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私見] 경계도시2, 넘어오지 못한 공
<경계도시2>는 소위 ‘송두율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에는 흐름이 반전되는 두 번의 순간이 있다. 송 교수가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는 사실(또는 김철수라고 호명되었음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가 첫 번째요, 그가 대국민 사과와 함께 독일 국적을 포기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을 때가 두 번째이다. 이 글은 그 첫 번째 순간에 대한 소회이다.
<퍼슨웹>(http://www.personweb.com) 2010. 08. 02
하나/@latinsamba/
2003년 9월,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는 ‘민주화 운동 기념 사업회’의 초청으로 37년 만에 귀국한다. 입국 다음 날, 송 교수는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하여 국정원에 자진 출두하지만, 조사 이튿날부터 출국 정지 조치가 내려지고, 언론의 태도도 부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귀국한 지 일주일 만에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송두율이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북한 대남 공작원이라고 확신한다”는 국정원의 입장을 언론에 공표하고, 송 교수는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 간첩’이 된다.
이 과정에서 송 교수를 초청했던 ‘민주화 운동 기념 사업회’ 역시 그를 비판하고 북한에서 행한, 과거의 행적을 알았더라면 “들어온다고 해도 막았을 것”이라며 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2003년 10월, 송 교수는 노동당 탈당과 독일 국적 포기 등의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나 수용되지 않은 채 2004년 7월까지 만 9개월 동안 서울구치소에 수감된다.
대법원은 2004년 7월,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공소 사실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하고, 2008년 4월, 독일 국적 취득 이후의 북한 방문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한다. <경계도시2>는 소위 ‘송두율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에는 흐름이 반전되는 두 번의 순간이 있다. 송 교수가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는 사실(또는 김철수라고 호명되었음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가 첫 번째요, 그가 대국민 사과와 함께 독일 국적을 포기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을 때가 두 번째이다. 이 글은 그 첫 번째 순간에 대한 소회이다.
‘긴지, 아닌지’에서 ‘기든, 아니든’으로
영화의 중반부, 홍형숙 감독은 송 교수가 조선노동당에 가입했으며 ‘김철수’로 불렸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먹먹해한다. 이 충격은 부분적으로 송 교수의 조선노동당 가입이 ‘사실’이라는 점에서 비롯하겠지만, 다른 한편 송 교수가 <경계도시1>에서 자신에게 했던 설명과 2003년 기자들에게 했던 설명이 다르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감독은 송 교수가 “적대적 체제의 심장”인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는 사실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개인적인 의심으로 혼란스러워 한다.
그러다 몇 년 전, 자신이 학생들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낸다. 그녀는 과거에 이렇게 말했었다. “그가 김철수든, 아니든 대한민국이 그를 안을 수 있는지가 문제다.” 그 말을 듣고 까먹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긴지, 아닌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기든, 아니든’으로 나아갈 때의 해방감.
영화에서 기자들이 송 교수에게 “그래서 김철수가 맞다? 아니다?”를 집요하게 들이댈 때, 과거에 내가 스스로에게 되뇌었던 질문들과 그로 인해 괴로웠던 마음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별것 아닌 사연이고 그래서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취업 면접에 한창 실패할 때였다. 그간 내가 자발적 무용자(無用者)인 줄 알았는데 실상 일개 무능(無能)한 인간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집단 또는 취향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용함이 ‘스펙’이나 명예가 되기도 한다. 허나 막상 취업을 하려 하면 학벌부터 영어 실력까지 기댈 구석이 없다. 그 순간, 손톱 물어뜯으며 ‘긴지, 아닌지’를 따지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세속의 냉정한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나름의 경험, 모순된 선택들, 퇴행과 발전의 시기.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인의 복잡성이 딱 두 가지 범주 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무능한가, 무능하지 않은가’ 이 질문 앞에서 그동안 쌓아왔던 지식과 항변은 소용이 없고, 그저 매일 실연을 당하는 것처럼 거절감만 충만하다. 나 자신은 이제 더 이상 ‘무능’이라는 단순 잣대로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지만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는 바, 이는 오직 나의 사회적 처지가 변했기 때문이다.
‘긴지, 아닌지’. 즉, 이분법적으로 경계를 나누는 일이 끔찍한 이유는 결국 경계의 안과 밖 중에서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차별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무능한 사람이기 싫었고 사실상 무능에 뒤따라오는 불이익이 싫었다. 2003년 한국 사회는 송 교수가 조선노동당 당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민주화 운동 단체는 이로 인해 파생되는 “민주화 운동의 타격”, “대여섯 달 남은 총선의 부담”을 떠안지 않았다.
영화에서 어떤 이는 “노동당 당원이 무슨 경계인이야”라며 내재된 레드콤플렉스를 드러낸다. 또 어떤 이는 “기술적으로 생각하십시오. 테크니컬하게 생각해야 진짜 경계인이 되는 겁니다!”라며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얕은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노동당 입당을 수습한다는 목적을 위해서 송 교수 개인의 사상, 선택, 번복을 통제하고, 특히 그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며 ‘영혼은 팔지 말고, 그저 전략적으로 후퇴하자’고 말한다.
송 교수는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2007)에서 기자회견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나 때문에 그간 민주화운동이나 진보운동의 성과가 훼손되었다며, 아무튼 내 사건이 빨리 무마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국적 포기 카드라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어요. (중략) 미안한 마음도 생겼지만 그보다는 군사독재에 타협하지 않고 살아온 나의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은 억울함과 동시에 비통함을 느꼈어요.”
원칙과 과정을 지킬 때, 시선을 멀리 둘 수 있고 단기적인 이익을 넘어 궁극적으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그러나 비단 송 교수 사건뿐 아니라, 선거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비판적 지지론’, 그리고 우리의 개인적 삶에서 원칙과 과정을 간과하는 행동은 무수히 반복된다.
누구에게나 선택해야할 순간 그래서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때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송 교수가 조선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이 밝혀졌을 때, 공은 우리에게로 던져진다. “결국, 기라더라. 어떻게 할래?” 이 공을 우리보다 먼저 받은 감독은, 묵묵히 지켜보다 생각해낸다. “그가 김철수든, 아니든.”
송두율은 김철수이면 안 되는가
‘긴지, 아닌지’ 즉, 이분법적으로 경계를 나누는 일이 결국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과 달리, ‘기든, 아니든’이라는 표현 속에는 경계는 인정하되, 이로 인해 파생되는 차별을 넘어서려는 성숙함이 있다. 이러한 성숙함은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는 취업준비생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무능하든, 아니든 나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나아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도 한다.
“(민간인 집단학살이라는 용어에 대한 주석) 통상적으로 민간인 집단학살이라는 말보다는 양민 집단학살이라는 말이 통용된다. 그러나 양민이라는 표현은 선험적으로 사상적인 순수성, 즉 세계를 절대선과 절대악의 기계적 이분법으로 구분한 다음 좌익을 절대악으로 보고 그러한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현연, 한국 현대정치의 악몽-국가폭력
“70년대, 박정희 시대에는 국회의원도 고문을 당했는데, 당시 고문당했던 어떤 의원이… ‘나도 박정희 때는 고문당한 적이 있다. 간첩도 아닌데…’라는 이야기를 했답니다.”
서경식,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비슷한 맥락에서, 소위 ‘정치적으로 착한’ 영화임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타자를 묘사하는 방식을 통해 차별을 은연중에 표출하는 경우가 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위에서 언급한 ‘양민’의 이미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강혜정이 연기했던 여인은, 마치 ‘사상적인 순수성’에 대한 한 톨의 의심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지능이 부족한 ‘바보’ 또는 ‘광인’으로 그려진다. 지나치게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을 다룬, 이 영화는 결국 ‘아무것도 몰랐던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강조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또는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알았던 이들, 불순한 이들의 당연한 죽음’을 묵인한다.
이들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간첩이면, 좌익이면 죽여도 괜찮은가. 정말이지 송두율은 김철수이면 안 되는가.
송 교수는 “‘경계인’은 기존의 경계선을 허문다. 이쪽과 저쪽이 모두 숨 쉴 수 있는 틈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국정원이 그가 저술 활동을 통해 주체사상을 선전하고 유포했다고 한 것과 달리, 송 교수는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경계인’이라는 이론을 설명한 셈이 되었다. 그 말마따나 “역설치고는 지독한 역설이다”.
'스크랩 > 문화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이크 리, <네이키드> - 단절의 징후들 (0) | 2010.10.26 |
---|---|
크리스토퍼 놀란, <인셉션> - 애매모호 제거강박증 (0) | 2010.09.13 |
이창동, <시> (0) | 2010.07.06 |
보르헤스 : 허구적 세계의 진실 (0) | 2009.12.01 |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 구원의 길, 구원받지 못한 사랑 (0) | 2009.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