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우리 집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이야 울산광역시의 베드 타운으로 변해버린 마을이지만 4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밤이면 호롱불에 의지하여 지내던 때다. 곧 '전기 없는' 삶이 전혀 문제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전기 없는' 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번 태풍 "나크리"의 영향으로 우리 집은 4일 동안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토요일 오전에 인터넷이 나갔는데 화요일은 되어야 복구하러 올 수 있단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이 상황은 분명 '갑갑한' 생활일 수밖에 없다. 노트북이 스마트폰의 역할을 대신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단언컨대 인터넷 불통은 '전기 없는' 생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지난 2012년 9월, 태풍 '볼라벤'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당시에 고흥은 군 전체가 암흑천지였다. 벌교에서 고흥으로 들어오는 메인 케이블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봇대가 쓰러진 게 부지기수고 어지간한 전선줄은 다 끊어진 상태였으니까. 내가 다니는 회사의 농수산물 저온저장고도 당연히 전기가 끊겼다. 비상발전기가 있었지만 겨우 3~4시간만 버틸 수 있는 용량이라 한전에 SOS를 보냈지만 한전에서 돌아온 대답은 "기다려라. 당신들보다 훨씬 급한 데가 양식장"이라는 것이었다.
고흥에서 가장 큰 농수산물 저온저장고를 가진 회사가 이 지경이니 일반 가정집이야 말할 것이 뭐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 당시 우리 집은 '전기 없는' 생활을 3일 반 동안 해야 했다. 한 번 상상해보시라, 습하고 무더운 여름날 '전기 없는 삶'을. 가장 큰 문제는 물이다. 우리 집은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기에 지하수를 생활용수로 쓴다. 지하수는 무엇으로 퍼 올리겠는가? 전기다. 물이 나오지, 않으니 씻을 수가 없고,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다.
그나마 나의 경우는 회사로 가서 씻을 수 있었지만 아내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3일 반나절을 내가 회사에서 가져다 주는 물로 세수만 하고 살아야 했다.^^ 막상 전기 없는 생활을 해보니 TV가 안 나오느니, 라디오가 안 나오느니, 냉장고가 안 돌아가니 하는 소리는 그야말로 세 살짜리 어린 아이의 철 없는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일 심각한 것은 물이 안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나크리"에 쓰러진 앞마당의 참다래 넝쿨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번 태풍은 그렇게 센 강도가 아니어서 자잘한 피해만 남기고 떠났다. 똑같은 3, 4일간의 '전기 없는 삶'과 '인터넷 없는 삶'을 겪어 보고 나니 새삼 전기가 우리 생활에서 가지는 무게를 다시 한 번 절감할 수 있었다. 인터넷은 그야말로 없어도 별 문제 없는, 내가 '선택 할 수 있는 옵션'일 수도 있다는 것이고 전기는 그렇지 않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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