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유/산 · 트레킹

팔영산 - 안 가본 길로...

내오랜꿈 2015. 1. 21.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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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부터 1월 둘째 주까지 주말마다 이런저런 약속된 일정을 소화하느라 틈이 없는 시간을 보냈다. 모처럼 아무런 약속이 없었던 지난 주말, 이틀 내내 집 안에서만 뒹굴기는 좀 거시기한지라 일요일 오전에 팔영산을 찾았다. 




팔영산에 오를 때 내가 평소에 자주 가는 코스는 가장 일반적인 능가사 원점회귀 코스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시골인지라 이동의 문제가 있는 까닭에 원점회귀 코스가 제일 무난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곡강리의 강산폭포 코스로 오르기도 하는데 이때는 능가사 입구에서 (차를 세워 둔) 곡강리까지 2차선 아스팔트 길을 1시간 15(5Km) 정도 걸어야 한다. 한적한 시골길이라 산책한다 생각하면 못 걸을 것까지야 없지만 4시간 동안 산을 타고 내려와 걷는 아스팔트 길은 아무리 풍경이 좋아도 그리 낭만적이진 않다. 그래서 어느 산이건 대부분은 원점회귀 코스를 가장 먼저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예외도 있는 법. 일요일 아침까지 어느 산을 깔까 망설이다 팔영산을 가되 한 번도 안 가본 코스를 택했다. 영남면 소재지인 양사리의 남포미술관에서 팔영산 정상인 깃대봉으로 오르는 코스. 이 코스는 능가사 쪽으로 종주를 하지 않는 이상 팔영산 등반의 묘미인 제1봉부터 8봉까지의 암벽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기에 사람들에게 자주 선택받는 코스는 아니다. 관광버스를 이용해 단체 등반을 하는 산악회 등에서 종주를 목적으로 할 때 주로 이용되는 코스라 할 수 있다.



▲ 깃대봉 오르기 전 전망대에서 본 여수반도의 섬들. 


▲ 깃대봉 오르기 전 전망대에서 본 나로도


▲ 고흥반도의 '독도'. 고흥 사람들은 사진 가운데의 섬을 일러 동도, 서도로 구성된 독도라 부른다.^^


적당한 공터를 찾아 주차를 하고 남포미술관을 끼고 도는 시멘트길을 따라 몇 분 정도 걸어가면 오른쪽 텃밭 사이로 좁디좁은 등산길이 나온다. 이때부터는 정상인 깃대봉까지 거의 외길이다. 등산길 또한 능가사 코스와는 달리 아기자기한 맛이라곤 전혀 없는 밋밋한 능선길이다. 그렇다면 이 코스로 올라갈 이유는 전혀 없는 걸까? 그렇진 않다. 1시간 정도 급경사와 능선길을 올라 바른등재를 지나면 3면이 탁 트인 조망점이 나온다. 이곳에 서면 왼쪽의 여수쪽 금오군도의 여러 섬들과 오른쪽 나로도 인근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우미산과 나로도 사이로 고흥 사람들이 '독도'라 부르는 조그마한 바위섬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방향도 절묘해서 온갖 섬들이 늘어선 다도해의 한가운데에서 마치 독도처럼 저 바위섬 뒤로는 망망대해다.


오밀조밀한 다도해의 풍경을 감상하며  두 시간 가까이 걸어서 도착한 깃대봉. KT 송신탑이 들어선 관계로 깃대봉의 모습은 사실 별로 볼 게 없다. 송신탑 철조망 안에 묶여 있는 외로운 발바리 한 마리가 우리를 보고 꼬리를 내리며 잔뜩 경계하는 자세로 살며시 짖어댄다. 지난 가을에 왔을 때도 있던 놈이다. 608 미터 산 정상에다 무슨 생각을 하며  발바리 한 마리를 묶어 놓았을까? 송신탑 관리하는 사람들이 한 번씩 올라와 보살펴주기야 하겠지만 저 발바리를 볼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 깃대봉에서 바라본 해창만 들판


▲ 마복산에서 바라본 해창만 들판(2014. 01. 04)


불편한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내려오는 길. 해창만 들판을 바라본다. 마복산에서 바라보는 해창만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코스는 별다른 생각없이 발걸음만 옮기기 바쁘다. 주변 풍경들이 아무래도 올라갈 때 만큼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3시간 50분의 등산을 마치고 해창만을 가로지르는 방파제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썰물인 모양이다. 멀리서 갯작업하는 어민들이 보인다.




방파제 옆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 보니 자연산 굴을 따고 있다. 물 밖으로 나와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산 굴은 양식 굴에 비해 크기가 작다. 보통 양식 굴은 가리비 껍데기를 줄에 꿰어 갯벌에 지주를 박아서 늘어놓으면 굴 포자가 가리비 껍데기에 붙어 몸집을 키우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굴 양식 방법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우리나라 굴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통영굴은 24시간 바닷물 속에 잠겨 있고, 여수 돌산굴이나 고흥굴은 썰물 때는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고흥굴은 돌산굴에 비해 물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조금 더 많다. 지주를 박는 깊이의 차이도 있겠지만 조수간만의 차이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자연산 굴이나 양식 굴이나 어차피 바닷물에 떠다니는 포자가 붙어 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성분의 차이는 없다고 봐야 한다. 다만 크기의 차이는 누구나 구별할 수 있을 정도다. 24시간 물 속에 있는 통영굴이 가장 크고 남·서해안 갯벌에 자라는 자연산 굴이 가장 작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가격은 자연산 굴이 비싸고 통영굴이 가장 싸다. 맛이나 영양분의 차이 이런 거는 내가 생각할 때 헛소리고 채취 과정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자연산 굴은 썰물 때 갯벌에 들어가 허리를 굽혀 하나하나 캐내야 하는 것. 그러니 조그마한 게 값만 비싸다고 투정부리는 일은 없기 바란다. 


어쩌다 보니 등산 이야기에서 굴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ㅠ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아쉬움이 쌓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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