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걸 어떡해!"
텃밭 여기저기 김장배추, 양배추들이 흩어져 있다. 지난 가을 파종한 것들을 겨울 동안 틈틈이 거둬 먹기 위해 남겨둔 것인데 햇빛 잘 드는 앞마당에도 몇 포기 심어져 있다. 언제부터인가 거실 창문으로 보니 결구가 된 채 겨울을 난 양배추의 하얀 속살이 드러나는 것 같아 보였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앞마당에 있는 예닐곱 포기 모두가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그제서야 텃밭 여기저기를 살펴 보니 상태가 자못 심각하다. 내버려뒀다간 봄에 양배추 먹기가 어려울 정도다.
▲ 강아지들에게 뜯어먹히기 시작하는 양배추
지난 가을, 봄이가 낳은 새끼 강아지 5마리 가운데 세 마리가 아직 분양되지 못하고 있다. 이놈들이 4개월 차에 접어든 터라 이런저런 '저지리'가 장난이 아니다. 입에 물 수 있는 건 죄다 찾아내 난도질을 쳐놓는가 하면, 마당 이곳저곳을 파헤치기 일쑤다. 나는 덮고 이놈들은 파고가 숨바꼭질 같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다 먹을 걸 찾느라 그랬는지 양배추까지 손을 댄 것이리라. 그런데 양배추 때문에 텃밭을 둘러보다 거의 '아트'의 경지에 오른 장난질(?)을 발견했다. 참 나..... 십 년 넘게 개를 키우지만 배추를 이렇게 맛있게, 알뜰하게 파먹는 놈들은 처음 봤다.
다 큰 개들은 어지간해선 생배추나 무 같은 건 잘 먹지 않는다. 아마도 걔네들 입맛엔 맛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강아지들은 곧잘 먹는 걸 볼 수 있다. 순전히 배가 고파서라고만 하기엔 이놈들이 먹어치우는 사료량을 볼 때 아닌 것 같다. 벌써 지 어미보다 더 많이 먹으면 먹었지 적게 먹는 것 같지는 않기에. 그럼 강아지들은 다 큰 개들은 맛 없어서 안 먹는 것들조차 왜 그리 잘 먹을까?
현대 과학은 이를 혀의 미뢰세포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신생아 시절엔 혀뿐만이 아니라 입 안 전체에 맛봉오리가 돋아 있다. 입천장은 물론 목구멍, 혀의 옆면에도 맛수용체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의 입맛에는 별로라고 느끼는 밍밍한 분유도 아주 맛있게 느낀다는 것. 이렇게 남아도는 미뢰세포는 성장하면서 조금씩 줄어들다가 10세 전후에 완전히 사라진다. 아마 아이들의 반찬 투정도 이 무렵부터 본격화되는 것 아닐까? 맛은 미각뿐만 아니라 후각도 아주 크게 작용하는데 후각 역시 어린 아이 때가 가장 민감하고 20세 이후부터는 점점 둔화되며, 60세 이후에는 급격이 나빠지게 된다. 그 좋던 '어머니의 손맛'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음식이 점점 짜게 변해가는 등 엄마의 음식이 예전 '그맛'이 아니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화현상에 따른 것이다.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자식들에게 '왜 이렇게 음식이 짜냐'는 타박을 듣는 건 너무 슬픈 일 아닐까? 우울하게도 내가 내 어머니에게 '그랬었다'.
▲ 김장하고 남겨둔 배추를 강아지들이 예술적으로 파먹고 있다.
혀의 미뢰는 음식의 맛을 느끼는 각종 맛수용체의 집합소다. 최근의 유전자생물학은 이 미뢰의 연구를 통해 예전에는 자세히 몰랐던 동물의 먹이 습성을 밝혀내고 있다. 육식동물인 고양이과 동물은 거의 대부분 혀의 단맛수용체가 고장나 있다고 한다. 단맛수용체가 고장났으니 과일이나 탄수화물의 달콤함을 못 느끼는 것이고 이는 자신들의 DNA에 식물의 먹이 정보에 대한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판다는 자신들의 조상 어느 시점에선가 감칠맛수용체가 고장난 채 진화하게 된다. 판다도 분류학상 엄연히 식육목에 속한다. 육식동물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판다는 감칠맛수용체가 없으니 북극곰이나 불곰들이 즐겨 먹는 연어나 물범의 '고기맛'을 못 느낀다. 그런 까닭에 판다는 하루의 대부분을 별 영양가 없는 대나무를 씹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딱딱한 대나무를 먹기 위해선 두 손으로 움켜쥔 채 물어뜯어야 하는데 그 결과 판다의 손엔 엄지손가락처럼 보이는 손가락 하나가 더 생겨나게 된다. 언뜻 보면 판다는 손가락이 6개처럼 보이는데 엄밀히 말하면 '판다의 엄지'는 손가락이 아니라 손목의 일부분을 이루는 요골종자골이라는 뼈가 대나무를 움켜쥐기 쉽도록 기형적으로 성장하여 엄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 한다. 고등학교때 배운 생물지식을 인용하자면 아마도 상사기관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이자 뛰어난 에세이스트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판다의 엄지>(사이언스북스, 2016)란 책을 보면 이와 유사한 진화과정을 거친 다른 식물이나 동물들의 '슬픈' 사례를 추적하고 있다. 보통 사람의 눈엔 그냥 좀 슬프게 보이는, 동물이나 식물 종의 한 사례에 불과할 수도 있는데, 굴드는 이런 사례들을 종합한 뒤 생물 종의 진화 단위가 개체냐 DNA냐의 논쟁을 제기한다. 누가 봐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상사기관의 진화 사례는 생물 진화의 역사에서 눈에 보이는 극히 일부분일 뿐인데 이런 사례들을 가지고 진화생물학의 뼈대에 해당하는, 진화 단위가 개체냐 DNA냐의 논쟁을 한다는 게 어쩌면 이미 지고들어가는 싸움 같아 보인다. '판다의 엄지' 같은 상사기관의 발달 역시 DNA 단위에서의 정보전달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동물의 먹이 습성을 이야기하다 조금 옆길로 샜는데, 판다나 고양이과 동물보다 더 슬픈 짐승은 고래다. 판다나 고양이과 동물은 혀의 맛수용체 가운데 단맛수용체나 감칠맛수용체 한 가지만 고장나 있는데 반해 고래는 단맛수용체와 감칠맛수용체가 모두 고장나 있다고 한다. 심지어 큰돌고래 같은 종류는 쓴맛수용체 유전자까지 망가져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단맛도, 감칠맛도, 쓴맛도 모르고 먹이를 먹는다는 말이다. 왜 고래가 먹이를 씹지 않고 통채로 삼키는지가 밝혀진 셈이다. 맛을 못 느끼는데 씹어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고된 노동일 뿐.... 단지 배고픔을 느끼고 생존을 위해 먹이를 삼키는 것뿐이니 과식할 이유가 없는 건 확실할 것이다.
▲ 생긴 건 천사 같은데 하는 짓은 점점 악마가 되어가는 강아지들.
이와 달리 모든 맛수용체가 온전한 잡식성 동물의 새끼들은 끊임없이 먹을 걸 요구한다. 강아지들을 보면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먹기를 멈추지 않는다. 한마디로 '맛있는 걸 어떡해'가 따로 없다. 이런 놈들이다 보니 배추든 양배추든 당근이든 앞에 보이는 건 죄다 먹어치울 기세로 오늘도 부지런히 텃밭을 누비는 것이다.
생긴 건 천사 같은데 하는 짓은 점점 악마가 되어가는 놈들. 누가 이놈들 좀 처리해 줬으면 소원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