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다. 지난 주에 시작되었다는데 체감하기는 그저께부터다. 기상청 사이트를 보면 이곳 고흥은 다음 주 월요일까지 비가 내리고 흐린 날씨가 계속된다고 나와 있다. 아직 본격적으로 북상하지는 못해 남부지방에만 머물러 있는 모양이다.
귀촌해서 농사를 짓기 전까지는 사실 '장마'라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삶이었다. 그저 비가 자주 오니 '귀찮다'는 정도였다고나 할까? 이런 정도였던 장마라는 보통명사를 새로이 쳐다보게 된 건 한 편의 영화 때문이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Be With You)>라는 일본 영화. 아마도 2005년에 상영되었을 거다. 내가 여수에 있을 때 봤으니까.
비에 관련된 말을 떠올리자면 아무래도 먼저 '이별'이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그 반대의 이미지를 갖게 만든다. '비'와 '만남'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비의 계절'에 돌아온다는 약속을 남긴 채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여덟 살짜리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남자. 그런데 아내는 정말로 '비의 계절'에 그들 앞에 돌아온다. 이후 내용은 뭐 그렇고 그런 멜로 영화다.
여기서 '비의 계절'이란 이른바 '장마'를 가르킨다. 그런데 도대체 '장마'가 무엇이길래 '계절'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여? 이렇게 시작된 의문 때문에 장마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실제로 일본에선 지역에 따라 장마가 두 달 가까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고 평균적으로는 6주 정도라고 한다. 두 달 가까이 지속되는 비라? 물론 매일 오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든다. 농작물이 버틸 수 있을까?
이 장마를 일본에서는 바이우(梅雨)(또는 쓰유), 중국에서는 메이위(梅雨)라고 한다. '梅雨', 곧 매화가 익는 계절에 오는 비라는 뜻이다. 일본 대부분의 지역에서 장마가 시작되는 시기가 6월초부터라고 하니 '바이우'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어떻게 보면 조금 시적이고 낭만적인 느낌이 묻어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장마'다. 어원을 찾아보니 '마←[長]+맣'라고 한다. 여기서 '맣'은 비를 가리키는 우리말 구어라고 한다. 너무 무미건조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긴비'라니... 차라리 옛말에서 흔적이 보이는 순 우리말 표현인 '오란비'가 어떨까?
최근에는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해가기에 '장마기간'을 설정하는 게 의미없다는 말도 들린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기상청에서는 '장마예보'를 따로 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기로도 장마기간의 비로 인한 피해보다 한여름의 국지성 호우로 인한 피해가 훨씬 큰 것 같다. 그래도 장마는 장마니까 아무 피해 없이 넘어가길 빌어본다.
잔뜩 찌푸린 날씨 속에 익어가는 토마토를 바라보니 열과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우스 재배를 하지 않는 이상 토마토 열과현상은 도저히 피해갈 방법이 없다. 뭐 못 먹는 건 아니니 익는대로 빨리빨리 따먹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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