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패랭이꽃 군락지
옆집과의 텃밭 경계 일부에 재작년부터 패랭이꽃 씨를 뿌렸다. 패랭이꽃은 5월부터 8월까지 피고지고를 반복하며 오래 피어 있어 아름답기도 하지만 좀 더 실용적인 목적이 있기도 하다. 비료와 농약을 농사의 기본이라 생각하는, 아흔이 넘은 옆집 어르신의 텃밭은 그야말로 풀 한 포기 안 나는 맨땅이다. 이 맨땅에 고추나 배추 등을 심고선 스프링쿨러를 돌리면 튀어오르는 흙탕물이 돌 무더기를 경계로 삼은 우리집 텃밭에 고스란히 내려앉는다. 처음엔 고춧잎에 내려앉은 흙탕물을 보며 기겁을 했더랬다. 흙탕물은 탄저균의 근원인데 일주일이 멀다 하고 돌아가는 스프링쿨러라니.... 그 다음부터 경계 부근에는 고추나 토마토 대신 배추나 잎채소를 심고 있지만 상추나 배춧잎에 얼룩진 흙탕물을 보면 짜증이 밀려오는 건 매한가지. 그렇게 이삼 년 속앓이를 하다 생각해낸 묘안이 패랭이꽃 군락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결과가 지금 보는 이 패랭이꽃이다. 정확하게는 수염패랭이꽃. 패랭이꽃과 술패랭이꽃은 수염패랭이꽃보다 조금 늦어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다.
▲ 옆집과의 텃밭 경계를 따라 피어난 패랭이꽃
보통의 패랭이꽃과 마찬가지로 수염패랭이꽃도 분명 한 뿌리에서 나온 씨앗에서 번식한 거 같은데 꽃 모양과 색깔은 여러 가지로 피어난다. 마치 누가 더 아름다운가를 경쟁이라도 하는 듯하다. 이 아름다운 패랭이꽃을 내가 키우는 잎채소의 흙탕물 방지용으로 쓰려고 키운다는 걸 옆집 어르신은 알고 있을까? 뭐, 덕분에 나도 가을 초입까지 꽃구경 해서 좋기는 하다만 가끔씩 보얀 흙먼지 자국으로 희끄무레한 패랭이꽃을 쳐다보는 마음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 패랭이꽃
▲ 수염패랭이꽃
▲ 술패랭이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