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 『Automatic for the People:민중을 위해』 : 절망과 고뇌, 상실과 죽음의 심포니
만약 누가 나에게 1990년대를 통틀어 최고의 ROCK 음반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약간의 망설임은 있겠지만 R.E.M.의 『Automatic for the People : 민중을 위해』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얼터너티브의 비틀스'라 불리울 정도로 R.E.M.은 이미 우리 시대의 전설적 밴드가 되어버렸다. 니르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이 가장 존경했던 밴드가 R.E.M.이었고, 자살하기 직전에 마이클 스타이프(R.E.M.의 보컬)에게 전화를 걸어 하룻밤을 세워가면서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을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미국의 수많은 얼터너티브 밴드들에서부터 영국의 RADIOHEAD 에 이르기까지 가장 영향을 받은 밴드이자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R.E.M.을 꼽는다.
왜 R.E.M.을 얼터너티브의 원조로 간주하는 것일까? 사실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많다. 음악적으로 보면 R.E.M.은 90년대를 뒤덮어버린 얼터너티브 밴드들과는 확연히 다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아마 니르바나나 펄 잼(PEARL JAM)식의 분노와 충동의 분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R.E.M.의 전혀 '하드하지 않은' 이 시기 사운드는 다소 이질적이기조차 한 것이다. 이런 R.E.M.이 얼터너티브의 원조로서 평가받는 이유는 아마도 음악만이 아니라 그들의 태도나 철학 등 음악 외적인 측면이 더 많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밴드의 초창기, 그러니까 레이건 등장 이후 노골적인 '레이거노믹스'를 표방하던 때부터 R.E.M.은 당시의 주류 팝 뮤지션들과는 달리 사회참여적 발언과 메시지들을 담은 노래들을 통해 예술적 독창성과 신념을 고수하고 끊임없이 변모하면서 훌륭한 앨범들을 창조해 내는 R.E.M.의 자세 그 자체가 후배 뮤지션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하나의 모범적 지침이 될 수 있었던 것이리라.
1992년작 『Automatic for the People』. 만돌린, 첼로, 비올라, 바이올린 등 현악기를 폭넓게 사용하여 격조있는 사운드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가 완벽하게 하나의 '컨셉'을 일관되게 그리고 있다.
"죽음, 가치관의 상실, 고독, 소외"라는 주제로 전곡을 무겁게 감싸고 있는 분위기, 곡 하나하나에서 절절히 배어나오는 절망과 고뇌의 그림자... 그래서 이 앨범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듣는 편이 좋다. 수록된 12곡 모두가 그야말로 명곡이라 딱히 어느 곡만을 끄집어내어 설명하기가 곤란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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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rive
「Drive」는 앨범의 성격을 명확히 드러내주는 트랙이다. 어두운 기타 인트로로 시작된 곡은 우울하면서도 자조섞인 스타이프의 보컬은 시작부터 듣는 이를 한없이 가라앉게 한다. '아무도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지 않고, 아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말해 주지 않는' 고독한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R.E.M. 특유의 감성적인 사운드가 다채로운 현악과 함께 곡을 충만시키고 있는 것이다.
2. Try Not To Breathe
「Try Not to Breathe」는 마치 스코틀랜드 민요를 듣는 듯한 사운드를 내고 있다. 우울하게 고통스러운 자조를 되풀이하던 것이 첫 곡 「Drive」였다면 「Try Not to Breathe」는 아련한 기억의 근원을 돌이키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사운드는 더없이 안정감있고 두텁다.
3.
「The Sidewinder Sleeps Tonite」에서는 분위기가 일단 전환되는데, 이 앨범에서 흔치 않은 업템포의 곡으로 세련되고 탄력감이 느껴지는 트랙이다. 곡의 후렴부에 매력적으로 되풀이 되는 'Call me when you try to wake her up'은 아주 빠른 스피드로 노래되고 있어서 얼핏 들으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을 정도.
4.
그들 자신들의 말을 빌자면 그냥 듣기만 해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같은 감상적인 곡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밴드의 의도라고 하는데, 그 의도는 충분히 충족된 것 같다. 가녀린 어쿠스틱 사운드와 애잔한 느낌으로 거의 클래식 수준의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곡을 R.E.M. 미학의 완성이라고까지 하고 있다.
5. New Orleans Instrumental No. 1
제목 그대로 Instrumental인데, 2분 16초의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깊이를 담고 있는 곡이다. 『Out of Time』의 「Low」를 연상하게 하는 우울한 단조의 분위기이다.
6.
「Sweetness Follows」는 첼로의 인상적인 인트로로 시작하는데 죽음과 단절감이라는 주제에 걸맞는 무거운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앨범 전체에서 가장 우울한 감상이 잘 살아 있는 곡이고, 황량해진 영혼을 진혼하는 느낌을 준다. 스타이프의 보컬은 허무하게 낮은 음역대를 오간다.
7. Monty Got A Raw Deal
이 곡에서부터 앨범의 분위기는 급변하여 격정적인 감상을 드러내보이고 있다. 이 곡은 어쿠스틱 기타의 인상적인 멜로디로 시작되어 드럼의 연타와 함께 다소 템포가 빨라지는 곡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8. Ignoreland
「Ignoreland」는 의 감상이 효과적으로 고양되면서 3번 트랙 「The Sidewinder Sleeps Tonite」처럼 업템포의 곡이지만 그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지성파 밴드 R.E.M.이라는 평가가 수긍이 갈 만큼 사회적인 비판과 분노의 메시지를 노래하고 있다. 특히 부시와 클린턴이라는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전이라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공화당에 대한 비판은 아주 노골적이다.
9. Star Me Kitten
「Star Me Kitten」에서 우울한 정서는 감당해 내기 어려울 정도로 절정을 이룬다. 마이클 스타이프는 앨범 전체를 통해 가장 어둡고 가라앉은 저음의 보컬을 들려주고 있다.
10. Man on The Moon
이 곡에서부터 후반부의 세 곡은 모두 어쿠스틱시기 R.E.M. 사운드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트랙들이다. 잔잔하면서도 풍요로운 사운드는 그 이상을 논하기 힘들 정도이다. 편안하고 따뜻한, 꾸밈없는 정서가 듣는 이를 감동시킨다. 'Yeah, yeah, yeah, yeah' 하는 후렴구도 독특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11.
「Nightswimming」은 연주에 앞서 음색을 가다듬는 오케스트라의 잼과 함께 시작된다. 앨범 전체를 통해 가장 클래시컬한 느낌이 부각되는 명곡이다. 사운드의 뼈대가 되고 있는 피아노는 쉽사리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한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한밤중에 수영을 한다는 로맨틱한 상황 설정도 감성을 자극한다. 상실되고 소멸되어가는 것들에 대한 애달픔, 지나간 사랑의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노래하고 있다.
12. Find The River
거리를 바라보며 눈 앞에 스치는 풍경들을 하나하나 뇌리에 새겨두면서 떠나가는 내용의 가사는 쓸쓸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나버린 후의 담담함, 허무함도 짙게 배어난다.
written date:2002 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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