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 '살기 위해서 읽었다'
<채널예스> 정혜윤 PD의 그들은?
출처 : <채널예스> 2007년 12월 27일
우리가 그날 아침 동트기 전에 떠났던 그 작은 여관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정다운 보름달이 우리의 길을 비춰 주었다네. 하인들이 저녁밥을 짓는 동안 나는 그 여관의 호젓한 곳에서 서둘러 즉흥적으로 이 모든 것을 쓰며 시간을 보냈어. 만약에 적어 두는 일을 미룬다면 이곳을 떠나자마자 내 기분이 바뀌어 자네에게 글을 쓰는 일에 흥미를 잃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야. (페트라르카 방투산 오르기 1336년 4월 26일)
지난주엔 보름달이 참 아름다웠다. 그렇게 보름달이 아름다울 때는 꼭 어디 급히 전할 소식이 있는 사람처럼 맘이 급하다. 내 기분이 바뀌어 흥미를 잃을까봐. “보름달 봐.”
크리스마스는 러시아 숲의 축제다. 전나무, 초, 나무장식들이 몇 주 동안이나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전나무에 매달린 장식들이 여기보다 더 아름다운 곳을 찾기 힘들다. 작은 보트, 새, 물고기, 집과 과일 모양의 장식들이 노점과 가게들에 넘쳐나고 마을의 예술품을 전시하는 쿠스타르니 박물관은 매년 이맘때 갖가지 종류의 장식품 박람회를 연다. 교차로 한곳에서 나무에 매다는 장식을 파는 여인을 보았다. 빨갛고 노란 유리구슬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 바구니는 마치 빨갛고 노란 과일들이 들어있는 마법의 사과 바구니 같다. 전나무들이 낮은 썰매에 실려 거리를 지나간다. 크리스마스 장난감들 자체가 아이들에게 그것들이 얼마나 깊은 러시아의 숲에서 나온 것인지를 이야기해준다. 러시아에서 ‘붉은’과 ‘아름다운’은 한 단어이다. 난로에서 붉게 타고 있는 장작들이야말로 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 숲의 가장 환상적인 변신이다. 벽난로가 여기보다 더 찬란하게 이글거리는 곳도 없을 것 같다.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중에서)
크리스마스에 누군가는 가족들을 위해 벽난로의 불을 피웠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누군가는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며 음식을 차려놓고 소파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공지영이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 무척이나 외롭고 당황했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녀를 위해 이 문장을 찾아냈다. ‘붉은’과 ‘아름다운’은 그녀에게도 한 단어일 것이다.
공지영을 생각하면 나는 자연스레 2005년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황우석이 배아줄기세포 논란을 일으키고 영화배우 이은주가 자살하고 청계천이 복원되는 와중에 있고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던 그해 봄부터 겨울까지 우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스튜디오에서 만나 꼬박 서너 시간을 같이 있었는데 나는 담당 피디로, 그녀는 진행자로 서로 녹초가 되도록 일을 했다. 그 안에 있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고 우리들은 각자 광양에 매화꽃 기행을 다녀왔고 그녀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영화가 되어서 개봉되었고 소설도 덩달아 엄청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공지영은 사형제 폐지에 관한 자리라면 어디든 강연을 나가게 되었다. 거기서 커피와 녹차를 나눠먹었고 아이쉐도우와 볼터치를 바꿔 발라 보았고 서로의 화장품 파우치를 열어서 구경했고 그 틈틈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나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로맹 가리를 좋아했는데 공지영 이름 석 자만 달면 대중소설이라고 하도 욕을 들어먹으니,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란 다른 필명을 썼듯 자신 역시 다른 필명으로 글을 써보면 새로운 평가를 받지 않을까 기대했었다(물론 이뤄지지 않았다). 나 역시 도미니크 보나가 지은 『로맹 가리』 전기에 빠져 있었는데 로맹 가리가 사랑한 여자 레슬리에 대한 묘사 부분을 특히 좋아했다.
러시아는 레슬리의 첫사랑이었다. 네 살 때 그녀는 한 러시아인 마법사에게 푹 빠져버렸다. 그녀는 그를 여행자라 칭했다. 모피와 호박염주, 탁월한 상상력으로 그는 어린 계집아이를 매료시켰고 신비한 대륙의 문을 열어주었다. 여행자는 입을 다물지 못하는 어린 계집아이에게 시베리아의 눈부신 경치를 구리침대, 서재, 욕조, 그랜드피아노가 갖춰진 궁궐처럼 묘사했다. 하지만 그는 그곳의 비참한 생활, 사슬에 묶인 죄수, 그들이 부르는 절망의 노래 밀로세르드나야 역시 생생하게 그려주었다, 소녀 시절 그녀는 자기가 직접 선택한 책만 꽂는 책꽂이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밤마다 눈을 감고 여행자가 가르쳐준 ‘도망가기 게임’을 했다. 그녀는 침실을 떠나 기나긴 기차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교육을 잘 받은 여자였을 뿐 아니라 책, 미술관, 음악회에서 획득한 개인적인 문화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국적인 취향을 과시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녀 자신의 말에 따르면 최고의 연인인 러시아 남자들만 사랑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녀 자신을 푸슈킨의 여주인공으로 상상하며 절대적인 사랑을 믿는 정열적인 여자였다.
내게 공지영은 2005년의 그녀지만 2005년의 그녀는 그 전 시기의 그녀랑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많은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정말로 공자의 78대손이라든가, 세 살 때 이미 오빠의 책가방을 뒤져서 한글을 통으로 익히고 혼자서 《소년 한국일보》에 연재되던 이원복 교수의 만화를 읽고 그 내용까지를 줄줄이 알고 있어서 온 가족을 놀라게 했다는 것. 소설 『봉순이 언니』에서 묘사되었던 그대로 식모였던 봉순이 언니와 옆집 식모인 미자 언니가 노는 동안 그 옆에서 《선데이 서울》을 보며 놀았다는 것. 프릴 달린 원피스를 입고 아현동 골목을 다니던 주인집 딸로 왕따를 당해서 할 수 없이 울면서 책을 읽는 아이가 되었다는 것 같은 어린 시절 일부터 구로구청 사건으로 잡혀 들어갔다가 ‘난 이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딱 한 가지만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뭘까?’ 생각하다가 그게 바로 소설임을 알고 데뷔작 『동트는 새벽』을 쓰게 된 이야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부산 내려가는 경부선 기차 안에서 구상하고 카페에서 미친 듯이 쓰기 시작해 석 달 동안 두문불출하며 써나간 이야기. 『별들의 들판』 취재를 하러 베를린으로 떠날 때 “너 집 떠나면 이혼이야!”란 말을 들었지만 결국은 쓰게 된 것 등 소설 집필기. 20대 후반에 자고 나니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초특급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서 오히려 외출도 못 하고 우울증을 앓던 이야기. 세 번째로 결혼하게 되었을 때 ‘이번만큼은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하고 7년간 두 번 외출하며 요리에 전념하던 이야기, 세 번째 이혼은 몇 년간은 비밀에 부쳤던 이야기까지 참 많이도 알게 될 정도로 그녀는 일단 입을 열면 과감하게 솔직했다. 하루는 그녀 손목에 있는 깊은 상처 자국을 보고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던진 청동 스탠드에 맞아 생긴 상처라면서 그 상처에 붕대를 감고 팬 사인회에 나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루는 무척 울적해 보이기에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과 갈등이 생겼더니 선생이 아이에게 “너희 엄마가 세 번 이혼했지?”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쪽에서 어찌나 분개해서 펄펄 뛰었던지 나중엔 공지영이 나에게 진정하라 할 정도였다. 혹시 아이들이 학교에서 상처를 입을까봐 초등학교도 따로 따로 보냈다는 그녀가 어느 글에서 묘사했던 “불행을 당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폭력은 비난이고 이혼할 때 불행보다 힘든 것은 수치심”이란 것은 그녀의 절절한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 하여간 그녀는 울었다 하면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었고 웃었다 하면 배가 아플 정도로 웃어서 나는 그동안 스튜디오 밖에서 창밖을 보면서 충분히 딴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우리 방송은 <라디오로 듣는 자서전>이란 부제를 달고 있었는데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일치한 우리에겐 참으로 몰두할 만한 드라마틱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내가 이걸 소설로 쓰면 사람들이 너무 작위적이라고 할 거야!”라고 하면서 상기된 얼굴로 인생이 소설보다 확실히 더 흥미진진한 것 같다 했는데 이를테면 가수 임희숙의 이야기(임희숙은 6.25 전쟁통에 태어났다. 그녀의 엄마 아빠는 임희숙을 낳고 사흘 만에 피난길에 나섰는데 산모가 젖이 나오지 않아 아이는 굶어죽을 뻔했다. 웬만큼 젖이 돌자 임희숙의 아빠는 서울에 두고 온 부친과 세 살 난 맏딸이 걱정되어서 밤에 식량감을 들고 몰래 서울로 잠입한다. 그러나 새벽에 집을 빠져나오다가 붙잡혀 그 뒤로 다시는 그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갓난아기 임희숙과 그녀의 엄마가 고향집에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는 살아 있었으나 전쟁통에 먹지 못한 세 살 위의 언니는 굶어 죽어 있었다), 경제학자 좌승희의 이야기(좌승희는 제주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제주 4.3항쟁 전날 단속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하고 그는 유복자로 태어난다. 그가 7살이 되자 엄마는 아빠를 만나러 가자며 좌승희를 데리고 부산으로 가 똑딱선이라 불린 밀항선을 타고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했는데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잡혀서 수용소에 갇힌다. 수용소에 찾아온 아버지를 만난 게 좌승희 평생 딱 한 번 아버지를 만난 경험이다. 제주로 돌아온 좌승희의 엄마는 이듬해 다시 밀항을 시도하는데 좌승희는 학교에 다니고 싶다면서 거절하고 혼자 집에 남는다. 그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사는 혼자 사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는 웃으면서 “왜 내가 우파가 되었는지 알아요? 나도 원래는 좌파이고 싶었는데….”라고 말하면서 방송을 끝냈다), 가수 장사익(나이 마흔에 태평소를 불기 전에 그는 열 가지가 넘는 직업을 전전했다. 보험회사 직원, 외판원, 영업사원, 카센터 직원…. 그가 카센터에서 일할 때 손님들이 들어오면 그는 차보다 차에 꽂혀 있는 카세트테이프에 눈길이 먼저 갔다했다. 손님들이 듣는 카세트테이프만 보면 ‘나이는 얼마나 되었는지?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지금 연애중인지? 사랑에 실패했는지?’ 그런 것들이 다 눈에 들어오고 이해가 되었다 한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나이 마흔에 몇 년만 미쳐 고생하자 하고 태평소를 불러 나선다) 같은 이야기들을 우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하고 입을 딱 벌리기도 하면서 들었다. 그렇게 방송을 끝내고 서둘러 콩나물해장국과 모주를 나눠 먹으며 허기와 열기를 달래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이듬해 『즐거운 나의 집』연재를 시작할 때까지 시간 약속 잘 지키지 않는 것과 폐 끼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답게 참으로 성실하게 분당 집에서 목동으로 와주었던 것 같다.
그녀는 체계적으로 뭘 읽었다기보다는 궁금한 문제가 생기면 책부터 사놓고 보는 형이다. (주로 YES24에서 구입한다.) 요리가 하고 싶으면 요리책을 사고, 미칠 것 같으면 심리학책을 사고, 소설을 쓸 땐 그 분야 관련 도서를 다 사서 읽는 걸로 시작한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쓸 땐 사형제 관련 책을 다 사서 읽었다. 한번 좋아한 책은 늘 가까이 두고 자주 읽는 편인데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 책은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토마스 만의 단편들과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 그리고 기독교 영성에 관한 책이다. 『고리오 영감』『열정』「토니오 크뢰거」, 영성에 관한 책… 그녀 관점에서 책을 보자면 모두 일정한 공통점이 있다.
“두 번째 남편과 헤어지기 직전부터 심리학책을 읽었어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나 나부터 알아야 했거든요. 내가 특별히 나쁜 사람도 아닌 것 같고. 정말 심리학 석사학위 논문 쓸 만큼은 읽었다고 제가 주위에 말하곤 하죠. 그때 정신병원에도 다녔어요. 분야를 넓히다가 심리학책에서 기독교 관련 책으로 넘어가게 되었어요. 그 두 장르 책들의 공통점은 ‘사랑을 받으면 치료가 되고 사랑이 없으면 미친다.’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기독교 영성책들은 차가운 심리학책들이 주지 못한 해결책을 준 듯했어요. 그때부터 성당도 다녔죠. 토마스 머튼 같은 작가 좋아했고 안소니 드 멜로의 『깨어나십시오』를 읽었을 땐 정수리가 쪼개지는 줄 알았어요. 요샌 하도 읽어서 정수리는 쪼개지는 것 같지 않지만. 바로 이런 문장이죠. ‘당신은 무엇에 대해서 분노하십니까? 분노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소유했던 무엇인가를 잃을까봐.’ 어려운 시절을 통과할 때 미친 듯이 3,4년 그런 책만 읽었어요. 정말로 책 속에 길이 있고 구원이 있었어요. 나는 살기 위해서 책을 읽었어요. 결국 그것들이 나를 이끌어냈어요. 프랑스 정신과 의사가 쓴 『보이지 않는 도착적 폭력』이란 책이 있어요. 이 책은 아예 나의 경우가 사례로 나와 있더라고요. 책에 사례로 거론되니까 내가 유별나게 문제적 인간이 아닌 것 같아서 참 좋더군요. 내 모든 삶 자체를 그냥 인용해 놓은 듯한 책이죠. 이혼을 자주 하다 보니 사람들이 ‘너한테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비난했는데 그럴 때 위축되던 마음이 이 책을 보고 위로되었죠.‘사람들은 누구를 파괴하느냐? 가장 싱싱한 영혼을 찾아서 파괴한다.’ 그런 말이 나와요. 그때 ‘아! 내가 싱싱한 영혼이었구나.’ 생각하면 좋죠. 하여간 이런 책들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받아서 뚫고 나왔어요. 신앙의 영성가들이 제시한 그 길을 그냥 죽자고 따라 나온 거죠.”
이 부분을 이야기할 때 정말로 그녀의 눈빛이 아련하게 젖어들었는데, 걸어온 아슬아슬했던 길을 되돌아보고 ‘이제는 괜찮아!’라고 자기 자신을 다독거리는 그런 시선이었다. 나로서는 경기를 일으키던 아이가 비로소 호흡이 평온해지는 순간을 보는 기분도 들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역사책이나 밀란 쿤데라 소설을 남에게 무식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서 억지로 읽었다던 공지영은 바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살기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하는 책이 있어요. 안젤른 그륌 신부가 지은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책이에요. ‘사람들은 가끔 너를 피고석에 앉혀놓고 배심원석에 앉아서 너를 구경한다.’ 이 문장이 나를 통째로 바꿔놓았죠.”
이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그렇게 순순히 구경당하지 않을 거야. 나의 진실은 내가 밝히겠어. 흥! 이젠 대결이다!’라고 말하며 단호하게 웃거나 울면서 성이 다른 세 아이와 가정을 이룬 『즐거운 나의 집』을 쓰는 장면이 떠오른다. 『즐거운 나의 집』에는 이혼 후 엄마와 떨어져 살았던 딸이 아버지의 집을 떠나 엄마가 사는 도시로 와서 첫날 도시의 불빛을 보면서 ‘이젠 대결이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먹는 장면이 있는데 이건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의 패러디다. 『고리오 영감』의 끝 문장.
그는 무덤을 바라보았다. 그는 청춘 시절에 흘려야 할 마지막 눈물을 그곳에 묻었다. 이 눈물은 순결한 마음의 성스러운 감동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센강의 두 기슭을 따라서 꾸불꾸불 누워있는 등불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파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벌들이 윙윙거리는 벌집에서 꿀을 미리 빨아먹은 것 같은 시선을 던지며 우렁차게 말했다. “이제부터 파리, 너와의 대결이다.”
즉, 그 문장은 공지영의 육성이기도 하다. 이제 대결이다!
고리오 영감이 살았던 발자크의 파리. 그 도시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이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주인공이 아니라 끝없는 갈등의 세상이란 것일 거다. 누군가 주인공으로 애초에 따로 정해져 있었던 게 아니라 누구나 소설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거다. 그때그때 벌어진 일의 의미를 해석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이 해독 불가능한 상태로 변화할 수도 있다는 것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일 거다.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는 접어두고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도 접어두고 그것들을 한때 읽은 책 속의 구절처럼만 넣어두는 것. 자신의 경험들을 마치 지식으로 만들 필요가 있단 것일 거다.
살기 위해서 책을 읽었다는 말은 과연 그녀의 삶에서 어떤 의미일까?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수도원 기행』을 쓴 것 말고는 글을 한 자도 못 썼죠. 처음엔 나도 내가 일부러 안 쓰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로 못 쓴 거였어요. 어느 날 생각하니 책을 일주일 동안 읽지 않았어요. 그런데 일주일이 한 달 되고 한 달이 일 년 되더라고요. 일 년 동안 책을 읽지 않는 거죠. 그런데 그때 『봉순이 언니』가 많이 팔려서 돈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스페인 남부부터 그리스까지 아이들 데리고 안 가본 데 없이 여행을 다녔어요. 놀라운 것은 내가 대단히 기억력이 좋은 편인데 완벽하게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스페인의 해안 사구 해수욕장에서 애들하고 줄 서서 크레페 사먹은 것 하나만 기억이 나요. 크레타 섬에서 일주일 있었는데 우조 먹은 것만 기억이 나요. 그때 알았어요. 내가 모든 에너지와 감각을 단 하나의 목적, 분노를 억누르는 데만 쓰고 있다는 걸요. 그 감각 회복하는 데 2년 걸렸어요. 누구도 내가 다시 소설로 재기할 거라 생각 못 했었죠. 기억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내 인생의 잃어버린 7년이라고도 할 수 있죠. 유일한 수확이라면 우리 막내아들 낳은 것. 그리고 특이한 요리 열 가지 정도 하게 되었다는 것뿐일 거예요. 『별들의 들판』 쓰고 싶은데 베를린에 살았으면서도 거리의 모습이 어땠는지 슈퍼마켓이 어땠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났어요. 결국은 글쓰기 전에 다시 베를린에 가봐야 했지요. 신앙 서적을 한 권 내려고 그 시절의 편지들을 며칠 전에 읽었는데 읽다가 또 울었어요.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가 없는 거죠. 내가 성격 이상자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감사해요. 무서운 게 하나도 없어요. 욕심도 없고 책 제목처럼 나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결국은 고통만이 인간을 키우고 오히려 고통이 무디어지지 않게, 고통이 가치를 상실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녀에게 헝가리 작가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의 이 문장, “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 그동안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원칙이나 말을 내세워 변명하고 이런 것들이 과연 중요할까?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진정 무엇을 할 수 있었으냐? 너는 어디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느냐? 너는 어디에서 용감했고 어디에서 비겁했느냐? 세상은 이런 질문들을 하지.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누구나 대답을 한다네, 솔직하고 안 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결국 전 생애로 대답한다는 것일세.”는 그녀 삶에 고통도 있었지만 위대성도 있을 것이란 그녀 식의 낙관이 될 것이다. 즉, 그녀에게 의미 있는 것은 더 이상 “닫힌 내면”이나 “사회적 시선”이 아니란 의미이다.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또 몇 군데 있는데 그 부분을 이야기했다가 “너는 별 장면을 다 좋아한다, 얘!” 하고 구박을 받았다. 그래도 인용하겠다.
크리스티나는 영어로 쓰여진 열대 여행기를 의자 위에 두고 갔네. 나는 그녀가 그런 책을 읽는 것에 놀랐네. 그녀가 반도에서 생산되는 고무량의 그래프나 원주민의 건강 상태에 무슨 관심이 있겠나. 아버지 다음으로 소중한 두 사람이 자정이 지난 그 시간에 같은 책을 읽은 걸 알고 나는 불현듯 책도 신호라는 것을 깨닫네. 이제 다른 일들도 예감하네. 마침내 그날 사물들이 내게 말하기 시작했고 무슨 일인가 일어났으며 삶이 내게 귀띔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예감하지. 나는 이 책도 신호이고 대답이란 것을 깨닫네. 그것은 크리스티나가 이곳을 떠나고 싶어하며 낯선 세계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네.
이 문장은 사냥터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과 관련 있는 가장 중요한 문장이다. 누가 왜 총을 쏘았을까? 일부로? 실수로? 그 대답 역시 『열정』의 주인공들은 전 생애로 말했다.)
고통과 자폐와 소통의 부재로 괴로워하던 공지영에게 신작 『즐거운 나의 집』은 개인적으로 가장 행복을 안겨준 소설이다. 하얀 코트를 입은 그녀는 정말 많이 먹고 정말 많이 웃었다. 비밀일 수도 있었던 가족의 문제를 용감하게 소설로 표현한 그녀가 (사적인 삶을 공적으로 표현한 그녀가) 소설가로서 가장 사랑하는 단어는 “공감”인데 그녀는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살짝 인용했다.
한 작가가 명성을 얻은 이유는 그 작가의 은밀한 운명이 동시대의 운명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공감이다.
나는 며칠 전에 꿈결에서 읽었던 푸코의 한 문장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자기를 정당화시키려는 호기심 말고 자기가 얼마나 변화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려는 호기심.” 정확하게 인용된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공지영은 그 세계로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이야기 끝을 어떻게 맺었을까? 책꽂이 구석에 꽂혀 있던 숨어 있는 좋은 책을 ‘저놈 저놈 저놈이 저기 있었네.’ 하고 발견해 낸 기쁨을 표현하는 개인기로. 공지영은 갓 볶은 햇땅콩을 아삭 씹었을 때의 고소함의 밀도로. 나는 자신을 돌보지 않는 아름다운 소녀가 거울을 보고 자기가 얼마나 예쁜지 새삼 깨달았을 때의 경천동지의 밀도로. 우린 웃었다.
하여간 나는 요새 시를 한 편 암송 중이다.
한낮에도 밤하늘처럼 별들로 가득찬
시냇물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미인의 눈길에 돌아서서 그 아름다운
발걸음을 지켜볼 시간이 없다면
눈에서 시작된 미소가
입가로 번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
가련한 인생이 아니랴 근심으로 가득차 멈춰서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 「멈춰서서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난 올해의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이 시를 외워서 말해 주려고 작심했다. 눈에서 시작된 미소가 입가로 번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란 얼마나 근사한 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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