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중간이 아니라 극단 속에 있다"
문명사가 에두아르트 푹스
이 책은 캐리커처로 보는 여성 사회사다. “캐리커처 속의 여성은 문화사적·민족심리학적·예술사적으로 여러 가지 중요한 자극과 정보를 주기에 적합하다.”
출처:<채널예스>(http://ch.yes24.com/Article/View/13356)
일시:2007. 06. 18
글:최성일
풍속사가 에두아르트 푹스(Eduard Fuchs, 1870-1940)의 주저(主著) 『풍속의 역사(전 4권)』(이기웅?박종만 옮김, 까치, 1986-88) 외에 제목만 알려진 그의 저작들의 면모가 궁금했지만, 실물을 보게 되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나는 푹스의 『캐리커처로 본 여성 풍속사』(전은경 옮김, 미래M&B, 2007)가 번역될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풍속의 역사』에 이은 푹스의 두 번째 한국어판 출간은 무려 20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다. 『캐리커처로 본 여성 풍속사』는 1906년에 초판이 나온 “『Die Frau in der Karikatur- Sozialgeschichte der Frau』를 번역한 것으로, 번역에는 1973년에 노이에 크리틱 출판사에서 출간된 1928년의 3판 영인본을 사용했다.”
이 책은 캐리커처로 보는 여성 사회사다. “캐리커처 속의 여성은 문화사적?민족심리학적?예술사적으로 여러 가지 중요한 자극과 정보를 주기에 적합하다.” 이 책에서 묘사한 것은 모두 유럽의 캐리커처로 한정한다. 또한 이 책은 대중을 독자로 삼은, 출판된 캐리커처만을 다룬다.
“이런 캐리커처만이 문화사적인 의미가 있고, 이 책이 기여하고자 하는 사회적 관습의 증거 자료로 참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소비되는 공간이 지극히 제한된 조형적 캐리커처에도 별로 가치를 두지 않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이른바 ‘예술가들의 장난’이라 불리는 작품들도 완전히 제외할 것이다.”
캐리커처란 무엇인가 Ⅰ
『캐리커처의 역사』(살림지식총서 043, 살림출판사, 2003)를 통해 만화평론가 박창석은 ‘캐리커처’와 ‘카툰’의 사전적 의미를 비교 검토한다. 아래에서 보듯 ‘캐리커처’와 ‘카툰’의 사전적 정의는 별반 다를 게 없다.
Caricature
(명사) ①예술에서 인물이나 사물의 특징이나 독특한 형태를 과장하여 그로테스크하게 혹은 우스꽝스럽게 재현하는 것. ②원형 그대로 특징 있는 형태를 우스운 효과를 통해 과장되어진 인물화나 다른 예술적 재현.
(동사) ①그로테스크하게 닮게 그리는 것. ②풍자적으로 희화화하다.
Cartoon
(명사) 당대의 사건과 관련지어 그려진 그림 혹은 신문이나 정기간행물의 삽화.
(동사) 캐리커처를 그리다. 조롱하듯 비웃다.
박창석은 캐리커처는 한마디로 ‘과장의 미술’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과장의 미술’은 두 가지 형식으로 발전했다. 그 하나는 이탈리아 카라치 형제의 그림처럼 유머러스하고 과장된 초상화 형태이며, 다른 하나는 18세기 런던과 19세기 파리에서 발전한 사회풍자 캐리커처이다.” 푹스는 카툰 형식의 사회풍자 캐리커처를 눈여겨본다. 고전적인 캐리커처는 회화 형태의 작품에 주목했다.
캐리커처란 무엇인가 Ⅱ
『풍속의 역사』 ‘서문’에서 푹스는 자신이 캐리커처 연구가로 알려진 것에 대해 자신은 문명사가로서 캐리커처를 연구한 거라고 해명한다. ‘서론’에서 푹스는 캐리커처를 다시 언급하는데 이러한 재언급은 진리는 중간이 아니라 극단 속에 있다는 푹스의 명제와 관련이 있다. 사물이나 인간은 극단으로까지 과장됨으로써 본질이 도드라지는데 캐리커처는 과장이라는 경향의 진수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기록인 까닭이다. 다시 말해 캐리커처의 본질은 과장이다.
“고전의 실례를 들면, 가장 대담한 역사적 캐리커처인 루브르 박물관의 루벤스의 명화 ‘플랑드르의 축제’에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농민의 교회 헌당 축제가 그렇게 고주망태가 되어 무서울 정도로 애욕적 광란에 빠져서 행해진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 작품에는 실로 훌륭한 진실이 담겨 있다. 과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과장 때문에 훌륭하다. 과장됨으로써 ?물의 핵심이 드러나고, 그것을 은폐시키려는 가식은 제거된다.”
“이 책(『캐리커처로 본 여성 풍속사』)은 캐리커처라는 개념을 문자 그대로 특징을 과장하여 표현한 그림들에만 해당한다고 보고, 그런 그림만 소개하는 좁은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런 경향과는 반대로 이 책의 범위를 되도록 넓게 잡았다. 넓은 의미, 관용적으로 캐리커처로 볼만한 경향을 띤 풍자적인 그림 형태가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푹스는 여성을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구실을 했고 지금도 그런 기능을 하는 그림들, 다시 말해 인물과 풍속과 상황을 강조하여 묘사한 그림도 이 책의 범위에 넣었다. 또 그는 특징 있는 작품을 많이 소개하고자 했으면서도, 예술가들의 이름을 늘어놓으려는 욕심은 의도적으로 버렸다고 강조한다. 그러고는 이런 전망을 내놓는다.
“이 책이 여성과 관계있는 캐리커처를 그린 예술가들의 인명사전은 아니더라도, 그림이 가득한 책의 내용을 통해 지금까지 여성에 관해 그려진 캐리커처 가운데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것들을 한데 모은 모음집의 역할은 하게 될 것이다.”
모드의 변천사
『캐리커처로 본 여성 풍속사』는 한편으론 모드(mode)의 변천을 되밟는다. 서너 세기에 걸쳐 유럽 근대 시민사회에서 여자 옷의 유행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살핀다. 우선, 푹스는 모드가 저지른 몇 가지 범죄를 지적한다. 모드는 미의 개념을 완전히 훼손하였고, 눈부신 아름다움을 파괴하였으며, 여성의 몸 전체에 악영향을 끼쳤다.
때로는 목숨까지 위태롭게 한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1편에서 여자 주인공은 갑자기 실신해 바다에 빠진다. 코르셋이 상반신을 심하게 옥죄었기 때문이다. 모드의 엄격한 법칙을 끊임없이 받아들인 여성들에게 황폐해진 육체의 흔적은 평생을 두고 사라지지 않는다.
“발가락들은 나란히 가지런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보기 흉하게 구부러져 겹쳐 있다. 엉덩이는 허리받이 치마의 무게 때문에 납작해져서 원래 가지고 있던 자연스럽고 아름답던 곡선을 잃었으며, 배는 근육이 없이 축 늘어지고 아랫배의 내부기관들도 위축되거나 병적으로 비틀려 있다.”
푹스는 계급적 관점이 뚜렷하다. “모드가 여성의 잔인한 적이긴 하지만, 가장 잔인한 적은 아니다. 일, 그중에서도 심한 노동이 여성의 몸을 더욱 근본적으로 망가뜨리고 옥죈다.” 또한 “노동이란 원래 축복이지만, 많은 여성들에게는 저주가 되어 버렸다. 이 저주는 마치 여성의 약한 육체에 매달아 놓은 사슬에 묶인 쇠구슬처럼, 여성의 몸이 완전히 망가지도록 끊임없이 작동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유머는 양적으로 풍부할뿐더러 가장 훌륭하기도 하다. 그러나 “캐리커처로 보는 여성사가 물론 모두 밝고 명랑한 것만은 아니다. 캐리커처의 일부는 여성 각자 또는 전체가 견뎌내야 했던 인생의 비극에 관한 가장 음울한 표현이며 거울이다. 캐리커처로 보는 여성사는 또한 그 본질상 국가와 사회를 대상으로 가장 무거운 고발장을 꺼내 펼치기도 한다.”
푹스는 『풍속의 역사』에서도 옷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복장의 모양을 결정하는 요인은 기후가 아니라 인류의 일반 사회생활이다.” 유행하는 옷은 늘 계급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복잡한 복장은, 이를테면 자동차나 기차와 마찬가지로, 이제 와서는 폐기할 수 없는 문명의 산물이다.”
푹스, 그는 누구인가?
『캐리커처로 본 여성 풍속사』의 ‘옮긴이 후기’에서 간추린 푹스의 이력은 선명하다. 1870년 1월 21일 태어난 푹스는 1886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인쇄소에서 일을 시작하며, 동시에 불법정당이던 사회주의노동당에 가입한다. 1888년엔 ‘불온문서’와 ‘이념서적’을 유포한 혐의로, 잡지 편집자로 일한 1894년과 1897년엔 뚜렷한 정치적 견해 때문에 옥살이를 한다.
“정치적으로는 1914년에 당쟁 중지 정책과 전시 공채 발행에 관한 견해 차이로 사민당과 결별하고,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와 프란츠 메링 등이 창단한 스파르타쿠스단에 합류했으며, 1918년에는 이들과 함께 독일공산당을 창립했다. 1923년에는 ‘새로운 러시아를 위한 친구들의 모임’ 창립 멤버로도 활약했다. 1928년에는 스탈린주의로 기운 독일공산당과 결별하고, 공산당 내에서 우파로 간주되던 독일공산당 분파(KPO) 창립에 참여하여 매달 일정한 액수를 지원했다.”
우리에게 푹스의 존재를 알린 것은 반성완 교수가 편역한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민음사, 1983)에 실린 벤야민의 푹스론이다. 「수집가와 역사가로서의 푹스」에서 벤야민은, 푹스는 “처음부터 학자가 될 운명은 아니었다. 그리고 만년에 박식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한번도 학자연(學者然)해 본 적이 없다”라고 증언한다. 벤야민의 푹스론은 반 교수의 허락을 얻어 『풍속의 역사』에도 실려 있다.
일본어판 『풍속의 역사』에서 전재한, 출처와 작자 미상의 ‘푹스론’은 그를 학문적 연구가, 미술사 연구가, 저술가, 수집가, 제본가 등으로 나눠 살핀다. 푹스는 널리 보급되면 곤란한 자료를 따로 묶어서 펴낼 만큼 사려 깊은 모럴리스트이기도 하다.
‘인류의 기념비적 저작’
푹스의 『풍속의 역사』는 ‘인류의 기념비적 저작’이다. 나는 이 책을 내가 읽은 번역서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 일본어판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것이지만 번역도 무난하다. 독일어판을 직역한 것이 그만한 감동을 줄까 의심이 들 정도다. 여기에는 이 책을 일본어로 옮긴 야스다 도쿠타로의 공이 적잖다.
한국어판은 독일어판 원서와 편제가 약간 다르다. 독일어판 원서가 르네상스, 절대주의, 부르주아 시대의 성 풍속을 세 권에 담았다면, 한국어판은 이를 네 권으로 재구성했다. 『풍속의 역사 Ⅰ - 풍속과 사회』는 푹스의 이론적 논의와, 각 시대의 배경과 내용을 간추린 각 권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한데 모았다.
2001년 봄, 선을 보인 개역판은 새로운 도판을 쓰고 초판의 오탈자를 바로잡았다. 중세 이후 서양의 성 풍속을 집대성한 『풍속의 역사』는 선정적이지 않다. 별로 야하지도 않다. 한스 페터 뒤르의 ‘남과 여의 몸으로 읽는 문명화과정’ 시리즈(한길사)와 비교해 보면, 푹스가 얼마나 점잖은지 알 수 있다.
푹스는 “각각의 특수한 계급 이익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모든 삶의 이해관계에 기초를 둔 사고방식”으로 도덕을 정의한다. 말하자면, “어느 때는 도덕적인 것이 또 다른 때는 부도덕한 것이 될 수도 있고 또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아울러 “도덕은 각 계급에 따라서 때로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고 나아가서는 각 계급끼리 정면으로 대립할 수도 있다.” 푹스가 도덕이 영구불변하다는 사고방식과 일반적인 도덕기준을 부정한다고 해서 역사에서의 도덕적 원동력마저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원동력을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이것을 강조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영구불변인 도덕률이 항상 역사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논리학보다도 뛰어난 손놀림으로 이 영구불변의 도덕률을 여기저기 끼워 맞추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에 대한 이러한 태도로는 과거의 어떠한 현상도 역사적으로 올바르게 인식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쏟아지는 과거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해명할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의 기준으로 과거를 비난하려고 하는 것은 실로 유치하고 어리석은 행위이다.”
연애와 결혼의 본질을 간파하다
푹스는 연애와 결혼의 본질을 꿰뚫어본다. 어느 시대나 명성, 총애, 권력 따위를 사들이는 화폐 구실을 하는 것이 연애의 본질이다. 연애의 상품성은 그 시대 문명의 발전 정도를 재는 유일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금전결혼과 인습결혼은 내부적인 필연성을 가지며 조만간에 상호 부정(不貞)으로 귀결”된다.
“인류의 영원한 권리를 인위적인 법률보다 위에 두는 모럴이라는 입장에 설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때문에 인습결혼이 성행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간통이 도처에 영구히 뿌리를 뻗치고 있다.”
푹스는 부르주아 시대의 신문, 그림, 입간판, 그림엽서, 사진들과 대부분의 생활필수품이 일정하게 성도덕을 계몽하거나 직접적인 선전가 구실을 한다고 본다. 또한 이것들은 현대의 풍속을 증언하는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처럼 풍부한 자료에 대해서 올바른 평가를 내리는 것”을 넷째 권 『부르주아의 시대』의 주요 목적으로 삼는다.
하지만, 푹스는 “때때로 개괄적 입장만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라며 한발 물러선다. 자본주의의 팽창으로 말미암아 부르주아 시대가 사회를 총체적으로 지배하게 됨으로써 그것을 한정된 범위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마치 인생이나 개인 문제의 복잡한 형태를 단편적으로 묘사하는 것과 같아서다.
그리하여 푹스는 “골라낸 단편적인 것을 자본주의의 특징이라는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려 거기에서 사유재산제를 토대로 한 자본주의 문화라는 거대한 실체를 그리는 일은 미래의 저술가”의 몫으로 남긴다. 그러나 그의 기대에 부응하는 저술가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도 푹스에 버금가는 풍속사가가 출현하기는 쉽잖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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