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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산 · 트레킹

거창 금원산 산행

by 내오랜꿈 201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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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6시. 때에 따라선 미묘한 시간이다. 아침일 수도 새벽일 수도 밤중일 수도 있는 시간. 아직은 먼동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계절이다. 어둠과 함께 집을 나선 산행길. 중간에 함양 시외버스터미널에 들러 동행을 픽업하느라 시간을 지체한 탓에 9시 30분이 넘어서야 금원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애초에는 신년 기념으로 덕유산 종주 산생을 계획했지만 대피소 예약을 실패하는 바람에 금원산 기백산 산행으로 방향을 틀었다. 겨울 덕유산 종주는 대피소 예약이 되지 않으면 시도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금원산도 워낙에 눈이 많이 오는 곳인지라 멋진 눈꽃 산행을 기대했다. 그런데 자연휴양림에 들어섰는데도 눈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고 얼음축제를 알리는 표지만 요란하다. 살짝 깃드는 실망감. 장비를 챙기고 본격적인 산행 시작. 휴양림 계곡을 따라 갖가지 얼음 작품들이 늘어서 있다.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든 작품들.




오늘 우리가 잡은 코스는 제2코스로 금원산 정상에 올라 기백산을 거쳐 4코스로 내려오는 총 15.1Km 정도의 코스. 제법 길지만 자연휴양림에 숙소도 잡아둔 터라 크게 문제될 거 같지는 않았다. 단지 덕유산 같은 눈꽃 산행을 기대했기에 등산로 주변에 있는 눈들을 보면서도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저 이정표, 금원산 1.0Km라는 저 이정표를 지나고부터 지금까지의 수많은 산행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추억(?)에 밀려 눈 녹듯 사라진다.



▲ 이게 등산로라니?


▲ 힘겨운 러셀


▲ 앞사람이 개척해준 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도 힘들다.


눈 덮인 등산로.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다. 길을 만들고 지나가야 한다. 전문 산악용어인줄로만 알았던 '러셀'이란 걸 처음으로 경험해 본다. 다행히도 동행한 부부가 등산으로 단련된 친구들인지라 '러셀'을 무리 없이 해주어 10Km 같았던 1Km 구간을 헤쳐갈 수 있었다. 이 구간 전까지만 해도 점심을 금원산 정상에서 먹을까, 좀 이르지 않을까 어쩌고 하면서 가던 산행길이었는데 1Km를 1시간 30분 가까이 러셀을 하며 오르고 보니 모두들 기진맥진. 정말이지 내려갈까 말까를 망설이게 만들었던 순간이었다. 눈이란 게 등산하는 사람 보기 좋게 나뭇가지에만 달려 있는 게 아니란 걸 뼈저리게 느끼는 산행이다.





▲ 금원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앞쪽이 기백산 가는 능선길, 그 뒤편이 황석산, 맨 뒤가 지리산 능선이다.

 ▲ 금원산에서 바라본 남덕유산 


이렇게 오른 금원산 정상. 지리산, 덕유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모두들 좀 전의 고통은 잊고 감탄사를 연발. 정상이라 그런지 세찬 바람이 불어오건만 언제 다시 볼지 모를 풍광인지라 한참 동안 눈으로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1시가 한참 지나 있다. 서둘러 기백산 가는 능선길에 자리한 정자에 도착해 준비해간 밥과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 아무리 추워도 먹는 걸 빠뜨릴 수는 없으니 모두들 언 손을 녹여가며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먹고 난 뒤에야 우리가 마주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러셀을 하며 산행하느라 예상보다 1시간 이상 지체되었다. 애초에 계획한 대로 기백산을 거치는 4코스로 가기에는 모두들 너무 지쳐 있고 더 큰 문제는 기백산 가는 능선길을 갈려면 또다시 러셀을 하며 가야 한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기에는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유안청 폭포로 가는 3코스로 내려가기로 합의.    



▲ 얼어붙은 유안청 폭포


너무 고생해서 오른 탓일까. 내려가는 길은 그냥 소풍가는 길 같다. 일부러 눈밭에 뒹굴기도 하고 눈싸움도 하고. 다들 올라갈 때의 '악몽'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듯하다. 그렇게 도착한 유안청 폭포. 금원산 등산길 2코스와 3코스의 갈림길이다. 얼어버린 폭포 앞에서 한여름의 시원한 물소리를 연상하기란 쉽지 않지만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여름폭포 저리가라 할 정도로 아름답다.



코스를 줄였음에도 매표소로 돌아오니 4시가 넘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삶에서 또 어떤 산행을 경험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이런 러셀 산행을 하기란 아마도 쉽지 않으리라. 그러기에  이번 금원산 산행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산행이 될 것 같다.



등산코스 : 매표소→유안청 폭포→임도→동봉→금원산 정상→동봉→정자→임도→유안청폭포→매표소

등산길이 : 9.8Km

등산시간 : 6시간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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