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20일경 마늘 양파를 심었으니 오늘로 꼭 100일째다. 2월초까지는 잠자는 듯 자리보전만 하고 있더니 한 달 사이 색깔이 짙어지고 제법 자란 게 눈에 띌 정도다.
100일이 지났으니 앞으로 100일을 더 자라야 수확이 가능하다. 마늘은 육쪽이고 양파는 만생종이기 때문이다. 중부 내륙 지방의 마늘 양파에 비하면 제법 자란 편이지만, 우리 집 주변 농가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한 달 전만 해도 동네 어르신들한테 '마늘이 왜 그 모양이냐'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다. 내 눈엔 정상인데 그분들 눈엔 도무지 마늘 같지 않았던 모양이다.
전업농가가 아닌 우리 옆집 마늘 모습이다. 이보다 한 뼘은 더 자란 전업농가의 마늘 양파를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마늘은 무릎까지 자라 있고, 양파는 벌써 구근을 키우느라 땅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위의 양파 사진을 보시라. 지금 고흥의 거금도에서 한창 자라고 있는 조생종 양파다. 내가 키우는 양파가 저 정도 자랄려면 적어도 5월은 되어야 한다. 참고로 거금도는 고흥반도 남단에 있는 섬으로 고흥 녹동과 다리가 연결되어 있어 차로 갈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열 번째로 큰 섬이다.
▲ 텃밭의 평균적인 양파 모습
▲ 초피 나무 뿌리 부근의 양파 모습
'먼 나라 이웃 나라' 같은 이야기는 접어 두고 우리 텃밭의 양파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같은 이랑인데도 크기나 색깔의 농도가 다름을 알 수 있다. 같은 날 심었으니 크기가 다 고만고만해야 하는데 유독 초피나무 아래의 양파만 유난히 색이 짙고 크다. 왜 이렇게 확연히 구분이 갈 만큼 차이가 날까? 초피나무 아래에 따로 퇴비를 뿌리거나 한 것도 아니다. 글쎄, 처음 겪어보는 것이라 아직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양파 뿌리에 공급되는 산소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초피나무는 뿌리가 실타래처럼 엉켜 넓게 퍼진다. 보통의 나무는 주뿌리에 곁뿌리가 몇 개씩 생기는 형태지만 초피나무는 곁뿌리가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한 망을 형성하고 있다. 이 곁뿌리를 따라 땅속 곳곳으로 공기가 유입되어 다른 작물에게도 더 많은 산소가 공급되어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게 아닌가 싶다. 사진으로도 알 수 있지만 풀조차 이 초피나무 아래는 다른 곳보다 더 많이 자라 있다. 여기서 좀 더 사고의 범위를 확장하면 작물에게 미치는 풀들의 긍정적 영향을 이야기할 수 있다. 잡초라 불리는 대부분의 풀은 사람이 키우는 작물보다 뿌리가 훨씬 더 촘촘하고 넓고 깊게 퍼진다. 관행농에서는 이 풀들을 작물과 양분 경쟁하는 대상으로만 여겨 깡그리 뽑아내기 일쑤다. 아니면 제초제를 뿌리거나. 하지만 풀은 강우로부터 표토층의 유실을 방지하고 지표면의 수분 증발을 막을 뿐 아니라 땅 속 깊이 산소를 실어나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땅속으로의 산소 공급은 당연히 작물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 풀은 무조건 제거해야 할 대상이기보다는 잘 '다스리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닐까 싶다.
텃밭 한 모퉁이에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완두콩과 쪽파도 이제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바야흐로 봄농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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