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시골생활이 아니더라도 이웃간에 먹을 걸 나누는 모습은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닐 터. 도회지에서도 이웃집에 새로 담근 김치 한 보시기 건네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서로간의 살가운 정으로 통하는 세상 아니겠는가. 시골이라고 도시보다 더 살가운 정을 나누는 시대는 지났지만 그래도 간혹 이런저런 먹을거리를 나누어 먹는다. 아무래도 텃밭에서 키우는 채소류가 대부분인데 나의 경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 우리 집 텃밭에서 딴 상추, 치커리
우리 집과 일상적으로 연결되는 공간 안에 있는 이웃은 두 집뿐인데, 그나마 한 집은 지금 부재중이다. 나머지 한 집의 어르신은 아흔이 코앞이신 분인데 가끔 감이나 유자 같은 걸 주시기도 하고 잎채소를 주시기도 한다. 감이나 유자 같은 걸 주면 고맙게 잘 먹는데, 상추나 배추 같은 채소류를 주면 정말 난감할 때가 많다. 잎채소는 내가 키우는 것만으로 자급하고도 남으니 사실 얻어 먹을 이유도 없지만 그것보다는 키우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키우는 것과 비교하면 대부분의 채소 덩치가 거의 서너 배는 더 크다. 당연히 비료의 힘이다.
▲ 이웃집에서 준 상추, 치커리.
오늘도 텃밭에서 토마토, 고추 지지대 세우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는데 옆집 어르신이 부르시기에 가 보니 상추, 치커리를 한아름 주신다. 주는 걸 안 받을 수는 없어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며 가져오는데 속이 답답해진다. 상추, 치커리가 꼭 무슨 배추 같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비료를 주면 이렇게 클 수 있을까? 이걸 버려야 하나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점심때 비빔국수를 해 먹으려고 미리 따 둔 치커리와 상추가 있어 크기를 한 번 비교해 보았다. 내가 키운 치커리도 거의 손바닥 만하게 큰 것들만 땄는데도 차이가 크다. 상추도 마찬가지. 크기를 비교해 보고 나니 먹고 싶은 생각이 아예 싹 가신다.
▲ 상추, 치커리 크기 비교. 칼 길이가 18cm다. 우리 집 치커리는 10~15cm, 이웃집에서 얻은 것은 30cm 전후다.
먹을 거 버리는 건 정말 안 좋은 일이지만 어떡하랴. 절대 눈에 안 띄게 잘 버려야 하는 숙제 아닌 숙제가 남았다. 생각이 다르면 사는 것도 다르고, 사는 게 다르면 먹거리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어느 게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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