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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기의 20세기와 21세기 - To be or not to be

by 내오랜꿈 2010.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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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or not to be

아리기의 20세기와 21세기



이탈리아 밀라노 태생의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 1937-2009)는 아마도 지난 10년을 이렇게 규정하는 것 같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몰락. 미국이 지는 해라면, 중국은 떠오르는 해다. (아리기는 페르낭 브로델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세계체계론자 중 하나다.)

출처:<채널예스>(http://ch.yes24.com/Article/View/15547)  2010. 01. 18
글:최성일



세 번째 밀레니엄의 첫 10년이라 하는 건 좀 거창하고 21세기의 첫 10년이 후딱 지나갔다. 지난 10년이 지닌 세월의 부피는 20세기의 마지막 10년, 그 전의 10년, 또 그 전의 10년과 다를 게 없지만 벌써 2010년이라니! 21세기 첫 10년은 여느 디케이드(decade)마냥, 상투적 표현이나, 다사다난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태생의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 1937-2009)는 아마도 지난 10년을 이렇게 규정하는 것 같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몰락. 미국이 지는 해라면, 중국은 떠오르는 해다. (아리기는 페르낭 브로델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세계체계론자 중 하나다. 아리기, 이매뉴얼 월러스틴, 안드레 군더 프랑크 등의 예전 직함은 종속이론가 혹은 세계체제론자였다.)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21세기의 계보』(강진아 옮김, 길, 2009)는 “두 편의 앞선 저작, 『장기 20세기』와 『근대 세계 체계의 카오스와 거버넌스』를 정교화한 속편이다.” 아리기가 비벌리 실버와 공저한 『Chaos and Governance in the Modern World System』은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최흥주 옮김, 모티브북, 2008)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이 책의 목적은, 현재 진행 중인 세계 정치경제의 중심지가 북아메리카에서 동아시아로 이동하는 현상을 애덤 스미스의 경제 발전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동시에『국부론』(Wealth of Nations)을 바로 이 이동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전체적인 테제는, ‘새로운 미국의 세기 프로젝트’의 실패와 중국의 성공적인 경제 발전이 결합된 결과, 세계 문명들 사이의 더 큰 평등성에 기초한 스미스 식 세계-시장 사회가 『국부론』 출판 이래 250여 년간 어느 때보다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근면혁명으로 열린 발전 경로가 세계 사회에 계속해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는 스기하라 가오루의 테제를 정식화하는 것과 함께 어떤 오해를 이론적으로 불식하고자 한다. 그것은 덩샤오핑의 개혁을 둘러싼 논란이다. 그것은 시장 경제, 자본주의와 경제 발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광범위한 오해를 말한다.

1980년대 사회과학출판의 열기가 푹석 꺼진 것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외부 요인보다 혁명적 고양과는 거리가 있었던 우리 사회의 내부 요인 탓이 크다.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혁명적] 고양이 있다고 해서, 사회 현실이 정말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론적으로는 이데올로기적 고양이 현실 사회 혁명의 고조를 반영한다고 주장되지만, 사실 그런 만큼이나 그런 현실이 없다는 것을 표시할 수도 있다.”

책 제목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마리오 트론티(Mario Tronti)에게서 연원한다. 1968년 직후, 트론티는 그의 논문 「디트로이트의 마르크스」에서 유럽이 계급투쟁의 진원지가 될 거라는 ‘바람’을 일소했다는 거다. 그가 생각한 계급투쟁의 진정한 진원지는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은 미미하지만 노동자들이 자본가들로 하여금 더 높은 임금 요구를 수용하고 자본 자신을 구조조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데 가장 성공한 나라였다. 유럽에서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로서 계속 살아남았지만, 노자(勞資) 관계가 ‘객관적으로 마르크스적’이었던 것은 미국에서였다.”

트론티가 마르크스주의를 이념으로 채용한 것은 유럽이지만 마르크스의 『자본』을 정확히 해석하는 데는 미국 노동계급의 역사가 더 적합하다는 것 사이의 불일치를 간파한 것처럼, “웡, 프랑크와 포머런츠는 자유 시장을 이데올로기로 채용한 것은 유럽이지만 스미스의 『국부론』을 정확히 해석하기에는 후기 중화 제국이 사실상 더 적합하다는 것 사이에 똑같이 근본적인 불일치를 간파했다.”

트론티를 빌려 쓰자면, “그들은 베이징에서 스미스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윤을 추구하여 시장 교환이 확대되더라도, 중국에서 발전의 성격은 꼭 자본주의적이지는 않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이 공산 중국에 사회주의가 살아 있고 건재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 그것이 사회적 행동의 결과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의 승리를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거다.

아리기는 “중국의 거대한 근대화 노력의 사회적 결과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앞으로 전개되어가는 상황을 관측하고 이해하는 데 가장 유용한 개념은 아닌 것 같다.” 아리기가 생각하는 정말 흥미롭고 어려운 질문은 중국 경제의 권토중래가 늦었다기보다 빨랐다는 거다.

아리기가 보여준 “위대한 정치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사상에 대해 진정 통찰력 있는 분석”(브루스 커밍스)은 신선하다. 하지만 ‘고도 균형의 함정’(a high­level equilibrium trap)을 효과적으로 재해석하는 게 버거운 나로선 아리기가 애덤 스미스한테서 발견한 것 가운데 내 사고범위 안에 있는 것들로 만족하련다.

과거 경제학의 거장 중에서 스미스는 ‘가장 널리 언급되면서도 가장 드물게 읽힌 편에 속한다’는 것은 나도 안다. 아리기는 스미스의 유산을 둘러싼 신화 세 가지는 그저 신화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애덤 스미스는 ‘자기조정적인’ 시장의 이론가이자 옹호자도, 자본주의의 이론가이자 옹호자도, 노동 분업의 이론가이자 옹호자도 아니었다.

“만약 한 나라가 완벽한 자유와 완벽한 정의를 누리지 않는 한 번영할 수 없다고 한다면, 세상에서 번영할 수 있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아리기의 스미스 인용은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을 떠올린다. 벌린은 군주제 국가가 공화국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미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국익을 추구하는 중앙 정부의 능력을 확립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만약 무엇인가 혹은 어느 누군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법과 제도의 적절한 변화를 통한 정부의 보이는 손이다.” 그리고 “자본의 축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윤율을 하락시키고 결국 경제 팽창을 종결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은 마르크스의 생각이 아니라 스미스의 것이다.”

아리기는 네 번의 체계적 축적 순환의 ‘근원’을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찾는다. “국채와 함께 국제적인 신용제도도 생겨났는데, 거기에는 종종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본원적 축적의 한 원천이 숨겨져 있다. 예를 들면 베네치아의 약탈 제도가 보인 갖가지 비열 행위는 쇠퇴해가는 베네치아에서 거액의 화폐를 빌렸던 네덜란드가 거두어들인 자본적 부의 한 숨겨진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의 관계가 네덜란드와 영국 사이에서도 있었다. 네덜란드의 매뉴팩처는 18세기 초에 이미 완전히 추월당했으며, 네덜란드는 지배적인 상공업국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였다. 때문에 1707-76년 사이에 네덜란드가 주력했던 사업의 하나는 거대한 자본의 대출, 특히 강대한 경쟁자였던 영국에 대한 대출이었다. 오늘날의 미국과 영국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 경제의 중심을 넘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발돋움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아라기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단지 “거대하고 저렴한 인력 보유고”라서 외국 자본을 끌어들인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그 주요한 흡인력이 이 보유고의 높은 질에 있다고” 본다.

“보건, 교육과 자기관리 능력이라는 면에서 그러하며, 중국 자체 내에 이러한 보유고의 생산적 동원을 위한 수요 조건과 공급 조건의 신속한 팽창이 결합된 결과이다. 게다가 이 결합은 외국 자본에 의해 창출된 것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시킨 혁명 전통을 포함하여 토착적 전통에 기반한 발전 과정에 의해 창출되었다.”

중국의 경제 개혁은 점진주의로 실행되고 있다. 중국 정부 정책은 수익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동자의 복지를 희생하는 신자유주의적 핵심 처방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아마도 중국 개혁의 또 다른 스미스적 특징, 바로 중국 개혁이 국내 시장의 형성과 농촌 지역의 생활수준 향상에 주도적인 역할을 부여했다는 점일 것이다.”

하여 아리기가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서 ‘향진 기업’(농촌 집체 기업)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보는 건 무리가 아니다. 향진 기업은 여러 측면에서 개혁의 성공에 기여했다. “첫째로 향진 기업의 노동 집약적 방침은 도시 지역으로 대규모 이주 증가 없이 농촌의 잉여 노동을 흡수하고 농촌 소득을 올릴 수 있게 하였다.”

둘째, 상대적으로 규제를 덜 받는 향진 기업은 국영 기업과 모든 도시 기업들의 작업 향상을 부추겼다. 셋째, 농촌 세금 수입의 주요 원천이 된 향진 기업은 농민들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었다. 넷째, 이윤과 임대 수익의 재투자를 통해 향진 기업은 국내 시장의 크기를 키우고 “새로운 단계의 투자, 일자리 창출, 분업의 순환을 위한 조건을 창출했다.”

중국 부상의 사회적 기원으로는 중국 혁명의 성과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먼저 개혁의 성공이 상당한 정도로 중국 혁명의 이전 성과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심지어 도시 관료와 지식인에게 고통스런 경험이었던 문화혁명마저 “중국 혁명의 농촌 기반을 공고히 하였고, 경제 개혁의 성공을 위한 토대를 놓았다.”

한편 중국을 바라보는 외부의 긍정적 시각은 우리의 편견 더하기 고정관념과는 영 딴판이다. “중국은 아마도 외국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자국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환경에 비추어 결정을 하는 국가의 가장 좋은 사례일 것이다.”(람고팔 아가르왈라, 세계은행의 고위급 관료)

“이제 마오주의의 속박을 벗어던지고 경제 발전과 세계 무역의 실용주의적 진로로 들어간 중국은 덜 위협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현실적 힘에 대한 세계적 야심과 이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수단을 획득하고 있다.”(리처드 번스타인과 로스 먼로)

“조지 부시는 과도한 비밀주의와 한 줌도 안 되는 아첨꾼들에게 정책 결정이 제한되었을 때의 위험성을 보여주었다. 중국 밖의 사람들 대부분은 중국 지도자들이 이와 반대로 자신들이 직면한 엄청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할 때 얼마나 광범위한 협의와 상의에 몰두하는지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조지프 스티글리츠)

21세기 중국의 부상(용틀임)과 관련한 세계 문명사적 의미는 음미할 가치가 충분하다. 아니, 차고 넘친다.

“만약 이 방향 전환이 중국의 자국 중심적(self­centered) 시장 기반 발전, 강탈 없는 축적, 비인적 자원보다 인적 자원을 동원하고, 대중의 참여를 통해 정책을 만들어가는 정부 등과 같은 중국의 전통을 부활시키고 공고히 하는 데 성공한다면, 중국은 문화적 차이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문명연방을 출현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방향 전환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중국은 아마도 사회적?정치적 대혼란의 새로운 진원지로 변모하여, 흔들리는 세계 지배를 재확립하려는 북측의 시도를 촉진할 것이다. 혹은 조지프 슘페터의 말을 다시 한 번 빌리면, 냉전 세계 질서의 청산에 수반하여 나타난 폭력의 격화라는 공포(혹은 영광) 속에서 인류가 불타버리는 것에 일조할 것이다.”

여기서 “북측”은 ‘세계 북측’(global North)을 말한다. 18세기 후반 중국 인구가 이미 4억 명에 이르렀거나, 아리기가 1인당 소득 향상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은 다소 의외다.

『장기 20세기-화폐, 권력, 그리고 우리 시대의 기원』(백승욱 옮김, 그린비, 2008)의 “핵심 주제들 중 하나는 네 번의 체계적 축적 순환을 분별하고, 그 각각이 실물적 팽창 국면과 금융적 팽창 국면으로 구성됨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연이은 체계의 재편들을 비교함으로써,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세계자본주의의 동학이 바뀌어 와서, 핵심적 측면에서 20세기 말의 금융적 팽창을 새롭게 만들었는지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은 서로 다른 단계에 놓인 자본주의 세계체계 전체의 발전구조와 발전과정들을 비교한다. 제노바, 네덜란드, 영국, 미국 정부 행위자와 기업 행위자의 전략과 구조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각 단계를 구성할 때마다 이들이 연이어 중심에 있어서다.

“체계적 축적 순환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감제고지’-브로델이 말하는 ‘자본주의의 자기 영역[진정한 고향]’-에서 전개되는 과정이다.” 감제고지(瞰制高地)란 “군사 전략상, 관측 등에 의해 적의 활동을 방해할 수 있는 높은 지대”(국어사전)를 일컫는다.

이 책에서 규명되는 네 번의 체계적 축적 순환은 15세기에서 17세기 초의 제노바 순환, 16세기 말에서 18세기 대부분에 걸친 네덜란드 순환,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의 영국 순환, 19세 말 시작돼 현재 금융적 팽창 국면으로 지속되고 있는 미국 순환이다.

“연이은 체계적 축적 순환은 중복되며, 비록 그 지속기간이 점점 더 단축되긴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한 세기 이상 지속된다. 따라서 ‘장기 세기’라는 관념이 제기되며, 이는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과정 분석에서 기본적 시간 단위로 채택될 것이다.”

아리기는 자본주의에 대해 독자적 시각을 견지한다. “지난 5백 년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거대한 팽창을 촉진한 것은 국가 간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세계체계 전체에서 자본주의 권력 집적의 계속적인 증가와 결합한 국가 간 경쟁이었다.”

그가 말하는 “자본주의 성공의 비결은 남들이 자신을 대신해 자신의 전쟁을 수행하도록 하되, 비용은 가능한 들이지 말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가능한 최저 비용을 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금과옥조 중 하나인 ‘수익자 부담의 원칙’은 성공의 비결과는 무관하다.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한편 “중국 명나라가 뒤이어 유럽 국가들이 곧바로 에너지와 자원을 집중하기 시작한 세계의 ‘발견’과 정복을 왜 의도적으로 떠맡지 않으려 했는지에 대한 대답은 사실 단순하다.” 한마디로 실속이 없어서다.

자본주의는 성공적으로 삼아 남을까? 아리기는 미국 축적체제의 계속되는 위기가 가져올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째, 구중심지들이 자본주의 역사과정을 중단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둘째, 구경비병은 자본주의 역사과정을 중단시키지 못하고, 동아시아 자본이 체계적 자본주의 축적과정에서 감제고지를 차지하게 될 수도 있다.”

끝으로 “인류애가 포스트 자본주의 세계제국 또는 포스트 자본주의 세계시장사회의 지하감옥(또는 낙원)에서 질식(또는 만개)하기 전에, 냉전 세계질서의 청산에 동반한 폭력의 증폭이라는 공포(또는 영광) 속에서 불타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자본주의 역사의 종료를 의미할지 아니면 모든 인류 역사의 종료를 의미할지,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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