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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인문사회

브루스 커밍스 - 그가 우리를 아는 만큼 우리는 그를 알지 못한다

by 내오랜꿈 2009.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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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우리를 아는 만큼 우리는 그를 알지 못한다

한국을 연구하는 학자 브루스 커밍스


아무튼 지난 시절의 잣대를 들이대면,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1943- )는 영락없는 좌경 용공의 운동권 교수 학자다.


출처:<채널예스>(http://ch.yes24.com/Article/View/12457)  

일시:2005. 06. 21

글:최성일



냉전은 열전만큼이나 무섭다. 나는 지금, 인천의 명산인 계양산 정상을 기준으로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의 대척점에서 살고 있는데, 이건 예전 같으면 엄두를 못낼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니까, 1978년 무렵이겠다. 무장 간첩이 계양산을 거쳐 북으로 되돌아가려 한다는 소식에 우리는 한동안 두려움에 벌벌 떨며 지냈다. 이런 푸념을 하면서. ‘간첩이 어디서 출몰했는가 몰라도, 하필 계양산이 그들의 귀환 루트에 포함될 게 뭐람.’ 


그 후 무장 간첩의 생사 여부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이 소동은 대단한 충격파를 몰고 왔다. 유년의 나에게 계양산은 적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지켜 주는 마지노 선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등화관제 훈련을 상시적으로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한편, 어머니가 검은색 천으로 만든 전등 씌우개를 보고는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했다. ‘아예, 전등을 끄는 게 상책이 아닐까?’ ‘불빛을 감춘다고 적성국의 전투기가 과연 목표물을 혼동할까?’ ‘아무리 전쟁 상황이어도 민간인 거주지에 설마 무차별 폭격을 가할까?’ 그로부터 10년 후, 신병 훈련소와 자대의 내무반에서 목격한 등화관제 시설은 내 어머니의 ‘작품’에 비해 엉성했다. 


아무튼 지난 시절의 잣대를 들이대면,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1943- )는 영락없는 좌경 용공의 운동권 교수 학자다. 그러나 국내의 정통성을 결여한 집권 세력과 그 하수인이 부친 붉은색 꼬리표는 실제의 커밍스와 거리가 한참 멀다. 단지 “권력은 진실을 무시한다.” 커밍스의 저술 활동이 꼬리표 붙이기의 빌미가 됐으나, 이젠 오히려 그의 책들이 그런 책략의 어이없음을 입증한다. 커밍스의 작업을 못마땅히 여긴 국내 집권 세력은 그를 많이 오해한 듯 싶다. 


최신 번역서인 『김정일 코드』(남성욱 옮김, 따뜻한손, 2005)만 해도 그렇다. 이 책은 커밍스가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사람임을 느끼게 한다. 나는 커밍스가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우직한 팬임을 알고, 그가 좋아졌다. 인디언스는 어떤 팀인가? 1990년대 중반, 케니 로프턴, 짐 토미, 매니 라미레즈, 샌디와 로베르토 알로마 형제 등이 막강 타선을 이뤄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투수력의 열세로 준우승에 그친 후 이렇다 할 성적을 못 내고 있다. 커밍스는 젊었을 적에 3년간 클리블랜드에 있는 제철소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 책의 원제는 ‘북한- 또 다른 나라(North Korea: Another Country)’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의 『북조선』(돌베개)과 동류라고 하겠다. 하지만 책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하루키의 북한 탐구가 정공법으로 일관해 다소 딱딱하다면, 커밍스의 북한 연구서는 학문적 방법론을 견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가볍고 부드러운 필치다. 이따금 마주치는 위트 넘친 익살맞은 문장들 덕분에 킥킥 웃곤 했다. “그러나 그의 뜻대로 되기 위해서는 비아그라 한 알이 필요했다.” 


브루스 커밍스는 북한을 “혐오를 주는 만큼 매력적이며, 독특하고 기이한 만큼 만만치 않은 나라”로, “좋은 나라는 아니지만 이해 가능한 나라”로 표현한다. 나는 북한에 대한 혐오감은 없지만(무심한 편이다), 그렇다고 매력적이거나 좋은 나라로 생각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북한의 만만찮은 측면 일부를 알게 되고, 북한을 좀더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진실 드러내기는 커밍스의 특기 중 하나다. 그는 최근작에서도 우리를 계몽한다. ‘가짜 김일성론’의 허구성 대해 색다른 각도로 접근한다. 2002년 커밍스는 일본을 연구하는 동년배의 학자에게 메모 한 장을 건네받았다. 메모지에는 그가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한 대학원생이, 김일성은 만주국에서 일본에 대항에 싸웠던 유명한 게릴라의 이름을 도용했다고 주장하더라는 내용이 씌어 있었다.


“그 학자는 이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으면서 나의 견해를 물었다. 나는 아마도 그 학생이 한국 출신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신화는 1945년 이래 주로- 만주국에서 -일본군에 복무하다 늳한 군대를 지휘하던 국군 장교들에 의해 널리 퍼졌다.”


얼마 전,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운동에 관해 질문을 받은 친일진상규명위원회 강만길 위원장이 “(김 전 주석이) 항일운동을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독립운동으로 봐야 하고, 사회주의 등을 따지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라고 답했다가, ‘김일성을 독립투사로 미화한다’는 반발을 사는 곤욕을 치렀다(〈한겨레〉2005년 6월 4일자). 


이 땅의 보수 진영이 아직도 이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도둑의 발 저림’이 풀리지 않아서일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신문을 통해 김일성을 추격해 살해하기 위해 일본이 고용한 한국인 배반자(Quisling. 나치스에 매국행위를 했다는 노르웨이 정치가의 이름)들과 김일성 사이의 갈등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1949년 소장으로 진급하여 38선에서 한국군을 지휘한 -김석원(金錫源) 대좌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일성이 지휘하는 동북항일연합군과 김석원 대좌를 앞세운 항일 빨치산 토벌대가 쫓고 쫓기는 장면은 서글프기 짝이 없다. 넌센스다. 그래서일까. 김석원처럼 만주군 장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동북항일연합군 토벌 작전에는 가담하지 않았다고 한사코 부인한 것은. 또 이럴 걸 두고 정권에 정통성이 없다 하나 보다. 정통성 있는 정권이라도 집권 후의 악행과 과오, 그리고 실책이 면죄되는 건 아니지만.


『김정일 코드』에 드러난 한국전쟁의 숨겨진 면 몇 가지는 충격 그 자체다. 우선, 미군과 연합군을 형성한 국군의 전투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튜 리지웨이 장군(주한 미 8군단장)은, 1951년 5월까지 남한 사람들은 10개 사단에 해당하는 장비를 전쟁터에 버렸다고 증언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을 경질한 것은 핵전쟁을 우려해서가 아니라 핵무기를 좀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은 우리의 허를 찌른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것은 맥아더의 실로 과격한 전략 계획이다.


“나는 30에서 50개 정도의 원자폭탄을 투하하여…만주의 목을 끊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압록강에 50만 국민당 군(중국의 장제스가 이끌던 군대)을 투입시킨 뒤 “우리 뒤쪽에- 동해에서 서해에 걸쳐 -방사능을 내뿜는 코발트 폭탄을 살포한다…코발트의 효력이 60년에서 120년이니까, 최소 60년 동안은 북한으로부터 어떠한 침략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천 만국 공원(일명 자유 공원)에 맥아더의 동상을 우뚝 세워 놓은 것도 모자라 때때로 대한민국 경찰은 장군의 동상을 호위한다. 인천 어느 도서관 열람실 입구에는 맥아더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 액자가 걸려 있다. 이만 하면 인천상륙작전의 은혜를 다 갚지 않았을까. 6. 25를 겪은 어르신들은 미국이 배급한 식량 덕택에 살아 남았다며 고마움을 표하지만, 미군의 폭격과 학살에 의해 민간인의 숱한 희생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나도 어렸을 적에 피부가 보라색으로 그을은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한국전 당시 미군의 네이팜탄으로 인한 화상의 흔적이었다니.


이 책은 북한 핵문제에 한 장을 할애하는데 이와 관련해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내용, 예컨대 핵무기의 확산 방지와 핵확산금지조약(NPT) 같은 것에 정확한 이해를 도모한다. “핵확산방지 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는 핵보유국으로부터 위협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현행 NPT 조약은 1995년에 전반적인 재협의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일본이나 인도 같은 주요 국가들은 이 조약을 답갑게 여기지 않았다. 만약 북한이 단순히 핵무기만을 원했다면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처럼 애당초 NPT에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커밍스의 북한관은 복합적이다. 부연하면, “북한은 그야말로 이상하고, 쉽게 흥분하고, 시대착오적이며, 소심하지만 신랄한 국가다.” 그럼에도 커밍스는 북한이 안팎의 위협과 고장난 사회 시스템에 굴하지 않고 그럭저럭 체제를 존속하리라 전망한다. 또 “정부는 손길이 반드시 미쳐야 하는 곳은 외면하고, 능력이 미치는 곳부터 우선 돕고 있다”고 하면서도, 북한 지도부에 후한 점수를 준다. 


“그들은 눈보라치는 허허벌판에서 도조(일본의 전쟁 범죄자, 도조 히데키- 인용자)의 총칼에 맞서서도 격렬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무슨 짓이라도 하려고 덤빈, 그리하여 악마의 얼굴을 그대로 닮은, 도조와 동일한 파시스트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은 우리에게 커밍스의 이름을 각인시킨 그의 주저다. 『책이야기』(한겨레신문사)는 “이 책자가 담고 있는 수정주의적 시각이 하나의 충격적 가능성으로 확산됐다”고 전한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일부 미국 학자들의 관점에서 벗어나 “커밍스는 한국민의 불완전한 해방, 예속된 해방은 이미 한국전쟁의 기본적인 문제를 잉태하고 있었다고 주장, 문제를 복잡하게 했다”고 덧붙인다.


“한국인에게 해방은 좌절됐다”고 지적한 커밍스는 “한국전쟁은 그에 앞서 5년 동안 계속된 내부 투쟁의 공개판”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책이야기』는 그러한 근거로 커밍스가 미군정의 부일협력자 등용, 한국민의 사회적 개혁 욕구 완전 묵살, 미국의 필요에 따른 남한만의 정부 수립 추진, 신탁통치는 소련의 억지가 아니라 미국의 일관된 주장이었다는 점 등을 구체적인 자료와 논증을 통해 제시했다고 설명한다. 


나는 이 책에서 비단 한국전쟁의 연원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의 기원을 읽는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에 팽배한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는 식민지 국가 기구의 유산이다. 프랑스는 1937년 1천 7백만 베트남 인구를 통치하는데 행정 인원 2,920명과 정규군 10,776명을 배치했다. 여기에다 행정과 민방위 조직에 베트남 사람 38,000명을 채용했다.


반면, 같은 해에 일본은 2천 1백만 한국인을 다스리는데 일본인 246,000명이 공공 및 전문직에 종사하였고, 이와 유사하지만 종속적인 지위에 있는 한국인을 63,000명이나 채용했다. 또 1937년 한국에 거주한 일본인의 42퍼센트가 총독부 업무에 종사했다고 한다. 따라서 “한국 관료세력의 지나친 중앙집권화 추세의 책임은 일본에 있는 것이다.”


1980년대를 풍미한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이 책이 지금까지 읽히는 까닭은 이런 측면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 한국어판에 좀 문제가 있다. 커밍스가 다른 저서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은 “해적판으로 또는 적당치 않게 번역”되었다. 『한국전쟁의 기원』은 1986년 두 종의 번역서가 한 달 보름 간격으로 거의 동시에 나왔다. 상?하 두 권으로 나눈 청사 판(김주환 옮김)은 출판사가 없어져 이젠 헌책방에서나 구할 수 있다. 


현재 정상적으로 유통되는 일월서각 판(김자동 옮김)은 초판을 번각의 형태로 계속 찍는 탓에 인쇄 상태가 썩 좋지 않다. 오탈자와 오역도 바로 잡지 못하고 있다. 그 만큼 새로운 번역서의 출간이 절실하다 하겠다. 한국어판이 있는 『한국전쟁의 기원』은 두 권으로 완간된 이 책의 첫째 권(Liberation and the Emergence of Separate Regimes, 1945-1947)이다. 차제에 둘째 권(The Roaring of the Cataract, 1947-1950)도 번역되었으면 한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Korea's Place in the Sun)』(창비, 2001)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현대사다. 이 책의 출간 직후, 커밍스가 자신의 견해를 바꿨다는 논평이 잇따랐다. 커밍스는 이를 예상이라도 한 듯, 「서문과 감사의 글」에서 이런 얘길 한다. “나는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성장의 신호라는 원칙 아래, 여전히 나한테 옳게 보이는 해석을 유지할 권리와 내 예전 연구에 나왔을지도 모르는 견해를 수정할 권리를 행사했다.”


그런데 「한국어판을 내면서」에선 한국“전쟁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판단은 결코 바뀐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무엇보다도 1950년 6월에 전쟁이 시작된 것은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전쟁에 대한 내 책의 전체적 강조점은 내전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역사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 학자가 안내하는 한국현대사의 굽이굽이도 흥미로우나, 내 주의를 더욱 끄는 대목은 「미국의 한인들」을 다룬 제9장이다. 나는 재미교포(또는 재미동포)라는 표현이 영 마땅치 않은데 커밍스는 그것의 대체어를 제시한다. “한국계 미국인”. 다시 말해 “그들은 단지 미국인일 뿐이다.” 그래도 그간 써온 표현을 일거에 내치는 건 도리가 아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을 두 개 범주로 나눌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 한국인처럼 보이지만 한국어를 못하면 한국계 미국인이고, “영어를 배우지 않고 작은 ‘코리아타운’에 틀어박혀 산다”면 재미교포다.


제 9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한국계 미국인 전문가 계층”이 미국사회를 구성하는 소수민족의 비율보다는 훨씬 높게 부상하리라는 전망이다. “이 계층이 설령 아직 미국사회의 중심무대에 알려지지 않았다 해도 머잖아 그럴 날이 올 것이다.” 로드니 킹 사건의 장본인이 몰던 차가 현대자동차이고, LA 폭동에서 부각된 한국계 미국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이 실제로는 한국계와 라틴계의 갈등이라는 지적은 처음 듣는 얘기다.


이 밖에도 브루스 커밍스가 공동 필자로 참여한 몇 권의 책에서 그의 글을 접할 수 있다. 『대학과 제국: 학문과 돈, 권력의 은밀한 거래』(한영옥 옮김, 당대, 2004)에는 커밍스가 미국의 국가안보정책이 대학의 학과?교재?학제 차원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톺아본 글이 실려 있다. 이 글 「경계의 해체: 냉전과 탈냉전 시대의 지역학과 국제학」을 마무리하는 인용문의 메시지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다음은 미국 역사학자 버나드 A. 드보토의 말이다.


“대학은…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캠퍼스에서는 그 어떤 책도, 그 어떤 표현도, 그 어떤 연구도, 그 어떤 견해도 자유롭다고. 대학은 정부와 그 밖의 모든 것에 비판적인 위치를 견지해 나가야 한다. 대학이 이러하지 못할 때, 머지않아 대학은 대학이 지녀야 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들만의 세상- 아시아의 미군과 매매춘』(김윤아 옮김, 잉걸, 2003)에서는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 편의 해설을 맡았다. 이 글은 우리를 부끄럽고 가슴 아프게, 슬프고 우울하게 한다. 절판된 『분단전후의 현대사』(편집부 엮음, 일월서각, 1983)에도 커밍스의 글이 실려 있다. 『김정일 코드』와 『대학과 제국: 학문과 돈, 권력의 은밀한 거래』은 미국의 독립 출판사인 뉴 프레스를 통해 나왔다. 지난해 가을, 뉴 프레스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앙드레 쉬프랭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쉬프랭의 방한에 즈음해 그의 출판론 『열정의 편집』(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이 선을 보인 바 있다.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에 한국 관련 정보와 자료는 풍부하지만, 정작 한국과 한국인을 잘 아는 미국인은 아주 드물다고 개탄한다. 그러면 우리는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우리 국민의 다수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미국을 지목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커밍스가 『김정일 코드』에서 묘사한 미군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숙지하자.


“미국 육군은 한국의 군사 기지들과 다양한 작전을 좋아한다. 요새화된 경계선 바로 건너에 있는 실제적이고 생생한 적을 향해 힘을 과시할 수 있는, 이 세계의 마지막 장소이기 때문이다. 군대를 동원하고 훈련하며, 가상전쟁을 실시하고, 장교들을 위해 현장경험을 습득시키고, 끊임없이 다음 전쟁을 수행할 시나리오를 짤 수 있는 곳이 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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