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내가 홍합 한 망을 가져왔다. 포두 해창만 인근에서 딴 자연산 홍합. 자기가 일하는 곳에서 만난 지인과 점심 먹으로 갔다가 지인이 아는 사람을 만나 얻어 왔단다. 지인과 나눠먹으라고 준 건데 통째로 가져왔다. 넉살도 좋지...
나에겐 홍합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다. 30년 가까이 된 소박한 추억이긴 하지만. 가난했던 대학 시절, 자취생은 늘 배고픔과 술고픔을 견뎌야 했다. 그러던 중 자취방이 몰려 있는 골목에 홍합과 멍게를 싣고 다니며 파는 행상이 들어와 낡은 트럭 옆에서 핸드 스피커로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나에게 홍합이 눈에 들어왔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다. 같이 팔고 있던 멍게보다 홍합이 더 끌렸던 건 아마도 쌀쌀한 날씨 탓에 따끈한 국물이 생각났기 때문일 것이다. 주머니를 뒤져 홍합 한 '바께쓰'(지금은 '양동이'라 부르지만 그때는 대부분 '바께쓰'라 불렀다) 를 샀다. 천오백 원인가 이천 원인가를 주고. 그때 학교 앞 분식점에서 비빔밥 한 그릇이 육백 원이었으니 제법 큰 돈을 투자한 셈이다.
이렇게 사 온 홍합을 씻어 두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달리 연락할 방도가 없으니 동아리방에 가서 메모를 남겨 두었다. "홍합 국물에 소주 한 잔 하고픈 사람 모여라." 그랬더니 몇 시간 만에 네 명이 자취방을 찾아왔다. 그 날, 오로지 한 '바께쓰'의 홍합만 가지고 다섯 명이서 소주 열댓 병을 비웠다. 지금은 담금주 형태 외엔 구경하기도 힘든 25도 짜리 소주를. 아련하고 그립다, 그 시절이.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그 추억에 머물러 있을 여유가 없다. 이 홍합을 손질해야 한다. 자연산인지라 온갖 갯것들이 다 묻어 있다. 수세미와 솔을 동원해 한 시간 넘게 다듬으니 대충 먹을 만한 꼴을 갖춰 간다. 그래도 양식 홍합의 매끈함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마침 이번 주말에 서울과 창원에서 손님들이 방문할 예정이다. 그들에게 자연산 홍합의 진한 국물 맛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손질을 마친 뒤 부스러지고 못 생긴 홍합들을 모아 홍합탕을 끓여 시식해 보기로 했다. 홍합탕은 특별한 요리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홍합에 적당량의 물을 부어 끓이면 끝이다. 마지막에 쪽파를 썰어 뿌려주는 것이 더 보태는 것의 전부다. 대낮부터 소주 생각이 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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