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망설임 끝에 보슬비를 맞으며 오르기 시작한 길은 채 30분이 지나지 않아 눈길로 바뀌었다. 팔의 흔들림과 내딛는 발걸음마다 발바닥에 전해오는 감촉, 헉헉대는 숨소리까지 모두 한 박자로 움직인다. 철쭉 능선길이 펼쳐진 마당바위 갈림길에서 대부분의 산객들이 <하늘다리> 방향으로 향하는데 우리는 먼저 정상부터 밟기로 했다. 정상을 향해 가다가 하늘다리 방향을 보니 어인 일인지 다리 위에서 여인네들의 비명 내지 고함 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정상을 코 앞에 둔 바위 틈 눈 위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늦잠 때문에 찰밥만 겨우 해서 챙겨 온 소박한 찬이지만 꿀맛이 따로 없다.
오롯이 우리만 독차지한 정상에서 따끈한 커피를 나누며 한참을 머물렀다. 그러다가 정상에서 절벽 아래를 보며 쌓인 눈을 향해 볼일을 보고 있는 걸 어느 여인네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바람에 증거로 남았다.
다시 찾은 마당바위에서 하늘다리를 목전에 두고 우박 같은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바람막이 모자 위로 떨어지는 얼음 알갱이가 마치 양철 지붕 위에 떨어지는 장맛비 소리 같다.
<하늘다리> 가는 길 입구
<하늘다리> 안내문
작년 12월 20일에 완공했다는 백아산 하늘다리. 750M 높이의 산봉우리 두 개를 연결하는 현수교 방식의 다리는 길이가 66M에 달하는데, 산에서 이 정도 규모의 다리는 구경한 적이 없다. 짙은 운무 때문에 골짜기 끝이 보이지 않는 750M 상공 위의 출렁이는 다리 위를 건너며 맛보는 공포심은 이루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아까 왜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는지 이제야 절로 실감할 수 있다.
점점 짙어가는 운무에 한 치 앞이 안 보여서 여기서 찍은 모든 사진은 이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