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천등산 철쭉 산행, 그리고 비자나무 숲
몇 주 전부터 줄지어 찾아오는 관광버스를 보고선 철쭉철이구나 생각했는데, 어느새 5월 연휴가 끝나가고 있다. 개량종이 아닌, 자연상태에서 자라는 남도의 철쭉은 5월이면 이미 지기 시작한다. 우리 집 뒷산으로 연결된 천등산은 이 주변에서 철쭉 군락지로 나름 유명한 곳이다.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철쭉이 피는 곳이라 4월 중순부터 이 철쭉꽃을 보기 위해 꽤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 천등산 철쭉공원 주변 모습. 주변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어야 하는데, 이미 대부분의 철쭉꽃이 지고 몇 무더기만 남아 있다.
일요일 아침, 늦은 철쭉맞이 산행을 시작했다. 금탑사 비자나무 숲을 지나 오르는 천등산 최단 코스길. 1시간 30분 정도면 정상에 닿는다. 오르는 길 내내 길 양쪽의 참나무들이 그늘길을 만들어 주기에 한여름에도 등산이 가능하다. 오르는 길 양쪽에 떨어진 붉은 꽃잎을 보면서 드는 안 좋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철쭉공원은 이미 철 지난 파시처럼 휑하다. 제철에 왔으면 사람들로 미어터져 사진찍기조차 힘들었을 텐데, 어린 아이 손 잡고 오르는 젊은 부부 한 쌍 외에는 사람 구경하기조차 힘들다. 모자라는 꽃 구경을 공원 전체를 전세 낸 한산함으로 위로 삼는다.
▲ 금탑사 비자나무숲.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최대 군락지라고 한다. 비자나무 숲에서 먹는 막걸리 한 잔, 나름 운치 있다.
철쭉 제대로 못 본 아쉬움을 간직한 채 하산하는 길. 울창한 비자나무 숲이 눈호강을 시켜준다. 금탑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비자나무 숲은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군락지라고 한다. 빽빽한 비자나무 그늘 아래서 막걸리 한 잔과 곁들이는 소박한 점심은 나름대로 꽤 운치 있다.
▲ 금탑사 경내. 흙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과 배롱나무가 소담하게 아름답다.
언제 둘러보아도 소담하게 아름다운 금탑사 경내. 몇 년 전 옮겨 심느라 애써 키운 수많은 가지를 잘리운 배롱나무도 이제는 자리를 잡았고 오래된 흙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은 언제 보아도 눈이 맑아진다. 꽃보다 아름다운 모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