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유/산 · 트레킹

외나로도 봉래산

내오랜꿈 2014. 9. 1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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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초, 마복산에 오른 뒤로 6개월 가량 산에 오르질 못했다. 이런저런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내의 꾀부림이 주된 이유다. 아프다고 하는데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인들과 지리산에 가기로 한 날짜가 채 한 달도 안 남았으니 이제는 싫어도 가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일요일 아침,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의 봉래산에 오르는 길. 섬 한가운데 솟아 있는 산이라 사방으로 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심은 지 100년 가까이 된 삼나무숲길을 걸을 수 있는 아담한 코스다. 덤으로 멀리서나마 나로 우주과학관의 전경을 볼 수도 있다.



▲ 막 피어나는 갈대와 꽃을 피우는 쪽

등산로 중간에서 바라본 삼나무, 편백나무 숲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을 10여 분 오르고 나면 이내 능선을 따라가는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등산로 옆으로 막 피어나기 시작한 갈대와 쪽이 꽃을 피우고 있다. 쪽은 천연염색 하는 사람들한테 아주 귀한 대접을 받는 식물로 재배하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등산로 주변에 자생한다는 게 좀 의아하긴 하다. 쪽과 비슷한 야생식물을 내가 혼동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봉화대로 쓰인 듯한 형태의 봉래산 정상의 석축

▲ 정상의 석축 사이에서 꽃을 피워내는 닭의장풀


능선길을 따라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40여 분 걸으면 봉래산 정상에 다다른다. 아마도 조선시대에 봉수대로 쓰이지 않았나 짐작할 수 있는 형태의 석축이 쌓여 있다. 그 석축 둘레로 닭의장풀이 한창 파란 꽃을 피워내고 있다. 



봉래산 정상에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라본 풍경

석축 계단을 딛고 정상에 오르면 동서남북, 사방이 바다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상에 올랐을 때의 이런 눈맛 때문에 남해안 섬들의 산을 찾는다고 한다. 맑은 날은 여기서 제주도까지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이 아마도 여섯 번째인가 일곱 번째인 것 같은데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못봤다.ㅠㅠ



▲ 정상에서 삼나무 숲길로 내려가는 길 양편으로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이 뚜렷하다. 


용송 승천 기념(?) 비석. 2003년 태풍 매미때 승천했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장이 심하다.


출입통제구역 푯말이 선명한 나로우주센터 철조망


▲ 쉼터에서, 어제 저녁 버무려두었다 아침에 지져온 부침개와 오이 그리고 막걸리


정상에서 30여 분 내려오면 '시름재'에 다다른다. 무슨 시름이 그리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름재를 기점으로 이쪽 저쪽이 전혀 다른 세상이다. 출입통제구역 팻말이 선명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나로도 우주발사대가 있는 쪽은 산 전체를 철조망으로 둘러싸고 있다. 시름재를 지나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구간은 100년 가까이 된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길을 지나는 코스다.




삼나무숲 입구에 있는 설명서에는 1920년대에 예내리 산림계원들이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식재했다고 나오는데 너무 지나친 애국심이 빚어낸 '의도적' 오류라고 봐야 한다. 이 삼나무숲은 일제강점기에 산림령, 임야조사령에 따라 진행된 사업의 일환으로 1910년대 중반부터 일제에 의해 조성된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그것이 비록 수탈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사실관계는 정확해야 한다. 우리가 처음 왔던 게 2009년이었는데, 그때는 없었던 팻말이 최근 2,3년 사이에 이렇게 엉터리로 만들어져 있다.



▲ 편백나무숲 


▲ 계곡에서 건져 올린 가재가 전투자세를 취하고 카메라를 향해 달려들 기세다 



삼나무숲과 편백나무숲을 지나면서부터는 계곡의 가재를 잡아서 놀기도 하고 등산로 주변에 떨어진 밤과 토토리를 줍느라 등산이 아닌 산책길이 되어버렸다. 여느 때 같으면 2시간이면 충분한 코스인데, '잿밥'에 관심을 가지느라 2시간 40분이 지나서야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볼거리, 즐길거리 많았던 가을날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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