계에 푹 파묻혀 있고 싶을 때, 이니드는 블루스를 듣는다.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저 여자의 남자가 되느니, 차라리 악마가 되겠네` 라고 읊조리는 블루스 가수 스킵 제임스의 목소리를 들으면, 세상에 대한 들끓는 조롱으로 가슴을 움켜쥔 소녀도 어느덧 잠이 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블루스 소울 오브 맨` . 빔 벤더스 감독의 이 다큐멘터리는 삶의 진물을 증류해 흑인의 눈물과 함께 섞어 만든 블루스 음악에 대한 헌사이다. 영화는 엉뚱하게도 1977년 여름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쏘아올린 우주선, 보이저호와 함께 우주를 이리저리 떠도는 블루스 음악으로부터 시작된다. 우주의 공간에서 유영하며 메아리 치는 블루스의 음들을 따라 가다보면 이윽고 블루스의 역사를 소개하게 되는 로렌스 피시번의 목소리와 조우하는 지점에 이른다. 거기 흑인들의 역사가 블루스가 기다리고 있다. 

이미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에서 쿠바 노인들의 `현재` 를 통해 라틴음악의 싱싱한 낙관주의를 가장 첨단의 영상, 디지털 화면에 담은 바 있는 벤더스. 그는 이번에는 재즈 음악에 들어가 있는 `과거` , 가장 오래된 영화기법들에 천착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들, 블루스 가수들-블라인드 윌리 조, 스킵 제임스, J.B. 르누아르의 삶을 무성영화의 방식으로 재현하려 든다. 흑인들의 삶을 담은 역사 다큐멘터리와 뒤섞이는 가짜 다큐멘터리는, 아이리스와 자막을 써서 만든 화면들은, 영락없이 오래된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묘한 감흥을 준다. 즉, `블루스 소울 오브 맨` 은 현실과 재현, 혹은 음악과 역사의 경계를 허물며, 블루스의 심장이 흘리는 눈물이 대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조용히 말해준다. 우주를 유영하며 외계인도 감동시킬 만한 목소리를 지닌 이들의 노래는 길거리로 내몰린 흑인들의 찢어지는 가슴 한 조각에서 하느님에 매달리는 것 외에는 위안도 기쁨도 없던 흑인들의 맨발에서 흘러나온다. 블루스는 다시 솟아난다. 1900년대 새 어머니가 양잿물을 뿌려 눈이 멀어버린 한 블루스 가수의 개인사로부터 시작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죽음으로 끝이 나는 흑인들의 역사 안에서. 

그리고 그것은 이제 다시 백인들의 음악 안에서 부활할 것이다. 컬러로 채색된 보니 레이트의 쉰 목소리 사이로, 신들리는 듯 기타를 뜯는 닉 케이브의 손가락에서 블루스는 부활한다. 영화는 블루스와 그것들을 리메이크한 현재의 음악들을 번갈아 유영하며, 말해준다. 블루스는 영혼이며, 영혼의 승화이며, 블루스 가수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위무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이 콘크리트를 뚫는 양지식물의 햇살에 환해진다면, `블루스 소울 오브 맨` 은 고통과 초월의 샘에서 솟아나는 쥐어짜는 눈물 한 모금의 짠맛이 가슴을 친다. 그 시원한 물에 발을 한번 담가보시길. `블루스 소울 오브 맨` 은 과거, 현재, 역사, 백인, 흑인을 오가며 흑인 영혼을 초혼하는 벤더스의 진심 어린 재즈 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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