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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 어떤 인물도 딱히 무엇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

by 내오랜꿈 2008.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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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 어떤 인물도 딱히 무엇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
<채널예스> 정혜윤 PD의 그들은?

출처 : <채널예스> 2008년 01월 24일 


<리빙 라스베가스Leaving Las Vegas(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내 어찌 그 영화를 잊을 수 있을까? 죽을 곳을 찾아 라스베가스에 간 알코올 중독자 역을 한 니콜라스 케이지 그리고 창녀 역할을 한 엘리자베스 슈. 만약 이 영화를 알코올 중독자와 창녀의 희망 없는 막장 러브스토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내 옆에 붙잡아 앉혀 놓고 이 영화가 왜 사랑 영화가 아닌지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영화가 아니고 절망에 관한 영화이다. ‘사람은 언제 자기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할까?’라고 묻는 영화.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간에라도 마지막 기댈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하나쯤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인간적인 것 아닌가?’라고 묻는 영화. 혹은 ‘사랑하는 중에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해도 그건 덜 사랑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묻는 영화이다.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을 인터뷰한 지독하게 추운 날, 코트깃을 들추며 내 심장에 파고든 음악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 삽입되었던 스팅의 ‘엔젤 아이angel eye’였다. 듣는 순간 가슴이 너무 아파서 고개가 팍 꺾이는 첫 구절, Have you ever had the feeling That the world's gone and left you behind. Have you ever had the feeling…. 이 음악을 나는 임순례 감독이 아니라 임순례 감독의 아버지 때문에 생각한 것 같다. 칼바람 부는 밤거리에 서 있다가 누군가를 짐작하는 것이 얼마만큼 어려운 일인가 생각했더니 추위쯤은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동동거리며 뛰지 않을 수도 있게 되었다. 추운 밤거리에서 자기혐오에 빠져 비틀거리는 취객들에게도 오직 따뜻한 단 한 곳은 아내와 어린 아이들이 있는 자기 집뿐일지도 모른다.

영화감독 임순례 ⓒ www.koreanmovie.com


“제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단 건 전혀 말이 안 되죠.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하기도 했지만 집안에 질서란 게 없었어요. 우리 아버지는 직장이 없는 알코올 중독자는 아니지만 정상적 출퇴근을 하는 알코올 중독자였어요. 제가 오 남매 중 막내인데 제 일곱 살 이후 기억은 매일 아버지가 퇴근하면 아이들은 정신없이 각자 자기 방으로 숨어 들어가는 풍경이었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을 위해 동화책을 사주는 그런 정상적인 가정은 아니었죠. 텔레비전도 없었고 동화책 한 권도 굴러다닌 적이 없으니까 친구들이 동화책 이야기를 하거나 하다못해 만화영화 이야기를 해도 전혀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까지 단 한 권의 문학작품도 읽은 기억이 없어요.”

이 부분에서 임순례 감독은 ‘그래서 내 영화가 메말랐나?’ 하고 터무니없이 해맑게 웃었다. 그 표정을 보고 나니 나도 비로소 숨을 쉬며 웃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하고 한 번 더 물어봤다.

“우리 아버지는 충청도 굉장히 심심산골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라서 정규교육을 못 받았고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죠. 스무 살 나이에 일찍 결혼해서 둘이서 고향을 떠나 인천이란 도시의 일용직 노동자로 살게 돼요. 그런데 운이 좋아서 미군부대에 취직했죠. 우리 아버지 학벌에 비해서 좋은 직장을 구한 거죠. 보통 사람들은 미군부대에 다니면 미제 물건을 집에 가져와서 빼돌려서 살았는데 우리 아버지는 고지식한 사람이고 결벽증이 있어서 식품이나 가전제품 같은 것을 가져온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대신 연필이나 도화지 같은 학용품을 좀 가져오셨었죠. 아버지가 머리가 좋고 섬세하고 예민한 분이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시골에서 계속 농사를 지었으면 알코올 중독자가 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근데 도시에 나와서 많이 좌절했고 ‘하다못해 중학교 졸업장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죠. 그 좌절 때문에 술에 탐닉한 걸로 저는 추정해요. 매일 만취해서 한 시쯤에 들어오고, 집안사람들을 괴롭히고 신세 한탄하고 한 두세 시간 자고 20년 넘게 단 한 번도 결근이나 지각을 안 한 사람이었죠. 결국 술 때문에 장기가 상해서 위암 말기로 돌아가셨죠. 85년의 일이네요. 우리 엄마는 선한 사람이었죠. 인내심이 강하고 성실해서 아버지가 술을 많이 먹고 고통을 줬는데 폭력도 물론 있었고요, 보통 그런 경우엔 그 고통을 자식이나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데 우리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어요. 고통이 엄마의 품성을 무너뜨리지 못했어요.”

이 부분에서 임순례 감독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지레 놀라 왜 그러나 물어봤다. 대답이 나의 투지를 불태웠다.

“나는 엄마 아빠의 단점만을 완벽하게 섞어 닮았어요. 외모가 아빠가 좋고 엄마가 별로예요. 성격은 아빠가 까칠하고 엄마가 좋고. 그런데 제 형제들은 눈도 다 쌍꺼풀이 있는데 나 혼자 눈 찢어지고 입 튀어나오고 콧대 낮고 아버지의 게으르고 까칠한 면까지 닮았죠.”

"정말 그렇다면 비극이군요!"라고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순간, 내 머릿속에 애니 프루의 『시핑 뉴스』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그건 영국 수용소의 가난한 소년원생 처지로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캐나다로 보내주겠다는 고아원장의 말을 믿고 배를 탔다 배가 난파되어 춥고 혹독한 뉴펀들랜드에 살게 된 아버지를 회고하는 아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내가 열두 살 때 그러니까 1933년 11월의 일은 평생 잊지 못할 걸세. 아버지가 결핵에 걸려 돌아가시기 일 년 전 일이지. 그때의 가난은 자네는 상상도 못할 거야. 우편선이 아버지 앞으로 커다란 나무 상자를 배달했네. 뚜껑에 못을 쳐서 열어볼 수 없었지. 아버진 크리스마스 때까지 열지 않겠다고 하셨어. 우린 그 안에 뭐가 있을까 궁리하느라 밤잠을 설치곤 했지. 별별 걸 다 상상했어. 크리스마스 날 우린 그 상자를 교회로 끌고 갔고 그 안에 뭐가 들었을까 궁금해서 목을 길게 빼고 지켜봤다네.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내며 뚜껑이 열렸는데 그 안에 책이 가득 들어 있었어. 한 100권은 됐을 거야. 어린이용 그림책과 화산에 관한 빨간 표지로 된 커다란 책이 있었는데 그 책 마지막 장에 뉴펀들랜드의 고대 화산 활동에 관한 연구가 나왔었지. 책에서 뉴펀들랜드라는 이름을 보기는 모두들 그때가 처음이었네. 그것이 우리의 지적 욕구에 불을 붙여 지적 혁명이 일어났지. 뉴펀들랜드가 책에 나온 것 말이야. 그동안 우린 세상과 동떨어져 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경우는 다르지만 초등학교 때까지 교과서 외에는 단 한 권의 책도 보지 못했고 어느 정도는 세상과 동떨어져 살았던(『인어공주』도 만화도 모른다는 점에서) 그녀에게 지적 혁명은 언제 일어났을까?

“중학교 가서 책에 취미가 생겼어요. 초등학교는 변두리의 규모가 작은 학교라서 도서관이 없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가니까 도서관이란 곳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학교에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어요. 동화책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세계 명작의 세계로 진입해서 처음 읽은 책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그리고 발자크와 모파상이었죠. 중학교 애들 중에서도 조숙한 애들이 읽는 책으로 갑자기 건너뛰게 되었는데 이해는 못했지만 무척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결과 학교 공부가 시시해졌단 거예요. 초등학교 때는 유일하게 읽은 책이 교과서뿐이었는데(즉, 갖고 있는 책은 교과서 한 가지뿐이었으니까) 이제 교과서가 시시해져서 교과서 뒤에 매일 문고판을 끼워서 읽기 시작했어요. 책상 밑에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 같은 것을 넣고 읽는 거죠. 그래서 선생님들한테 들켜서 진짜 많이 맞았어요. 따귀도 많이 맞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수업 시간에 소설책을 읽는 건 잘한 건 아니라 해도 그렇게 심하게 맞을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와중에도 굉장히 기억에 남는 책이 한 권 생기는데 바로 『모히칸족의 최후』예요. 마지막 부족이 하나둘씩 죽어가는 걸 도서관에 앉아서 보았는데 그날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평소에 많이 우는 편이 아닌데도 그날 그 해질녘 도서관에서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임순례 감독의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소설을 읽는 여학생의 따귀를 때리는 짝! 소리가 정말로 눈앞에서 번쩍거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해질녘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울어버리는 여학생의 눈물도 눈앞에서 번쩍거리는 것 같았다. 그럴 때의 눈물이야말로 어정쩡하게 감상적일 수 있는 순간에 딴 곳으로 눈을 확 돌리게 하는 눈물이다. 마치 슬픈 순간에 훽 다른 곳을 비춰버리는 카메라의 단호한 시선 같은 눈물이다. ‘맞아서 우는 게 아니라 슬퍼서 우는 거다.’라는 선언, ‘나 때문에 우는 게 아니라 책 때문에 우는 것이다.’라는 선언.‘그러니 제발 나를 존중해 달라’고 말하는 눈물.

“책을 통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게 좋았죠. 내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너무 한정되었고 복잡한 속내도 알지 못했었는데 책을 통해서 사람들 속에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내 인생에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시기가 중학교였는데 그때의 난독이 영화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어떤 캐릭터를 이해하는 힘 같은 게 생기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맞고 다녔지만 한 가지 아주 운이 좋은 일이 있었다면 국어 선생님을 좋은 분을 만났다는 거예요. 그때는 고전 경시대회란 게 있었는데 이를테면 고전을 읽고 학교 대표로 나가서 지식을 뽐내는 대회였어요. 그래서 방학 때 아이들을 몇 명 모아 놓고 국어 선생님이 지도했어요. 책에 관한 가이드란 걸 처음 받아봤고 특히 나를 총애해서 책을 많이 빌려줬어요.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남자 선생님인데 그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는 러시아, 프랑스, 독일 거장들의 작품을 무턱대고 섣불리 읽었다면 그 선생님을 만난 이후론 심훈. 김동리. 김동인 이런 작가들의 책을 읽었죠. 선생님이 빌려준 책엔 심훈의 『상록수』도 있네요.”

그녀의 국어 선생님 운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진다.

“고등학교 때는 여자 국어 선생님을 만났는데 많은 아이들이 좋아한 선생님이었어요. 그 선생님은 작문을 하게 했는데 이를테면 교과서에 나오는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읽고 학생들에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제목의 작문을 하게 했어요. 그런데 그때쯤이면 보통 여고생들은 ‘낙엽이 떨어져서 슬프다.’라든가 뭐 그런 자연 풍경에 관한 걸 썼는데 나는 달랐어요. 내 기억에 내가 슬프다고 이야기한 내용들은 인간이 인간을 막 대하는 것, 인간이 인간에게 거칠게 예의 없이 대하는 것, 인간이 동물을 학대하는 것,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것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썼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 글을 무척 좋게 봤고 칭찬해줘서 국어 공부는 참 열심히 했어요.”

(이 부분에서 어찌 그녀의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주 오랜 기간 그녀에게 가해자의 이미지로만 남게 되는 아버지.)

국어 공부는 열심히 했다는 말은 다른 공부는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제가 중학교까진 공부를 잘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와서 공부를 못하게 되었어요. 성적이 뚝뚝 떨어졌어요. 그게 어느 정도는 당연한데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 숙제를 한 번도 안 해갔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 공책을 사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냥 맞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이 부분에서 폭소를 터트렸다. 웃겨서 웃은 게 아니라 믿어지지 않아서 웃었다. 그래서 애타는 목소리로 ‘그래도 한 번 정도는 하지 않았나요?’라고 물어봤다.

“숙제를 안 해가도 공부를 잘해서 심하게 맞진 않았어요. 나중엔 선생님들도 그냥 좀 괴팍한 애라고 생각했고 나도 ‘그냥 맞고 말아. 몸으로 때워.’ 이렇게 생각했죠. 그런 것에 대해 겁이 없었어요. 한문 숙제 같은 건 4번 쓰는 게 숙제였다면 그 다음엔 두 배로 8번, 16번, …, 520번까지 간 적 있는데 그쯤 되면 선생님도 나도 포기했죠. 그런데 고등학교 때 성적이 하위권을 달리니까 선생님들이 굉장히 무시하더라고요. 그러다가 고2, 2학기 넘어갈 때에 우리 학교에 어떤 일이 생기느냐면요, 우리가 열반이었는데 학교 측이 생각하기에 여섯 반은 대학 갈 것 같고 나머지 네 반은 대학 못 갈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열등생 네 반에게는 미용 기술과 타자 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저는 열등생 반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미용도 타자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손동작이 아주 굼뜨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가서 말했죠. ‘선생님, 저는 미용을 할 수도 없고 타자도 할 수 없어요. 사실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맘먹고 하면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기회를 한 번만 주세요.’ 그렇게 사정사정해서 인문반 꼴찌로 대학 가는 반에 들어갔는데 그땐 공부를 하려고 해도 기초가 달리니까 집중이 안 돼요. 그러다가 첫 시험 보고 학교에서 성적순으로 한지에다가 이름을 써서 방을 붙였는데 내 이름이 없는 거예요. 쭉 따라가 보니까 맨 끝에서 두 번째인가에 내 이름이 보여요. 그때 충격받았죠. ‘내가 정말 공부를 못하는구나.’ 하는 깨달음. (‘깨달음’이란 어휘를 이런데 써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아주 중요한 깨달음이다.) 그리고 모든 걸 대학 가는 데 맞추는 선생님들에 대한 반발심도 생겨서 결국은 학교를 그만둬요.”

그녀의 고3 때 경험. 모든 생활이 대학 가기 위한 시스템으로 가동되어서 졸아도, 떠들어도, 지각해도 “너, 그래서 대학 가겠니?”란 말을 들었던 그 경험은 그녀의 영화 <세 친구>에 훗날 고스란히 반영된다.

“놀아서 살쪘던 삼겹의 모습도 나고, 학교 적응 못 하는 귀먹은 아이도 나의 모습이고 사회가 규정한 성정체성 때문에 고통 받은 섬세도 나의 모습이고 <세 친구>가 가장 나의 모습이 많이 들어간 영화죠”

까맣고 말라서 중학교 때까지의 별명이 베트콩이었던 빼빼쟁이 소녀 임순례가 집중적으로 살쪘던 그 시기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난 후 2년간이다.

“그때 다시 한 번 책을 많이 읽게 돼요. 공부는 안 하고 집에서 놀기 시작하니까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때가 79년 80년 무렵이라서 세상은 난리인데 저는 그런 것과 전혀 상관없이 방에서 뒹굴면서 책을 읽었어요. 한국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황석영, 박완서, 이문열, 윤후명. 한 번 잡은 작가는 그 작가의 전 작품들을 읽었어요. 손에서 책을 놓지는 않았지만 공부를 하려는 의지는 없어지고 밥만 먹고 뒹굴뒹굴 띵가띵가 했어요. 그때 할머니랑 방을 같이 썼는데 당시 우리 할머니가 치매였지요. 지금 생각하면 희한한 그림이에요. 꼭 제인 캠피온 영화 같아요. 딸은 학교 안 가서 점점 살이 찌고 할머니는 치매로 이상한 짓 하고.”

우리가 함께 떠올렸던 제인 캠피온의 영화는 <내 책상 위의 천사>다. <내 책상 위의 천사>의 여주인공 자넷 역시 뚱뚱하고 세상과 소통할 방법을 모르지만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덕에 길을 발견한다. 그녀는 언제 길을 발견할까?

“2년을 그러고 놀았더니 정말 해피한데 2년 노니까 현실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 없더라고요. 그저 학교를 안 가고, 누군가 나에게 잔소리 안 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우리 집에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 있고, 아무 생각 없이 평생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근데 그런 인생도 괜찮겠다 생각했지만 우리 집안 형편을 생각하면 내가 남은 인생 돈을 벌어야 하는 건 자명하잖아요. 고등학교 중퇴 학력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게 공장 가는 것뿐인데 학교도 다니기 싫어한 내가 매일매일 공장에 다닐 순 없을 것 같아서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영어, 수학은 단과학원 다니고 대부분은 독서실에서 혼자 일 년간 검정고시 공부해서 대학생이 된 거죠.”

그녀는 그렇게 들어간 대학 3학년 때 우연히 학교 친구에게 프랑스문화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으로 그곳에 찾아가서 미쉘 모르강 감독의 영화 <전원 교향곡>(아마 앙드레 지드의 소설 「전원 교향곡」을 영화로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앙드레 지드의 「전원 교향곡」은 내게 전나무와 전나무 가지, 그리고 풀숲에 펼쳐져 있는 책의 이미지, 책 속의 글자들은 다 꽃 같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맹인 소녀의 이미지다. 그 맹인 소녀가 눈을 떠서 본 세상은 책 속의 꽃 같은 글씨들은 아니었지만.)을 보고 프랑스 누벨바그 흑백 영화에 빠져든다. 주중엔 학교에 다니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프랑스문화원을 찾아 하루에 네 편씩 여덟 편의 영화를 보며 트뤼포나 고다르의 영화에 빠져들고 거기서 타베르니에 감독의 영화를 본 뒤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다. 타베르니에 감독의 영화는 일반 가정이 지니고 있는 위선, 프랑스가 아프리카에서 행하는 폭력을 주로 다루는 사회성 짙은 작품들이었다. 이를테면, 생폴의 <시계 상인> 같은 영화. 내친김에 그녀는 88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92년에 돌아온다. 나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어떻게 영화를 공부하러 프랑스에 갈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우리 집이 좀 그래요. 내가 고3 때 ‘아버지, 저 내일부터 학교 안 가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딱 한마디 했어요. ‘알았다.’ 보통 가정은 그런 딸을 앞에 두고 있으면 적어도 대화가 한두 시간은 가는데 우리 집은 그게 없었어요. 사소한 농담은 많이 했어도 정말 중요한 일은 늘 한 문장이었죠. 유학 갈 때는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신혼의 큰오빠가 가장이었는데 오빠도 딱 한마디 했어요. ‘알았다.’”

그러나 그 ‘알았다.’ 뒤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한 수많은 노력들이 있다. 공고를 나온 큰오빠는 막내 여동생의 학비를 대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살림살이를 줄여나가야 했다.

“유학 갔다 돌아와서 4년간 한국소설을 많이 읽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 봐요. 92년에 돌아와서<세 친구> 찍기까지 4년 정도 걸렸는데 돌아와서는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의 책을 다 읽었어요. 책을 볼 때 제가 중요시하는 것은 어떤 장면이나 줄거리라기보다는 작가의 시선이나 주제의식인 것 같아요. 이 작가는 어떤 세계에 관심을 갖나?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갖다가 어떻게 흘러가나? 그중에서도 특히 초기작에 관심을 갖죠. 그때 공선옥이란 작가에게 관심이 갔어요. 나랑 비슷하다고 느낀 거죠. 『피어라 수선화』와 『오지리에 두고온 서른 살』 같은 작품 좋아했어요. 그러고 보면 중학교 때나 대학교 들어가기 전의 독서가 훨씬 순수했던 것 같아요. 영화 하면서부터는 비슷한 동시대 작가들은 이 사회를 어떻게 보나 관심을 갖고 보게 돼요. 그래서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나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같은 책은 꼭 사 봐요. 동시대적 관심이란 측면에서요.”

소설가 공선옥 씨와의 인연은 계속된다.

<세 친구> 끝나고 공선옥 씨랑 인연이 되어서 공선옥 씨가 살던 전남 곡성에 내려가 살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세 친구> 시나리오 도움을 좀 받을까 해서 연락했던 거죠. 나중엔 나도 시골에서 살고 싶어서 공선옥 씨 아랫집을 얻어 거기서 몇 달 살다가 그 다음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하기 전 2년 반 정도를 해인사 밑 마을에서 살게 돼요. 그런데 내가 살던 곳이 해인사 밑 첫 마을이었는데 그때 매일 해인사에 가면서 불교 쪽에 관심을 갖게 되죠. 그러고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끝나고는 남양주에 살았는데 이상하게 내가 행복하지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어느 날 왜 행복하지 않나 생각하다가 ‘아, 어린 시절 내 옆에 항상 있던 개가 없어서 그렇구나.’ 하고 ‘태백’이란 이름의 개를 한 마리 기르게 돼요. 그 개는 결국 집을 나가게 되지요. 지금 생각하면 두 마리를 샀어야 했던 것 같아요.”

‘두 마리를 샀어야 했는데’라고 말할 때 임순례 감독의 눈동자가 얼마나 회환에 젖었는지 정말로 혼자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뼈저린 후회 그 자체였다. 그 남양주 시절 이야기는 사실 오래전 그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 날 산에 방치된 개들이 꽤 많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유기견들의 밥을 챙겨주고 돌봐주는 개들의 어머니 생활을 한동안 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항의도 받게 된다. <우생순>을 만들기 직전까지의 일이다. 하지만 한 마리의 개가 주는 힌트는 한 마리의 개라도 제대로 사랑하면 전 우주를 다시 보는 시선을 갖게 된다는 거다. 바로 이렇게.

“태백이를 기르다가 동물 보호와 개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게 되었어요. ‘어떻게 인간은 개와 친구가 되었는가?’ 이런 책들이죠. 수의사 헤리엇의 책도 읽고요. 그러다가 동물 일반으로 관심이 확대되면서 제인 구달의 책을 다 읽게 되었어요. 『희망의 이유』나 『내가 사랑한 침팬지』 같은 책이죠. 그러고는 자연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나 스콧 니어링 부부의 책을 다 읽었어요. 특히 헬렌 니어링의『소박한 밥상』을 읽고는 채식을 하게 돼요. 한편, 해인사 살 때의 기억 때문에 영성에 관한 책들도 많이 읽어요. 『나는 여자의 몸으로 붓다가 되었다』란 책이나 달라이 라마의 책들을 다 읽는 거죠.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스모크>란 영화를 보다가 폴 오스터란 작가를 알게 되어서 폴 오스터 책을 다 읽었고 그 다음에 코엘류에 빠졌어요. 코엘류의 책은 폴 오스터 책보다 저의 성향에 잘 맞았지요. 폴 오스터는 워낙 뛰어난 이야기꾼이라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요. 코엘류는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놓치고 가는 근원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참 쉽게 잘 풀어놔서 푹 빠졌죠. 『연금술사』와 『오 자히르』가 좋았던 것 같아요.”

우리가 공통으로 좋아하여 최고로 꼽은 폴 오스터의 책은 『달의 궁전』이었고 그녀만 좋아하는 책은 『동행』(‘미스터 본즈’라는 잡종개가 윌리란 남자와 함께 길을 떠나는 색다른 로드무비란 것 정도밖에 나는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하여간 개가 나온다.)이었고 개인적으로 임순례 감독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폴 오스터의 책은 『고독의 발명』이었다. 일천 권의 책이 들어있는 책 박스를 깔고 자는 『달의 궁전』은 나의 책 (어머 부끄러워라. 화끈!) 『침대와 책』의 힌트가 되었던 책이기도 하다.

이 만족감을 좀 생각해 봐, 침대로 기어들어가 19세기 미국 문학 위에서 꿈을 꾸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만족감을.

이 정신이 바로 『침대와 책』의 요사스런 너스레였다. 하지만 『달의 궁전』을 내가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떠올리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째 경우는 오전부터 비 내리는 날이다. 그러니까 바야흐로 5,6년 전 비 내리는 어느 여름 일요일 날, 나는 베란다에 낮은 테이블을 꺼내 세상 편한 자세로 다리를 뻗고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빗소리를 들으며 『달의 궁전』을 읽었는데 첫 문장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부터 빠져 들어가 딱 이 부분에서 너무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리고 샌드위치를 떨어뜨렸었다.

달에서는 남자들의 옆구리에는 청동 성기가 매달려 있었지요. 17세기 프랑스 남자들이 칼을 차고 다니던 것과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어떤 달 사람이 어리둥절해진 시라노에게 이렇게 설명해줍니다. 살상의 도구보다는 생명의 도구를 존중하는 게 더 낫지 않느냐?

두번째로 『달의 궁전』을 꼭 떠올리는 경우는 계란프라이를 해먹을 때다. 거의 굶어죽게 된 주인공이 마지막 남은 달걀을 삶으려 할 때 그 달걀이 바닥에 떨어져 버리는 장면 때문이다.

샛노랗고 반투명한 달걀의 내용물이 마루 틈으로 스며들면서 순식간에 질퍽한 점액과 깨진 껍질이 사방으로 번졌다. 나는 마치 별이 폭발한 것 같은, 거대한 태양이 막 사라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노른자가 흰자위로 번지더니 다음에는 거대한 성운, 성간 가스의 잔해로 바뀌면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내게는 그 노른자가 너무 엄청난 것,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마지막 지푸라기였기에 그 일이 일어나자 나는 그만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그 뒤로 나는 계란을 얼마나 조심스레 다루는지 거의 가슴에 품고 다닐 정도다. 내가 그녀에게 권해주고 싶은 『고독의 발명』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는 아들이 화자다. 그의 아버지는 일평생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만일 우리가 다른 누군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이 자기를 알리려고 하는 범위 내에서이다. 어떤 남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 추워. 아니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대신 떠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그 사람이 춥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떨지도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폴 오스터는 『고독의 발명』 거의 끝부분에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빌려 힌트를 준다.

일을 하는 자만이 빵을 얻고 고뇌에 잠겼던 자만이 평온을 찾고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자만이 사랑하는 이를 구하고 칼을 뽑는 자만이 이삭Isaac을 구한다는 것은 언제까지고 옳다. … 일을 하려들지 않는 자는 이스라엘 처녀들에 대해서 씌어진 것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바람의 아이를 낳지만 기꺼이 일을 하려고 하는 자는 자기 아버지의 아이를 낳기 때문이다.

임순례 감독은 그녀의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기꺼이 어떤 일을 했을까?

“아. 그거요. 내가 나중에 술을 마시게 되면서 술 끊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어서 이해했지요.”

우리는 웃었지만 사실은 그 대답 뒤엔 ‘내 아버지는 왜 술을 마셨을까?’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기, 그러면서 인생의 아이러니를 발견해내기, 그것 또한 삶과 접촉하는 한 방식이었단 걸 어렵게 이해하기, 역시 술 끊기는 어렵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깨닫기 같은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청혼할 방법을 몰라 헤매는 남자 후배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에는 스콧 니어링이 헬렌 니어링에게 청혼할 때 해준 참 썰렁한 아이스크림 요리법이 나온다. 하여간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케이크보다는 톱과 망치로 썰어먹어야 할 딱딱한 빵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고 요리하러 부엌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나가 놀거나 책을 읽는 시간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며 아침은 사과 한쪽으로 대체하게 될 것이다. 특히, 출근할 때 당근 하나를 들고 뛰어가 횡단보도에서 씹어 먹는 내 귀에는 나를 칭찬하는 소리로 들리는 책이었다. 소로우의 『월든』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고 싶다.

나는 고독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조용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대자연 속에,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빗속에, 또 내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모든 경치 속에 너무나도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해주는 공기 그 자체처럼 무한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우호적인 감정이었다.

나의 24시간은 시계의 째깍째깍 소리에 의해 먹혀 들어가는 그런 하루가 아니었다. 나는 푸리족 인디언처럼 살았다. 그들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나타내는 데에 한 가지 말밖에 없다. 그들은 어제를 의미할 때는 자기의 등 뒤를 가리키고 내일은 자기 앞을, 오늘은 머리 위를 가리켜서 뜻의 차이를 나타낸다, 사실 인간은 행동의 동기를 자기의 내부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월든』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소로우가 밤의 숲 속 소리들을 묘사한 부분이다

부엉이의 노래는 동반 자살한 두 연인이 지옥의 숲에서 지난날 이승에서의 강렬했던 사랑의 고통과 기쁨을 돌이켜보면서 서로를 위안하는 노래인 것이다. 나는 그들의 비탄, 그들의 구슬픈 응답이 숲의 언저리에서 떨리듯 들려오는 것을 좋아한다 .정말 노래로 표현되기를 원하는 것은 음악의 어둡고도 눈물겨운 측면이며 후회와 탄식일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부엉이나 올빼미가 있는 게 좋다. 그 울음소리는 낮에도 어두컴컴한 늪지대나 깊은 숲에 너무나도 걸맞은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인간이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미개척의 광활한 자연을 암시하고 있다. 이 새들은 우리 모두가 있는 을씨년스러운 황혼과 해답을 구하지 못한 사념들을 나타낸다.

이 부분을 옮겨 적다보니 또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Angel Eye’와 ‘my one and only love’가 귓가에 울린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는 엘리자베스 슈에게 ‘나의 천사’라고 말하며 죽어간다. 정말 노래로 표현되기를 원하는 것은 후회와 탄식과 해답을 구하지 못한 생각들일지 모른다.

한 번도 ‘대단한’ 흥행감독이 되기를 꿈꾸지 않았던 임순례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우생순>이 ‘대단한’ 관심을 끌며 순항 중이다. 영화가 개봉되면 달라이 라마의 음성을 직접 들으러 인도로 날아가겠단 그녀의 계획은 어떻게 되었을까? 눈 내리는 하늘을 보다 보니 궁금해진다. 그녀와의 긴긴 인터뷰 후에 든 생각은 어떤 인물도 딱히 무엇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단지 우리 관계의 무한한 범위를 깨닫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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