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혁명기 사선을 넘나든 ‘공정한 탐구자’
에드거 스노
에드거 스노(Edgar Snow, 1905-1972)의 『중국의 붉은 별』(신홍범 옮김, 두레, 1985)은 다른 책과 곧잘 어울린다.
출처:<채널예스>(http://ch.yes24.com/Article/View/12453)
일시:2005. 04. 18
글:최성일
에드거 스노(Edgar Snow, 1905-1972)의 『중국의 붉은 별』(신홍범 옮김, 두레, 1985)은 다른 책과 곧잘 어울린다. 1990년대 초 〈한겨레〉 문화면 연재 기사를 모은 『책이야기』(한겨레신문사, 1993)에서는 존 리드의 러시아 혁명 현장 기록 『세계를 뒤흔든 10일』(두레, 1986)과 짝을 이룬다. 사회주의 양대 종주국 소련과 중국의 탄생 과정에 정평 있는 안내서로 손꼽히는 두 책이 1989년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서로 다른 이유로 다시금 독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책이야기』는 전한다.
“『세계를 뒤흔든 10일』을 찾는 독자들은 이 책에서 소련 사회주의가 패배한 원인에 대한 실마리를 잡아보고자 하는 반면 『중국의 붉은 별』은 전세계적 탈사회주의의 흐름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비결을 배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인물에 초점을 맞춰 중국 혁명의 진행 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르포들과 한 무리를 형성하기도 한다. 아그네스 스메들리의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다』(두레, 1986)는 중국 인민해방군 총사령관 주더(朱德)의 생애를 통해 본 중국 혁명의 기록이고, 해리슨 E. 솔즈베리의 『대장정』(범우사, 1986)은 ‘작은 거인 등소평’을 부제목으로 삼았다. 『중국의 붉은 별』은 권말 부록의 66쪽에 걸친 ‘인물 약전’이 말해 주듯, 많은 인물을 언급한다. 하지만 중심 인물은 아무래도 중국 혁명의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이다. 스노는 이 책의 한 장을 마오에게 할애했다.
『에드거 스노 자서전』(최재봉 옮김, 김영사, 2005)의 ‘옮긴이의 말’에서는 “스노가 떠올리는 것은 두 권의 책이라 할 수도 있겠다”며 『중국의 붉은 별』과 님 웨일즈의 『아리랑』(동녘, 1984)을 거명한다. “『중국의 붉은 별』은 스노 자신이 서른한 살 때인 1937년에 발간해 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책이고, 『아리랑』은 (조정래 씨의 대하소설이 아니라) 스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님 웨일스가 중국의 조선인 혁명가 심산을 인터뷰하고 쓴 책이었다.”
이어 최재봉 기자는 20년 전, 이 두 권이 우리 사회, 특히 대학가에서 지녔던 의미를 이렇게 묘사한다. “『중국의 붉은 별』과 『아리랑』은 말하자면 8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 그 시절 대학을 다닌 이들치고 이 두 책을 읽지 않은 이를 찾기란 쉽지 않을 정도라고 말하면 젊은 독자들에게 이해가 될까.” 하지만 이는 다분히 과장된 표현이다.
그 시절 나는 두 권 모두 읽지 않았다. 『책이야기』에 따르면, 『중국의 붉은 별』은 5만 부, 『아리랑』은 10만 부? 팔린 베스트셀러다. 그러나 이 숫자는 친구나 동료, 선후배에게 빌려 보는 걸 감안해도 당시의 대학생 모두를 커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운동권 필독서라는 표현은 가능하겠지만, 여기서마저 필독률이 절대적이진 않다. 엊그제 87년 6월 항쟁 무렵까지 운동권에 있었던 86학번 동기 둘을 만나 물어 보니, 『중국의 붉은 별』은 2학년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임에도 둘 다 안 읽었다.
책 관련 전문가가 어떤 책을 안 읽었다고 밝히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때론 치명적일 수도 있다. 읽은 지면도 흐릿하고, 픽션과 넌픽션의 여부도 가물가물한 이야기다. 일단의 영국의 젊은 영문학자들이 사적인 모임에서 읽지 않은 작품의 문학적 위상에 비례해 높은 점수를 얻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순진한 친구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말해 버렸다. 그 후 이 친구는 학계에서 왕따를 당하고 학문적 이력에도 손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내가 이를 발설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실지로 읽지 않아서다. 내가 운동권 필독서를 비껴간 건 비운동권 학생의 자격지심이 주된 이유였다. 기본서라는 책들은 대부분 구입하였으나 그 중 일부만 읽었다. 중국 혁명 르포를 도외시한 건 살아 남아 혁명의 과실을 누리는 혁명가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을까? 전소혜의 등중하 평전 『내 영혼 대륙에 묻어』(백산서당)에서 진한 감동을 받았으니 그럴 법도 하다.
기본 교양서 가운데도 백기완 선생의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시인사)를 나는 읽지 않았다. 그 대신, 채광석 시인의 옥중서간집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형성사), 유시민의 유명한 항소이유서가 담긴 『아침으로 가는 길』(학민사), 볼리비아의 게릴라 네스토 파즈의 일기 『동지를 위하여』(형성사),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동녘), 잉게 숄이 기록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푸른나무) 같은 책과 막심 고리키의 소설에서 진한 감동을 느꼈다.
다른 이유 하나는 이제는 읽었기 때문이다(『아리랑』은 여적 읽지 않았다). 공부에는 적절한 때가 있을지 몰라도 독서에는 특정한 시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는 쉬 늙으나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少年易老學難成)’는 말은 주자(朱子) ‘권학문’의 일절이지 ‘권독문’의 그것은 아니지 않던가. 또 소설가 장정일은 “내가 읽지 않은 책은 이 세상에 없는 책”이라 일갈하지 않았던가. 내겐 엄청난 독서가의 기개를 흉내낼 배포가 부족하다.
그래도 이런 말을 할 수는 있다. 책은 언제라도 읽으면, 읽은 것이 된다. 물론 독서에도 적당한 시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책을 언제 읽어야 할지 어찌 알 수 있으리오. 또한 섣부른 선행(先行) 독서보다 나중에라도 차분히 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 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은 성립하지 않고, ‘가장 늦게 읽었다 생각하는 때가 제일 이른 것’이 되는 셈이다.
1968년판의 서문에서 스노는 『중국의 붉은 별』이 “시공(時空) 양면에서, 최악의 파국을 맞기 직전에 있었던, 서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 고립되어 있는 한 투쟁 세력을 다룬 것”으로 자평한다. 그는 이 책이 자신이 쓴 중국에 관한 가장 긴 르포라고 부연하면서 책의 장수 비결을 몇 가지로 풀이한다. 책에 담긴 새로운 정보와 이를 원하는 적절한 타이밍, 그리고 상황적 요인에 따른 독점적 지위 확보가 그것이다.
스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럿 따라붙는다. 그는 1936년 서방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국민당 남경 정부군의 봉쇄선을 뚫고 중국 서북 지역의 이른바 홍구(紅區)에 들어갔다. 더구나 1939년 스노가 마오와 두 번째 회견을 갖기 위해 홍구를 다시 찾은 이후, 서북 지역의 중국 공산당 근거지는 국민당군의 포위선과 일본군의 점령지로 둘러싸여 1944년까지 외국인 기자는 누구도 적도(赤都)인 옌안(延安)에 갈 수 없었다.
스노는 마오와 회견한 최초의 외국인 신문기자이기도 하다. 스노는 책의 제3부에서 마오를 여러 갈래로 묘사하는데 그가 본 마오의 첫인상은 이렇다. “그는 링컨과 약간 비슷한 모습으로, 중국인 평균 신장보다 키가 크고 허리가 구부정했으며, 검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이 굉장히 길게 자라 있었고, 눈은 크고 날카로왔으며, 코는 우뚝 솟고 광대뼈는 툭 튀어나와 있었다.” 아울러 지적이고 타고난 명민함도 느껴졌다. 마오에 대한 스노의 종합적인 인상은 그가 매우 흥미롭고 복잡한 인물 같았다는 점이다.
“중국 고전에 깊은 소양이 있는 학구자이자 닥치는 대로 광범하게 책을 읽는 남독가이며, 철학과 역사를 깊이 파고드는 학도이자 뛰어난 연설가이며, 기억력과 집중력이 비상한 사람이자 유능한 문필가이고, 또 자신의 습관이나 외양에는 무관심해도 담당한 직무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놀라울이만치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인물이며, 아울러 지칠줄 모르는 정력의 소유자이자 비범한 재능을 지닌 탁월한 군사?정치 전략가였다.”
장정(長征)에 대해서도 스노는 발표된 것으로는 최초인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장정을 다룬 『중국의 붉은 별』의 제5부에 따르면, “홍군의 전병력이 강서성 남부의 우도(雩都)에 집결했을 때, 장정 개시 명령이 내려졌다. 이 때가 1934년 10월 16일이었다.” 바야흐로 “세인들의 이목을 놀라게 할 진군”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1년여에 걸친 홍군의 서방과 북방으로의 획기적인 대이동의 여정은 실로 엄청나다.
홍군은 줄잡아 2만리를 행군했다. 그 과정에서 산맥 18개를 넘고, 24개의 강을 건넜다. 홍군이 넘은 산맥 18개 가운데 다섯은 만년설로 덮혀 있었다. 스노는 홍군과 그들이 표방하는 정치적 견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장정은 군사사상(軍事史上)의 대위업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한니발의 알프스 원정 따위는 그것에 비하면 휴일의 소풍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장정은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무장 선전여행이었다.”
한편, 이 책은 이젠 전설이 된, 중국 혁명기 붉은 군대를 둘러싼 신화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그것은 농민을 수탈하거나 보급투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꼭 필요한 경우에는 반드시 제값을 치르는 인민의 군대의 모습이다. 이런 측면은 홍구로 향하는 열차의 객실에서부터 느껴진다. 홍군의 잔인성에 관한 논란을 듣고 있던 노인의 한마디. “그들은 사람을 많이 죽이지 않소!” 스노가 접한 홍군의 분위기는 이를 확인시킨다. “나는 이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며 다투는 일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1968년판 서문의 겸양 어린 대목은 명저의 저자가 갖는 미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필자는 혹시 이 책에서 차용할 수 있을지도 모를, 국제적 활용 가치가 있는 교훈들을 제공하는 데에 있어서 나 자신이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하지 않는다. 이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은 필자가 30세의 나이로 함께 어울려 지낼 특전을 누리면서 수많은 것을 깨우쳐 받았던(또는 깨우칠 기회를 제공했던), 비범한 젊은 남녀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저 옮겨놓았을 뿐이다.”
『모택동 자전(毛澤東 自傳)』(신복룡 옮김, 평민사, 1985)은 에드거 스노가 기록한 마오의 반생(半生)이다. 스노의 별개의 저작은 아니고, 『중국의 붉은 별』에서 “제4장 「한 공산주의자」의 탄생만을 빼내어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다음은 이 책의 초판 역자 서문에 실린 스노의 간략한 이력이다.
“이 글을 구술해 준 에드가 스노우는 1905년 미국의 미주리주의 캔사스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청년기의 행적은 잘 알 수 없다. 그는 일찍이 언론계에 투신하여 〈시카고 트리뷴〉과 〈뉴요크 선〉의 기자로 활약하다가 32살이 되던 1937년에 그는 당시 미국에서는 본격화되지 못한 해외 특파원의 꿈을 안고 런던의 〈데일리 헤랄드〉에 투신했다. 그는 첫해부터 극동 지방의 수석특파원이 되었다.”
이 짧은 이력에는 일부 사실에 오류가 있고 전후 맥락이 드러나지 않아 그의 삶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별 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에드거 스노 자서전』은 이런 아쉬움을 해소하기에 제격이다. 800쪽 가까이 되는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은 아주 흥미진진한 회고록이다. 10여 년 전, 『시작을 위한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펴낸 것을 번역을 손질해 재출간했다.
스노의 중국행은 개인적인 유람의 성격이 강했다. “필자가 동방에 온 것은 ‘동방의 매혹’과 모험을 찾아서였다”(『중국의 붉은 별』). 자서전은 이를 자세히 언급한다. “내가 처음 상하이(上海) 땅을 밟았을 때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차서 세계로 환히 열린 젊은이였다.” 월스트리트에서 증권에 투자해 거머쥔 약간의 돈으로 스물셋의 스노는 세계여행을 떠난다.
1928년 스노는 파나마 운하를 통해 태평양을 출발, 하와이와 일본을 거쳐 상하이에 이른다. 그의 여행계획서에 중국은 6주가 할당돼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뒤로 13년 동안 미국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스노와 그의 형제들은 가톨릭 교회에서 정식으로 교리문답을 배우고 견진성사를 거쳐 신자가 되었지만, 스노의 아버지는 자녀가 “신에 관해 맹목적이지 않도록” 하는 양육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스노가 배교를 결심한 계기는 엉뚱한 곳에서 왔다.
“결국 내가 신앙을 잃게 된 것은 로버트 잉거솔의 주장 때문이 아니라, 어느 날 나보다 나이 많은 복사와 함께 근처 수도원으로 성체, 즉 성찬식용 과자를 가지러 간 일이 계기가 되었다. 이 과자를 보통의 석탄 스토브에서 굽는 것이 내게는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복사 아이는 그릇 하나를 열고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한 주먹 집어먹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아이가 천벌을 받아 고꾸라지리라고 믿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스노를 불신자로 만든 계기가 눈에 익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 자서전』(고즈윈, 2005)에도 이와 비슷한 대목이 있다(100-101쪽). 이를 독서 칼럼(〈한겨레〉2005년 3월 26일자)에 간접 인용한 도서평론가 이권우가 농담 삼아 말하곤 한다는 “신앙을 잃은 계기” 역시 스노와 마크 트웨인의 경우와 닮았다.
스노의 자서전에 나타난 그의 휴머니즘(“나는 식민주의가 저열한 것은 그것이 인간성에 대한 방법과 제도의 제도의 승리이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과 성찰(“표면적인 풍경은 단기가의 여행자를 속이는 것이다”)에는 공감하나, 그의 시대 인식(“지금은 원자시대이며 제국주의는 사멸했다)”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쨌든 스노가 뛰어난 전선(戰線) 기자인 점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빛날 것이다. 군대 뒤꽁무니를 좇거나 안전지대에서 전황을 보고하는 기자는 스노와 비교할 수도 없지만, 걸프 전쟁시 미군의 바그다드 폭격을 생중계한 CNN의 특파원도 스노를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 그는 사선을 넘나들며 진실을 전한 진정한 싸움터 기자다.
CD로 구은 국립중앙도서관 한국문헌목록정보에 따르면, 스노의 책은, 놀랍게도 해방 직후 처음 번역되었다. 『민주주의의 승리: 대전 중 소련?중국?몽고 여행기』(수문당)는 단기 4279년, 그러니까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나왔다. 신구문화사가 펴낸 ‘현대세계문학전집’(1968)의 열세 번 째권에 다른 두 작가의 작품과 함께 실려 있는 『새로운 인간들』(서동구 옮김)은, 원저명이 노출돼 있지 않아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Red Star over China』의 초판이나 그 일부로 추측된다. 『중국의 붉은 별』 ‘역자 후기’의 “본 역본은 1971년판을 완역한 것이다”라는 구절은, 내 추론을 뒷받침하는 작은 증거로 볼 수도 있다. 『Red Star over China』는 『대륙의 붉은 별』(손해묵 옮김, 언어문화사, 1986)이라는 제목으로도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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