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놈, 삼순이의 생일이다. 무슨 '개새끼' 생일까지 챙기냐고? 억지로 기억하려 해서가 아니라 저절로 기억되는 날이다. 미국 독립기념일에 태어난 덕분에. 2년 전, 어미 삼순이가 마지막으로 낳은 새끼 다섯 마리 가운데 가장 힘 없고 못생긴 녀석이었던지라 마지막까지 분양이 안 된 탓에 키우고 있던 봄이의 말동무로 남겨진 녀석이다.
▲ 생후 6개월째
▲ 2014년 7월(Before)
▲ 2014년 7월(After)
▲ 2014년 10월
그래도 태어날 때와는 달리 자라면서 점점 꼴이 갖춰져 지금은 어느 정도 봐줄 만한데 하는 짓은 영 '아니올시다'다. 내가 생각하는, 반려동물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 품성은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과 애교가 있어야 하는데 이놈은 둘 다 아니다. 애교라고는 자기가 필요할 때, 예컨대 배고플 때 먹을 것 달라거나 오랫동안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반갑다고 잠시 부리는 게 전부다. 다른 때는 오라고 해도 마지못해서 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게다가 충성심은 아예 기대하는 게 사치다. 아마도 이놈은 나하고 같이 가다 내가 곤란한 지경에 처하면 저 혼자 살려고 도망갈 놈이다.ㅠㅠ
얘는 삼순이의 어미다. 내가 키워본 개 중 가장 똑똑한 놈이었다. 한두 번 하지 말라고 하면 금세 알아들을 뿐 아니라 주인이 밭 고랑으로 다닌다고 저도 고랑으로만 다녔다. 따로 훈련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어디를 가나 같이 다녔고, 남의 집 방문할 때도 고민없이 데리고 다녔다. 아파트라 할지라도 수건 하나만 펼쳐 주면 그 자리에서 서너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앉아 있는, 보지 않고서는 믿기 힘든 인내력을 갖춘 아이였다. 더군다나 닭장을 기웃거리는 이웃집 개를 주인이 쫓는다고 저보다 몇 배나 큰 진돗개한테 달려들었다 목덜미를 물려서 거의 죽을 뻔 하기도 했다. 이런 삼순이를 키우다 도무지 대화가 안 통하는 놈들을 데리고 살려니 갑갑한 게 한둘이 아니다.
오늘 아침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다 미국 독립기념일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옆지기한테 '오늘 삼순이 생일이네'라고 했더니 '별 것도 다 기억한다'며 웃으면서 '특식 하나 만들어 줘야겠네' 한다. 메주콩 골라낼 때 못난이들을 따로 챙겨둔 모양인데 그걸 삶아준다고 한다. 생일도 챙겨 먹는 개 삼순이. 제 언니 봄이와 삶은 메주콩을 나눠 먹고선 현관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하여튼 복 받은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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