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등산 금탑사 비자나무 숲
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가벼운 산행길을 나선다. 집 뒤편으로 이어진 천등산은 높이가 550 미터로 고흥에서 세번째로 높은 산이다. 봄이면 정상 부근에 철쭉이 무리지어 피는 까닭에 전국의 상춘객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한반도의 산 중에서는 가장 먼저 피는 철쭉 군락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몇 군데 코스가 있는데 오늘은 가장 짧은 금탑사 코스를 택했다. 주차장에서 금탑사 입구를 거쳐 정상까지 3KM 남짓하다. 두 시간 반이면 왕복할 수 있는, 등산이라기보다는 조금 거친 산책 코스라 할 수 있다.
▲ 주차장에서 금탑사 입구까지 이어진 숲길. 신갈나무, 굴참나무 등 참나무들로 이루어져 가을이면 도토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 금탑사 입구. 일주문 공사를 하는 모양이다. 없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요즘 들어 절 안에도 이런저런 공사가 한창이다.
주차장에서 금탑사로 오르는 1.5KM 정도 되는 길은 양 옆이 참나무 종류들로 뒤덮여 있다. 도토리의 형태로 보아서는 신갈나무와 굴참나무, 상수리나무로 이루어진 것 같은데 우리 집에서 일년 먹을 도토리는 거의 대부분 이 길에서 주워 온다. 길 옆으로 계곡 물소리도 들리고 우람한 참나무들로 뒤덮여진 길이라 사시사철 산책코스로는 그만이다. 이십여 분 오르면 금탑사 입구인데 보통 때는 비자나무 숲이 눈에 들어오지만 오늘은 목재 자르는 그라인더 소리가 먼저 귀에 들어온다. 아마도 새로이 일주문을 만드는 모양이다. 지난 봄에 왔을 때는 없던 모습인데 하나 둘 못 보던 것들이 자꾸 생기는 게 영 개운찮은 뒷맛을 남긴다.
▲ 뽕나무버섯부치. 살아 있는 굴참나무 밑둥에 자라고 있다.
▲ 큰비단그물버섯
금탑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난 등산길을 오르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어제 내린 비 탓인지 참나무 숲이 유난히 많은 습기를 머금고 있고 등산길 이곳저곳에 온갖 버섯들이 올라오고 있다. 버섯은 잘 모르는지라 채취한 적이 없는데 잘 모르는 눈에도 몇 가지 식용 가능할 것 같은 버섯들이 눈에 들어온다. 살아 있는 굴참나무 밑둥에서 느타리버섯처럼 피어오르는 노란 버섯은 아무리 봐도 먹을 수 있는 버섯 같다. 산 참나무에서 독버섯이 필 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확실하지 않으니 채취할 생각은 못 하고 그냥 지나친다. 저녁에, 찍은 사진을 약초 까페에 올리니 전문가들로부터 금방 답이 나온다. 이름과 함께 둘 다 식용 가능한 버섯이라고 한다.
▲ 천등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금탑사
▲ 금탑사 비자나무숲. 절을 에워싸고 있는 짙은 녹색이 비자나무숲이다.
▲ 멀리 녹동 쪽으로 거금대교(좌)와 소록대교(우)가 눈에 들어온다.
▲ 천등산에서 바라본 거금도. 가운데 솟은 봉우리가 적대봉이다.
버섯 이야기를 비롯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한 시간 정도 오르니 천등산 정상에 다다른다. 다행히도 해가 구름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지라 그리 뜨거운 날씨는 아니다. 오늘은 시계도 좋은 편이라 남서쪽 방향으로 거금도의 적대봉을 비롯해 거금대교와 소록대교도 한 눈에 들어온다. 여름날의 산 정상은 아무리 눈맛이 좋다한들 그리 오래 있고 싶은 장소는 못 된다. 반그늘을 찾아 얼려 간 막걸리를 한 잔 하고 하산길을 서두른다.
중간쯤 내려 왔을까? 아무 생각없이 갈림길에서 한 방향으로 길을 들어섰는데 이내 올라갈 때의 길이 아닌 걸 깨닫는다. 그렇다고 길이 아닌 것도 아니기에 계속 내려오다 보니 금탑사 비자나무 숲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길이다. 아마도 금탑사 경내를 가로지르는 코스인 것 같다. 길 잘못 들어선 바람에 오히려 비자나무 숲을 맘껏 구경하는 호사를 누린 셈이다. 이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데 그 넓이가 약 십만 제곱미터에 이른다고 하니 아마도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가장 넓은 비자나무 군락지가 아닐까 싶다.
비자나무 숲을 지나니 삼성각이 있는 금탑사 위쪽으로 이어진다. 숱하게 금탑사를 드나들었지만 한 번도 와 보지 않았던 곳이다. 늘 밑에서 올려다보기만 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금탑사는 또 다른 눈맛을 안겨 준다. 언제 어디서 보아도 아담한 금탑사 경내인데 자꾸 이런저런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소박하니 조용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는데 절집 주인의 생각은 나와 같지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