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두콩, 풋콩, 애콩, 보리콩... 추억, 그리움...
어제, 오랜 친구가 블로그에 들러 여러 흔적을 남기고 갔다. 그 가운데 완두콩 꽃 사진을 올린 포스트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다.
"올해는 애콩이라고 콩나물콩을 닮은 완두콩 사촌쯤 되는 콩도 심었는데, 완두콩이랑 잎이 완전 똑같네요. 수확하면 맛을 알려드릴께요^^~~~""
이 댓글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수확하면 맛을 알려준다니... '애콩'은 사실 완두콩의 다른 이름이다. 완두콩은 지역마다 불리는 이름이 다양한데, 서부경남 인근에선 완두콩을 애콩이라 부르는 어르신들이 있다. 그리고 전라도 아랫동네에선 완두콩을 땅콩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댓글을 남긴 친구는 곡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아마도 그곳에서도 애콩이라 부르고 있는 모양이다. 불행히도 이 친구는 경주 출신이라 애콩이 완두콩임을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줄까 하다가 문득 오래 전에 읽었던 시 한 편이 생각났다. 내 삶에서 시를 멀리한 지 꽤 오래 되었는데 이 시는 신춘문예 당선작이었던지라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신문사 인터넷 판에서 우연히 읽었던 모양이다. 풋완두콩을 까던 어머니를 추억하는 내용이고 자기가 살던 동네에선 완두콩을 애콩이라 부른다는 걸 언급하고 있었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었던 거 같다. 차분히 음미하면 '개나 소나' 시랍시고 인터넷에 올리는 인간들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꽤 공들인 작품이라는 게 느껴진다.
애콩 / 이은규
어느 마을에선 완두콩을 애콩이라 부른다
덜 여문 것들에게선 왜 날비린내가 나는지
푸른 날비린내가 나는 이름, 애콩
생의 우기雨期를 건너다 눅눅해져 애를 태우는 것들
엄마는 왜
이 밤에 콩을 까실까, 콩을
불도 안 켜고
꼬투리를 세워 깍지를 열었는지
텅 빈 시간 몇 알 후둑, 후두둑
그릇 위로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잠시 한숨을 고르고
알맹이들을 한쪽으로 쓸어 모으는 손길
알맹이라 착각하고 싶은 둥근 시간들이
꼬투리라는 최초의 집을 떠나면
차오른 허공을 바라보며 허부렁해질 저 꼬투리
열린 방문 사이로 말없이 묻는다
엄마는 왜
이 밤에 콩을 까, 콩을
문틈의 빛줄기 너머로 말없이 들린다
잠이 안 와서, 잠이
철없는 애콩이
꼬투리 잡힐 과오들을 푸르름이라 착각하며
날비린내의 몸을 말아 둥글게 누워 있다
최초의 몸이면서 집인 콩꼬투리
덜 여문 날들을 다독이느라 푸른 물이 들었을 손
그 손이 인기척도 없이 방문을 닫는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나는 닫힌다. 한 철
완두콩을 애콩이라 부르는 정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추측하자면 완두콩은 완전히 익지 않은 풋콩을 삶아 먹을 경우가 많다. 그래서 풋콩이라 부르기도 하는데(물론 풋콩은 덜 익은 콩 전체를 지칭하기에 꼭 완두콩 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애'라는 단어도 '어리다'에 어원을 두고 있으니 '풋'과 같은 의미로 보여진다. 이 시에서도 '푸른 날비린내 나는 이름, 애콩'이란 구절 역시 이런 의미의 연장선 상에 있지 않을까 싶다.
열린 방문 사이로 말없이 묻는다
엄마는 왜
이 밤에 콩을 까, 콩을
문틈의 빛줄기 너머로 말없이 들린다
잠이 안 와서, 잠이
말없이 묻고 말없이 들리는 소리들.....
추억이요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