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콘느는 내게 가장 경이적이며 가장 신비스러운 작품의 하나입니다. 그 작은 악기를 위해 바흐는 그토록 심오한 사상과 힘찬 감정의 세계를 모조리 표현한 것입니다. 만약 어쩌다가 내 자신이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썼다면 나는 아마 너무 흥분하고 감동한 나머지 틀림없이 미쳐버렸을 것입니다. 일급 바이올리니스트가 곁에서 연주를 들려줄 수 없다면 마음 속에서 이것을 울리게만 해봐도 더 할 수 없이 황홀한 음악이 샘솟을 것입니다." ㅡ 브람스가 클라라 슈만에게 보낸 편지 中에서
'챨리 반 담' 감독의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Le Joueur De Violon)는 어느 천재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지하철이라는 특이한 공간을 배경으로 그려낸 영화다.
그러나 단순히 영화를 보면서 좋은 음악을 듣자는 식의 흔한 음악영화가 아니라 음악은 단지 도구며 수단일 뿐, 이 영화의 궁극적 주제의식은 한 개인과 그를 둘러싼 세상의 모순, 그리고 그 갈등을 뛰어넘기 위해 인간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그려내는 영화라 할 수 있다.
항상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고집하던 아르몽은 어느 날 갑자기 음악의 본질이라는 것에 회의를 느끼면서 자신 앞에 주어진 명예로운 길을 포기하고, 스스로 지하철 등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로 살아간다. 그의 이런 갈등은 사실 음악사를 통해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상류사회 음악과 민중 음악의 갈등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언젠가 '지필묵' 방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밀로스 포먼의 『아마데우스』도 겉으로는 천재와 범인의 갈등을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모짜르트의 화려하고 귀족적이며 천재적인 음악이 민중의 삶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건 한낱 상류사회의 유희이며 정치권력의 시녀 노릇밖에 못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처럼 이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도 진정한 음악가라면 어떠한 길을 가야 가장 인간적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아르몽은 누구에게 자기의 음악을 들려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방황하는데, 지상의 화려한 세계가 아닌 지하철, 어둠 속의 짚시촌, 지하수로를 타고 가면서 지하세계에 사는 소외된 거지와 같은 하층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을 들려준다.
이 영화가 감동스러울 수 있는 것은 이처럼 거의 인생의 밑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계층들이지만 그들의 쓸쓸하고 외로운 영혼들을 위로 하기 위해 아르몽은 혼신의 힘을 다해 바흐를 연주하며, 그들은 진정으로 위안을 얻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이 곡이 바흐의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제 2번」 중 "샤콘느 D단조"이다. "샤콘느"의 전곡이 연주되는 약 15분간은 영화적 긴장감으로 숨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다.
별로 클래식을 즐겨 듣는 것도,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지만 이 "샤콘느"는 가장 정형화된 연주를 한다는 '쉐링'과 '기돈 크레이머'의 연주곡들을 다 들어 봤는데, 클래식에 좀 조예가 깊다는 사람들은 '쉐링'의 샤콘느가 더 좋다고들 하지만 난 '기돈 크레머'의 연주가 더 가슴을 후벼 파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영화에서 받았던 이런 느낌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물론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따지고 들자면 아쉬움이 많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설명한 아르몽의 여정이 영화 속에서 그렇게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지는 못한 것이다. 해서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늘어지는 듯한 지루함을 느낄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마지막 15분을 '듣는' 것만으로도 투자한 100분의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은, 그런 영화라 할 수 있다.
가을 바람에 괜시리 숙신색신하다면, 삶이 빡빡하게 느껴지신다면, 이번 주말에는 비디오 가게를 한 번 들러 보시길...
written date:2004 1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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