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모습/일상

"맛있는 걸 어떡해!"

내오랜꿈 2019. 2. 1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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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여기저기 김장배추, 양배추들이 흩어져 있다. 지난 가을 파종한 것들을 겨울 동안 틈틈이 거둬 먹기 위해 남겨둔 것인데 햇빛 잘 드는 앞마당에도 몇 포기 심어져 있다. 언제부터인가 거실 창문으로 보니 결구가 된 채 겨울을 난 양배추의 하얀 속살이 드러나는 것 같아 보였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앞마당에 있는 예닐곱 포기 모두가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그제서야 텃밭 여기저기를 살펴 보니 상태가 자못 심각하다. 내버려뒀다간 봄에 양배추 먹기가 어려울 정도다.



 강아지들에게 뜯어먹히기 시작하는 양배추


지난 가을, 봄이가 낳은 새끼 강아지 5마리 가운데 세 마리가 아직 분양되지 못하고 있다. 이놈들이 4개월 차에 접어든 터라 이런저런 '저지리'가 장난이 아니다. 입에 물 수 있는 건 죄다 찾아내 난도질을 쳐놓는가 하면, 마당 이곳저곳을 파헤치기 일쑤다. 나는 덮고 이놈들은 파고가 숨바꼭질 같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다 먹을 걸 찾느라 그랬는지 양배추까지 손을 댄 것이리라. 그런데 양배추 때문에 텃밭을 둘러보다 거의 '아트'의 경지에 오른 장난질(?)을 발견했다. 참 나..... 십 년 넘게 개를 키우지만 배추를 이렇게 맛있게, 알뜰하게 파먹는 놈들은 처음 봤다.


다 큰 개들은 어지간해선 생배추나 무 같은 건 잘 먹지 않는다. 아마도 걔네들 입맛엔 맛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강아지들은 곧잘 먹는 걸 볼 수 있다. 순전히 배가 고파서라고만 하기엔 이놈들이 먹어치우는 사료량을 볼 때 아닌 것 같다. 벌써 지 어미보다 더 많이 먹으면 먹었지 적게 먹는 것 같지는 않기에. 그럼 강아지들은 다 큰 개들은 맛 없어서 안 먹는 것들조차 왜 그리 잘 먹을까?


현대 과학은 이를 혀의 미뢰세포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신생아 시절엔 혀뿐만이 아니라 입 안 전체에 맛봉오리가 돋아 있다. 입천장은 물론 목구멍, 혀의 옆면에도 맛수용체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의 입맛에는 별로라고 느끼는 밍밍한 분유도 아주 맛있게 느낀다는 것. 이렇게 남아도는 미뢰세포는 성장하면서 조금씩 줄어들다가 10세 전후에 완전히 사라진다. 아마 아이들의 반찬 투정도 이 무렵부터 본격화되는 것 아닐까? 맛은 미각뿐만 아니라 후각도 아주 크게 작용하는데 후각 역시 어린 아이 때가 가장 민감하고 20세 이후부터는 점점 둔화되며, 60세 이후에는 급격이 나빠지게 된다. 그 좋던 '어머니의 손맛'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음식이 점점 짜게 변해가는 등 엄마의 음식이 예전 '그맛'이 아니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화현상에 따른 것이다.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자식들에게 '왜 이렇게 음식이 짜냐'는 타박을 듣는 건 너무 슬픈 일 아닐까? 우울하게도 내가 내 어머니에게 '그랬었다'.



 김장하고 남겨둔 배추를 강아지들이 예술적으로 파먹고 있다. 


혀의 미뢰는 음식의 맛을 느끼는 각종 맛수용체의 집합소다. 최근의 유전자생물학은 이 미뢰의 연구를 통해 예전에는 자세히 몰랐던 동물의 먹이 습성을 밝혀내고 있다. 육식동물인 고양이과 동물은 거의 대부분 혀의 단맛수용체가 고장나 있다고 한다. 단맛수용체가 고장났으니 과일이나 탄수화물의 달콤함을 못 느끼는 것이고 이는 자신들의 DNA에 식물의 먹이 정보에 대한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판다는 자신들의 조상 어느 시점에선가 감칠맛수용체가 고장난 채 진화하게 된다. 판다도 분류학상 엄연히 식육목에 속한다. 육식동물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판다는 감칠맛수용체가 없으니 북극곰이나 불곰들이 즐겨 먹는 연어나 물범의 '고기맛'을 못 느낀다. 그런 까닭에 판다는 하루의 대부분을 별 영양가 없는 대나무를 씹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딱딱한 대나무를 먹기 위해선 두 손으로 움켜쥔 채 물어뜯어야 하는데 그 결과 판다의 손엔 엄지손가락처럼 보이는 손가락 하나가 더 생겨나게 된다. 언뜻 보면 판다는 손가락이 6개처럼 보이는데 엄밀히 말하면 '판다의 엄지'는 손가락이 아니라 손목의 일부분을 이루는 요골종자골이라는 뼈가 대나무를 움켜쥐기 쉽도록 기형적으로 성장하여 엄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 한다. 고등학교때 배운 생물지식을 인용하자면 아마도 상사기관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이자 뛰어난 에세이스트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판다의 엄지>(사이언스북스, 2016)란 책을 보면 이와 유사한 진화과정을 거친 다른 식물이나 동물들의 '슬픈' 사례를 추적하고 있다. 보통 사람의 눈엔 그냥 좀 슬프게 보이는, 동물이나 식물 종의 한 사례에 불과할 수도 있는데, 굴드는 이런 사례들을 종합한 뒤 생물 종의 진화 단위가 개체냐 DNA냐의 논쟁을 제기한다. 누가 봐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상사기관의 진화 사례는 생물 진화의 역사에서 눈에 보이는 극히 일부분일 뿐인데 이런 사례들을 가지고 진화생물학의 뼈대에 해당하는, 진화 단위가 개체냐 DNA냐의 논쟁을 한다는 게 어쩌면 이미 지고들어가는 싸움 같아 보인다. '판다의 엄지' 같은 상사기관의 발달 역시 DNA 단위에서의 정보전달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동물의 먹이 습성을 이야기하다 조금 옆길로 샜는데, 판다나 고양이과 동물보다 더 슬픈 짐승은 고래다. 판다나 고양이과 동물은 혀의 맛수용체 가운데 단맛수용체나 감칠맛수용체 한 가지만 고장나 있는데 반해 고래는 단맛수용체와 감칠맛수용체가 모두 고장나 있다고 한다. 심지어 큰돌고래 같은 종류는 쓴맛수용체 유전자까지 망가져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단맛도, 감칠맛도, 쓴맛도 모르고 먹이를 먹는다는 말이다. 왜 고래가 먹이를 씹지 않고 통채로 삼키는지가 밝혀진 셈이다. 맛을 못 느끼는데 씹어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고된 노동일 뿐.... 단지 배고픔을 느끼고 생존을 위해 먹이를 삼키는 것뿐이니 과식할 이유가 없는 건 확실할 것이다.



 생긴 건 천사 같은데 하는 짓은 점점 악마가 되어가는 강아지들.


이와 달리 모든 맛수용체가 온전한 잡식성 동물의 새끼들은 끊임없이 먹을 걸 요구한다. 강아지들을 보면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먹기를 멈추지 않는다. 한마디로 '맛있는 걸 어떡해'가 따로 없다. 이런 놈들이다 보니 배추든 양배추든 당근이든 앞에 보이는 건 죄다 먹어치울 기세로 오늘도 부지런히 텃밭을 누비는 것이다.


생긴 건 천사 같은데 하는 짓은 점점 악마가 되어가는 놈들. 누가 이놈들 좀 처리해 줬으면 소원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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