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모습/일상

익숙함과 낯설음 사이 - 10월 말의 텃밭 풍경

내오랜꿈 2016. 10. 2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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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이곳저곳에서 단풍 소식이 들려오더니 급기야 첫얼음이 관측되었다는 뉴스까지 들린다. 어느덧 가을이 저물고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말이리라. 물론 내 사는 곳에서야 겨울 이야기는 아직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흐린 날들의 연속인지라 다소 쌀쌀한 감은 있지만 이곳 풍경은 여전히 가을의 익숙함으로 내 오감을 물들인다.

 

 

 

▲ 잎끝이 서서히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는 강황과 생강

 

▲ 꽃봉오리를 키우고 있는 브로콜리

 

▲ 이제 본격적으로 땅속 뿌리를 키우는 당근.

 

▲ 섬쑥부쟁이(취나물) 꽃

 

▲ 고려엉겅퀴(곤드레나물) 꽃

 

봄부터 시작해 여름내 쉬지 않고 자라던 것들은 이제 하나의 순환을 마감하려 준비하고 있다. 몇 포기 남지 않은 고추와 파프리카가 그렇고, 잎 떨구는 참다래나무와 감나무가 그렇고, 잎끝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는 강황과 생강이 그렇다. 조만간 잘 익은 열매와 뿌리를 수확하고 나면 길게는 반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러니까 한 순환의 절반이라는 시간을 침묵 속에서 보내야 한다. 가끔은 사람도, 아니 나만이라도 저 침묵의 순환 고리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하다 못해 산중 절간 스님들이 행한다는 겨울 한철 동안거만이라도 내 삶의 익숙함으로 자라잡을 수는 없을까?

 

속이 차오르는 배추와 양배추도, 땅속 덩치를 키우는 무와 당근도, 꽃봉오리를 부풀리기 시작하는 브로콜리와 컬리플라워도, 수많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쑥부쟁이도, 보라색 꽃송이로 바쁜 벌들을 유혹하는 곤드레나물도 이맘때면 언제나 익숙한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들이다. 너무 익숙해서 자칫 놓치기 쉬운 것들. 마치 내 일상 속의 어느 하나인 것처럼.

 

 

 

▲ 비파나무 꽃. 늦가을에 꽃을 피워 이 상태로 겨울을 난다.

 

▲ 수확을 앞두고 있는 참다래 열매.

 

늘 보아도 익숙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내게는 이즈음에 피는 비파꽃이 그렇다. 내가 아는 거의 대부분의 과실나무는 봄에 꽃을 피워 가을에 열매를 수확한다. 비파와 같은 난대성 과실나무인 키위나 귤 등도 대부분 봄에 꽃을 피우고 가을이나 늦어도 겨울 초입에 수확한다. 그런데 비파는 가을에 꽃을 피워 그 상태로 한겨울 북풍한설을 고스란히 견뎌낸 다음 여름 초입에 열매를 수확한다. 몇 년을 보고 있어도 여전히 낯설다. 그리 이상할 것 없는 하나의 생태적 특성일 뿐일 텐데 아마도 세상의 그 어떤 편견과 선입견에 물든 내 생각의 편협함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쉬 눈길 가지 않는 익숙함으로 다가올까?

 

 

 

▲ 계절을 거슬러 핀 패랭이꽃.

 

어떤 낯설음은 당혹스러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한창 꽃봉오리를 피우고 있는 브로콜리 사이로 패랭이꽃 한 무리가 꽃을 피우고 있다. 여름 내내 텃밭 이곳저곳에서 돌아가며 꽃을 피워 눈 호강을 시켜 준 고마운 꽃인데, 이런저런 겨울 소식이 들려오는 날에 핀 패랭이꽃은 만추 산행길 어느 양지바른 산비탈에서 만나는 진달래꽃만큼이나 낯설다. 자신의 생태적 습성을 거스러는, 결코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낯설음. 그러나 이조차도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엔 이즈음 마주치는 여느 풍경처럼 가을날의 익숙함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모든 익숙함은 그 누구에게나 하나의 낯설음에서 시작하는 것일 테니까.

 

어느 한적한 남도 바닷가의 10월 말 텃밭 풍경은 여전히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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